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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샤쓰 그 신후 May 06. 2021

밀리터리 장르소설) 무토-인간, 병기

1부 -  챕터# 2. 기억하는 건 병원을 가장한 실험실에서부터였다.

1942년 3월. 

중국 난징. 1664부대.          



    양쯔강이 접한 대로변에 6층짜리 병원 건물이 있었다. '1664 부대'라는 현판이 붙은 병원 출입구에는 일본군 헌병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취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이 병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무도 몰랐다. 일본군이 난징대학살을 저지른 이후, 인체 실험을 행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무토는 여기서 깨어났다. 실로 기나긴 잠을 자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무토는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왜 여기에서 깨어났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곧바로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각 분야의 전문군의관 8명이 무토에게만 집중했다. 청각, 후각, 시각 등의 감각을 테스트했고 근육의 강도, 근력, 지구력, 심폐력 등 신체 기능을 검사했으며 기억력, 인내심, 공감 능력, 감정의 기복 등 심리 분야도 테스트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사랑, 우정, 기쁨, 슬픔 등 인간의 희로애락에 해당하는 감정까지 전부 검사를 하고 나서야 테스트는 종료되었다. 무토는 무관심과 분노 외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결과는 ‘완성’이었다. 무토가 실험실로 보내진 지 거의 1년 만이었다.      

    그다음 단계로 무토에게 주어진 건 극한의 특수 훈련이었다. 가장 먼저 체력훈련과 함께 신체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고문과도 같은 훈련을 통과해야 했다. 교관은 뼈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곤봉으로 무토의 온몸의 뼈를 때리고 또 때렸다. 체력훈련 때는 근육을 단련하기 위한 고강도 기구 훈련을 병행했고, 이렇게 단단해진 근육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쇠몽둥이로 때리고 또 때렸다. 무토의 몸이 딱딱한 돌처럼 강해지고 뼈의 파괴력 역시 최고조에 이르자 교관은 전투 병기로 만들기 위한 보다 체계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육, 해, 공군의 각 분야별 전문 교관들이 새로이 구성되었고, 이들은 무토에게 사격, 격투, 침투, 암살, 통신, 암호해독 등 전투에 관한 모든 기술을 훈련시켰다. 무토는 일본군의 무기뿐 아니라 미, 영, 러, 중국 등 연합군의 모든 무기 작동법을 익혔고, 총성만 듣고도 어떤 무기인지 알게 되는 수준에 도달했다. 탱크, 헬기, 전투기 조종술도 당연히 포함이었다.

    각 분야의 교관 역시 ‘완성’을 선언하자 무토는 최종 단계로 들어갔다.      


    최종 단계는 생존경쟁이라 불렸다. 

    훈련 책임자는 목표 지점이 표시된 지도 한 장만 달랑 쥐여 주고 사막 한가운데에, 바다 한가운데에, 겨울 설산 한가운데에 무토를 떨어뜨렸다. 식수도, 음식도 주어지지 않았다. 군용 칼 한 자루와 권총 한 자루, 여분의 탄창 두 개만을 쥐여 주었을 뿐이었다. 목표 지점까지 정해진 한계 시간 안에 도착해야 비로소 ‘생존’이 인정되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잠자는 것도 다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위협적인 장애는 난데없는 적의 공격이었다. 

    도처에서, 수시로 무기를 든 남자들이 무토를 공격해왔다. 미국인, 영국인, 러시아인, 중국인, 동남아인까지 국적도 다양했다. 이들은 포로들이거나 악명 높은 범죄를 저질렀던 죄수들이었다. 이들도 무토만큼이나 절박했다. 오직 무토를 죽인 자만이 살아서 고향 땅으로 돌아갈 ‘귀환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죽이지 않으면 당연히 무토가 죽어야 했다. 

    무토는 극한의 훈련에서 얻은 살상 능력과 인간을 초월하는 감각을 발휘하며 도전하는 적들을 다 죽였다. 그 누구도 무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물론 가장 큰 고비가 딱 한 번 있었다. 

