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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샤쓰 그 신후 May 06. 2021

밀리터리 장르소설) 무토 - 인간, 병기

1부 - 챕터# 5. 연락이 끊겼습니다.

인도 마니푸르주 임팔. 

연합군 사령부.                



    연합군 사령관 스티븐슨 소장은 한 통의 전화 보고를 받았다. 

    무토를 앞세운 마츠이 소대가 60명의 102 파견대 병력을 몰살한 후, 6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102 파견대 소속 두 작전 소대와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연락장교의 침울한 목소리였다. 스티븐스 소장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를 들었을 뿐인데 기분 나쁜 불길함이 똬리를 틀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분명 더 강한 감정을 불러올 것임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마지막 교신은 언제인가?" 

    "전날 밤, 그러니까 14시간 전입니다. 오늘 아침 07시에 국경지대로 이동 예정이었습니다."

    "아직 복귀한다는 보고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계속 교신을 시도 중이지만… 네 시간째 불통입니다. 예비 부품을 준비했기 때문에 단순한 무전 고장이라고 보긴 어렵고…"

    "또 전멸이라고 보나?"

    스티븐슨 소장은 결코 내뱉고 싶지 않았던 말을 기어이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군용 유선 수화기를 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연락장교는 즉답을 피했다. 

    "주변 정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공병 정찰대에 정찰 임무를 내릴까 합니다만." 

    "정찰 지시하게."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될 겁니다."

    "금일 중으로는 일차 보고 하도록." 

    스티븐슨 소장은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손깍지를 끼고는 정면 벽에 걸린 성조기를 바라봤다.    

  

    그놈일 것이다.      


    데몬이라 불리는 시커먼 잽(Jap. 미군들이 일본군을 얕잡아 부르는 비속어. 한국식으로 쪽발이, 혹은 왜놈) 새끼. 만약 전멸이라면 벌써 네 번째다. 그리고 그 마체테… 

스티븐슨 소장은 데몬이란 놈이 저지른 현장의 사진을 처음 받아봤을 때의 충격을 결코 잊지 못했다. 나무 열매가 떨어져 있듯 흙바닥에 깔린 무수한 머리들을. 총에 맞아 죽은 사망자보다 머리 없이 널브러진 몸뚱이가 훨씬 더 많았다. 그놈이 그렇게 죽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달랑 마체테 한 자루만 들고. 

처음에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코믹북에 나오는 황당한 만화 장면 같았다. 그러나 같은 현장 사진이 두 장, 세 장이 되자 스티븐슨 소장은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참상은 분명히 실재했던 현실이었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군이 항상 몰살당했기에 그놈의 존재를 알려줄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놈 군복에 붙은 이름도, 생김새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스티븐슨 소장은 작전 서류철을 꺼내 클립에 꽂힌 그림 한 장을 꺼냈다. 한 원주민 부족민이 그놈이 저지르는 만행을 근처 숲에서 숨죽여 목격했고, 이를 토대로 작성한 몽타주였다. 그러나 그림은 그냥 검은 형체였다. 검은 두건에 검은 옷, 얼굴과 목과 손까지 검게 칠한 모습뿐. 원주민의 진술에 의지해 파악할 수 있는 건 키와 몸집 정도였다. 180에서 190㎝ 사이의 키와 최대 80㎏은 넘지 않을 정도의 근육형 체형. 일본군의 평균 신체 크기가 키 150㎝ 중반부터 160㎝ 후반에, 몸무게 50㎏ 중, 후반대를 오가는 왜소한 체형임을 참작했을 때, 이놈은 확실히 신체 구조부터 보통을 넘어섰다. 그리고 가공할 민첩함과 데몬이라 불릴 만큼의 잔인한 싸움 실력을 생각한다면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놈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스티븐슨 소장의 고심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놈이 계속 이렇게 설친다면 자신이 세운 원대한 작전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실패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스티븐슨 소장의 불안감은 눈앞의 현실로 점점 바뀌고 있는 중일지도 몰랐다.      


