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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샤쓰 그 신후 May 06. 2021

밀리터리 장르소설) 무토 - 인간, 병기

1부 - 챕터# 4. 무토는 손을 씻었다. 마츠이가 다가왔다.

    무토가 살육하고 나서 맨 먼저 하는 일은 손을 씻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늘 그랬다. 이 피가 씻겨야 다음 살육을 할 수 있다는 듯이. 

    무토가 개울가에 앉아 손을 씻는 사이 위생병 신조 일병이 달려왔다. 전투가 끝나면 제일 먼저 무토의 부상 여부를 확인하라는 게 대대장이 지대(의무대)에 내린 특명이었다. 무토가 찢긴 소매를 걷어 엉겨 붙은 피를 씻어내자 팔뚝에 박힌 유탄 파편이 드러났다.

    "팔을 주십시요. 바로 빼내야 합니다, 무토 군조님."

    무토는 팔을 내맡겼다. 

    “개울물이 오염됐을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신조가 수통을 꺼내 보이고는 뚜껑을 열어 무토의 상처 부위를 다시 씻어냈다. 소독 가루를 잔뜩 뿌린 뒤, 핀셋으로 어렵지 않게 파편을 빼내고 봉합까지 재빨리 마쳤다. 신조가 붕대를 감으며 말했다. 

    "늘 신기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깊이 박혀서 절개 수술을 하거나 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신조가 새삼 감탄이 서린 눈으로 무토를 쳐다봤다. 무토는 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그 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고문과도 같았던 훈련의 결과인지, 아니면 원래가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태어났던 것인지…. 

    이때 발악하는 비명이 들려 왔다. 용케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미군 부상자를 또 발견한 모양이었다. 마츠이가 병사 몇 명이 구경하는 가운데 미군의 얼굴 피부를 생선 껍질을 벗기듯 까고 있었다. 무토는 예전의 한 술자리에서 마츠이가 한 말이 떠올렸다. 자기는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스시 장인 집안의 장남이라고, 집안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나무 칼을 가장 먼저 준다고.

    마츠이가 벗겨낸 피부 껍질을 마치 가면이라도 되는 양 자기 얼굴에 덮었다. 뻑큐… 갓뎀잇… 어쩌고 하면서 미군 흉내를 내었다. 근처의 소대원들이 배를 부여잡고 웃어 젖혔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무토가 세수를 하려고 검은 두건을 벗자 신조가 얼른 수통을 집어 들었다. 

    "고맙다."

    신조가 따라주는 물로 무토는 찐득한 땀과 말라붙은 흙가루를 씻어냈다. 세수를 마친 무토가 호주머니에서 욱일기 두건을 꺼내 머리에 묶었다. 검은 두건은 고이 접어 다른 주머니에 넣고 수색대를 상징하는 군모를 썼다. 

    이때 웃통을 벗고 미군의 맥주캔을 든 마츠이가 다가왔다. 마츠이의 얼굴은 미군의 피로 얼룩져 있었고, 운동으로 다진 잔근육들이 보기 좋은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항상 맨 먼저 피를 씻어내더군. 너만 깨끗하다는 거냐?" 

    "피 냄새가 지겨워서 그렇습니다." 

    "군인이 피 냄새가 지겹다?"

    마츠이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제가 예민하지 않습니까?"

    위생병 신조가 슬그머니 설명을 곁들였다. 

    "그래서 사병들은 개 코 군조라고 부릅니다."

    마츠이가 슥 하고 차갑게 쳐다보자 신조는 바로 경례를 붙이고 자리를 떴다. 

    "기관총, 유탄발사기 같은 중화기는 미리 처리하는 게 네 임무였을 텐데?"

    "처리했습니다." 

    "양놈 새끼가 발사한 유탄에 소대원 둘이나 죽었다." 

    "놈들이 몇 정을 가졌는지 정보는 받지 못했습니다." 

    "소리만 듣고도 무기가 어떤 건지, 몇 개나 있는지 다 안다고 했잖아!" 

    목소리가 고조되었다. 무토가 아무 감정 없는 백지 같은 표정으로 마츠이를 바라봤다. 전투는 끝났고 의미 없는 신경전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조심하겠습니다."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마츠이가 무토를 향해 씩 메마른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혀를 쭉 내밀었다. 마치 장난 좀 쳐봤다는 듯이. 

    "지휘소 천막 앞에 놈들 무기를 쌓고 있다. 너도 가서 도와라." 

    무토가 경례를 붙이고 지휘소로 향했다. 마츠이는 맥주를 다 마시고는 빈 깡통을 던졌다. 담뱃불을 붙이며 걸어가는 무토를 노려보았다. 마츠이는 처음 봤을 때부터 무토의 무표정하고 시큰둥한 꼴이 싫었다. 저놈은 전투가 시작되면 살육을 즐기는 것처럼 사방으로 날뛰다가도 임무가 끝나면 더는 피에 아무 흥미도 없는 것처럼 행동을 싹 바꾸었다. 도대체 어떤 놈인지, 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꼴사나워 보이기만 했다. 지휘관인 기무라 대좌가 총애한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비천한 놈 주제에 고귀한 짓거리를 하는 꼬라지라니….


    마츠이는 더러운 속을 게워내듯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무토가 지휘소 천막 앞에 도착하니 병사들이 시체 입에다가 오줌 누기 시합을 하면서 웃고 있었다. 공터에는 약탈한 전리품이 쌓여 있었고 더블백 두 개에는 미군의 총기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토가 무게를 가늠하듯 더블백 하나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어깨에 지고 갈 만한 무게였다. 수송 트럭이 대기하고 있는 보급로까지는 무토의 몫이 될 터였다. 애초에는 소대원들과 나눠서 옮기기도 해보았으나 행군이 지체되어 오히려 더 힘들기만 했다. 무토는 그냥 혼자 드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마츠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 시간 후 행군 출발이다. 마지막으로 마음껏 즐겨라!" 

    위생병 신조가 다가와 밍밍한 맥주캔을 내밀었다. 무토는 목이 말랐기에 일단은 받아들었다. 

    하지만 무토는 무엇을 즐겨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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