    마지막 관문이었다. 무토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무기를 든 군인이나 죄수가 아니라 평범한 두 가족이었다. 각각 두 명의 자식을 둔 네 명의 부모, 모두 여덟 명이었다. 부모 중 하나가 무토에게 무전기를 전했다. 건네는 손이 진동하는 듯 떨리는 걸 무토는 분명히 보았다. 두 가족은 어떤 영문으로 이리로 보내졌는지 도무지 모르는 표정이었고 다만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무토는 이들이 듣지 못하게 무전기를 가지고 몇 미터를 이동했다. 기계 속 무미건조한 일본인 음성은 이렇게 말했다. 


    “탄창에 총알 여덟 발을 장전하라. 십 초를 주겠다. 한발씩 쏘아 죽여라. 만약 십 초를 넘기도록 한 사람이라도 살려둔다면 남은 총알을 네 머리에 박아라.”

    

    그걸로 무전은 끊어졌다. 무토는 영문도 모른 채 이 오지까지 끌려온 두 가족을 쳐다봤다. 이상하게도 그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지시를 내린 자가 생존의 최종 단계로 무토의 감정을 실험한다는 건 틀림이 없어 보였다. 맨 처음 든 생각은 일단은 자신이 살아야 한다는 거였다. 사초가 흘렀다. 무토는 총구를 들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여덟 번. 

    나중에 무토는 이 두 가족이 조선인이라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그렇다고 딱히 어떤 감정이 든 건 아니지만, 무기를 들지 않는 상대도 나의 ‘생존’을 위해 꼭 죽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솟구쳤다. 의문에 관한 답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고 다만 이 이후 자신만의 단 하나 예외가 생겼다. 총이나 칼을 들지 않은 상대는 절대 죽이지 않는다. 그들이 공격하지 않는 한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당연히 여자와 아이들이 무토를 공격할 가능성은 단 0.001%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쨌든 두 조선인 가족의 몰살을 마지막으로 무토는 장장 두 달에 걸친 생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당시 일본군은 버마를 침공해서 연합군에 승승장구 중이었다. 무토는 즉각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군이건 영국군이건 닥치는 대로 죽이고 또 죽였다. 


    원초적인 본능으로 살인하는 괴물이자 인간 병기로. 

    무토는 그 어떤 전쟁터에서도 보지 못한 전사였고, 생존의 왕이었으며, 무시무시한 살육자가 되었다.

    무토가 기억하는 건 이게 전부였다.           



    나뭇가지 속에서 무토가 연하게 웃었다. 분노를 표출하기 직전의 마지막 표정이었다. 까만 어둠에 대비된 하얀 이가 초승달이 되었다가 사라졌다. 

    이번에도 두 명의 경계병은 그 어떤 소리도, 그 어떤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다. 

턱 밑에 차가운 금속이 닿는가 싶더니 섬뜩한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깊은 줄이 그어졌다. 옆의 병사가 목이 잘려 캑캑거리는 전우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등 뒤에 무토가 서 있는 뒤였다. 이 초 뒤에는 동료처럼 똑같이 피를 뿌리며 땅에 쓰러질 뿐이었다. 

    무토는 쓰러진 미군에게서 ‘케이바’라 불리는 군용 나이프를 뺏었다. 그리고 정문 쪽 참호 속에서 머리통만 삐죽 내민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를 쳐다봤다. 야밤의 습한 더위에 둘 다 철모를 벗어 엎어놓고 있었다. 일 초 후, 두 개의 케이바가 거의 동시에 두 명의 뒷머리에 꽂혔다. 얼마나 강한 힘이었던지 칼끝이 이마를 뚫고 나올 정도였다. 

    무토는 시간을 확인했다. 경계병을 다 제거하는 데에 7분이 소요되었다. 그는 천막이 늘어선 야영지를 쳐다보았다. 아주 미세한 기척도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을 동원하며 주변의 모든 사물에 집중했다. 그 어떤 낌새도 느낄 수 없었다. 모두가 잠든 건 확실해 보였다. 그는 다음 표적인 지휘관 천막 쪽으로 몸을 감췄다.     

    천막의 출구 가림막이 열리면서 중위 계급장을 단 지휘관이 나왔다. 숲 쪽으로 걸어가 소변을 보려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휙 하고 경계병 쪽을 돌아봤다. 어둠뿐, 사람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기관총 참호 쪽을 재빨리 고개 돌렸지만 삐져나와 있어야 할 뒷머리 윤곽 역시 보이지 않았다. 지휘관은 재빨리 허리에 달린 권총집에서 총을 뽑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 순간, 무토에게도 예상외의 상황이 발생해버렸다. 