    스티븐슨 사단은 미군을 주축으로 영국 지원군, 인도와 네팔군, 그리고 중국 원정대로 구성된 다국적 연합군이었다. ‘Y 부대’라 불리는 중국 원정대는 오직 연합군에 합류하기 위해 지옥 같은 버마 전선을 뚫고 인도로 넘어왔다. 버마 내 곳곳의 일본 방어군과 교전을 치르며 살인적인 정글을 통과해야 했기에 출발한 원정대 중 3분의 2가 목숨을 잃었다. 중국 정부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연합군에 합류하기를 원한 이유는 분명했다. 일본군에 의해 끊어진 연합군의 대중국 보급로를 어떻게든 다시 연결해야 했고, 인도에 주둔한 스티븐슨 사단이 이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은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수행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전투와 보급이다. 보급은 무기부터 식량, 의약품, 장비 등 전투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전선에 공급하는 일이다. 물자가 없으면 전투도 없다. 총과 탄약이 없고, 먹을 게 없다면 부대 전체에게 주어지는 건 죽음일 뿐이었다. 일본군이 버마를 침공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향후 인도로까지 전선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중국으로 통하는 연합군의 보급로를 먼저 끊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일본군은 버마에서 승리했고, 연합군은 보급로를 잃었다. 

패배 후 1년 4개월이 지난 현재의 전황도 연합군에 상당히 불리해져 가고 있었다. 일본군은 병력을 중국과의 국경지대로 계속 증강하며 중국 내 전선을 확대해가고 있었다. 이대로 둔다면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정부도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터였다. 앞으로 일 년쯤 더 뒤에도 지금처럼 계속 보급이 부족하다면 말이다. 이런 이유로 연합군은 보급품 하나라도 더 중국으로 보내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하는 중이었다.

    보급로를 대체하기 위해 수송기를 동원해 봤지만, 한계는 되려 명확해지기만 했다. 수송기가 이륙하는 인도의 아삼 비행장은 비가 너무 많은 지역이라 수시로 장대 같은 폭우가 쏟아졌고, 여기다 45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야 하는 난관이 항시 도사리고 있었다. 겨울철이면 악명 높은 고산 지대 날씨로 인해 물자 수송을 아예 포기해야 하는 기간도 상당했다. 일본군의 방어도 심각한 문제였다. 버마 북쪽 국경지대에 집중적으로 대공방어망을 형성하고 수송기가 발견되면 일본군은 대포와 기관총을 가리지 않고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최근 삼 개월 동안 벌써 네 대의 수송기가 박살이 나버렸다. 

스티븐슨 소장으로선 하루빨리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직접 착안한 작전이 바로 ‘레도 작전’이었다. 

    인도 국경, 레도에서 출발해서 버마 북부의 일부 지역을 통과한 다음, 중국 윈난성으로 향하는 기존의 보급로(버마 로드, 한자로 진면 공로, 일본어 비루마 고로)와 연결하는 게 작전의 골격이었다. 따라서 버마 북부 정글 지역을 관통해야 하는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은 부대가 바로 102 파견대였다. 보급로 개설을 담당하는 공병부대를 어떻게든 지켜내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놈이……     


     스티븐슨 소장은 뚫어지게 몽타주를 노려보았다. 데몬의 새하얀 눈동자가 문득 더 크게 느껴졌다. 분노에 가득 찬 동물의 눈빛이 겹쳐졌다. 이 눈을 노려보는 자신의 눈빛도 그러하리란 걸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동아시아 전선에서 일본군을 작살 내기 위해서는 버마 땅을 단 1마일이라도 더 뚫어야 했다. 스티븐슨 소장의 고심은 결론에 도달했다. 

    데몬이라 불리는 놈을 죽이지 않으면 레도 작전은 성공할 수가 없다! 보급로도 없고 전쟁의 승리도 없을 것이다. 102 파견대는 애초 800명 병력에서 583명만이 남았다. 이들은 전우의 전원 몰살에 극렬히 분노하고 있었다. 데몬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임무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매일 같이 피의 다짐을 하며 사령관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만약 이번 파견대 병력도 목 없는 사체로 뒹굴고 있다면 이들은 당장에라도 달려 나갈 것이다. 데몬이란 놈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스티븐슨 소장은 수화기를 들고 정보장교를 호출했다. 

    “정보장교입니다.”

    “아시아 태평양 전선의 모든 정보부대에 전문을 보내. 내용은 데몬이란 잽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든 채널을 동원해서라도 알아낼 것. 사사로운 먼지 한 톨이라도 말이야. 시간은 전혀 여유롭지 않다.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찾아내. 잠은 그다음에 잔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스티븐슨은 곧장 펜을 들어 102 파견대 전원에게 내리는 작전 명령을 작성했다. 그리고 몽타주에서 얼굴만 찢어내 명령서 위에 붙였다. 명령서 내용은 간단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데몬을 사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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