    지휘관은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기어이 권총을 쏘았고, 정글 숲에 '탕!' 소리가 메아리쳤다.      


    마츠이와 대원들도 총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무토가 제압한 청음초 부근으로 이동해 수류탄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마츠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부소대장이 근심이 깃든 표정으로 마츠이를 쳐다보며 수신호를 했다. 발각된 것 같으니 지금 공격을 감행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마츠이는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이더니 각각 좌우 양쪽을 가리켰다. 병력 일부를 이동시켜 완전히 포위하라는 지시였다. 

    부소대장이 대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 떠나자 마츠이가 총소리에 소란해진 캠프 쪽을 쳐다봤다. 

    "병신 새끼…."     


    정글에 울린 한 발의 총성은 당연히 적들을 깨웠다. 특수대원답게 이들의 반응은 일사불란했고 신속했다. 본능적으로 무기부터 들었고 지체하지 않고 곧장 튀어 나갔다. 그러나 몸과 몸이 부딪치는 백병전에서 무토를 이길 적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무토는 가장 가까운 이 인용 천막으로 뛰어들었다. 마체테로 뎅강 머리 두 개를 자르고는 천막을 찢고 돌진했다. 그가 천막과 천막 사이를 휩쓸고 지나가자 마체테에 잘린 머리통이 후두두 떨어졌다. 한 미군이 무토의 등 뒤에서 총검을 휘둘렀다. 먼저 피한 무토가 팔꿈치로 목덜미를 내려쳤다. 이내 나뭇가지 꺾는소리와 함께 목뼈가 부러졌다. 

    무토는 어둠에 파묻혀 칼춤을 추듯 정글도를 휘둘렀고, 목 없는 사체가 늘어날수록 미군 진영 전체에 공포가 번져 갔다. 그들을 공격하는 형체는 도저히 인간이라 부를 수 없었다. 마치 정글도를 든 악령처럼 보였으리라. 

    사방에서 미군의 영어 외침이 터졌다.      


어디야!, 놈은 한 명뿐이야, 은폐해! ,아무 데나 갈기란 말이야!, 중대장님!, 선임 상사님!, 어딨어! 제기랄!, 씨발!, 다 죽는단 말이야!, 후퇴해! 후퇴! 쏴! 쏘라고!     


    전투 중인 무토는 적군이 어떤 방향에서, 몇 명이 오는지까지 본능적으로 다 계산이 되었다. 적병이 가장 많이 몰린 곳으로 향하며 비로소 권총을 뽑았다. 귀신처럼 움직이며 쏘고 베고, 쏘고 베고를 반복하며 계속 전진했다. 후방 쪽 마지막 천막 위치에 다다랐을 때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소총을 감지했다. 무토의 손이 더 빨랐고, 소총을 제압당하고 벌벌 떠는 적군의 두 눈과 찰라적으로 마주쳤다. 겨우 스무 살이나 됐을 법한 어린 눈이었다. 스물을 넘기기는 무토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서너 살이 더 많을 뿐 다를 건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무토는 이마 한가운데 총알을 박았다. 


    권총 탄창이 다 소진되자 무토는 적군의 소총을 들었다. 시체에서 여분의 탄창도 확보했다. 이 순간 타 타 타 콩알이 튀는 소음이 터져 나왔다. 무토가 몸을 던지고는 방향을 파악했다. 후방 절벽 경사면에 미군 하나가 톰슨경기관단총 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시야가 확보된 곳에 있는 경기관총은 항상 골칫거리였다. 마츠이와 대원들이 돌격을 감행하기 전에 해치워야 했다. 

    경기관단총을 쏘는 미군은 어둠에 섞인 무토의 몸뚱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듯했다. 대충 예상지점에 총알을 때려 박을 뿐이었다. 널브러진 미군의 시체에도 기관단총의 대구경 탄환이 박히며 들썩거렸다. 무토가 시체 한 구를 들어 방패로 삼고 돌진했다. 늘어진 시체를 들었으나 그의 빠르기는 여전했다. 절벽의 한쪽 경사면을 타고 오른 무토가 밤하늘에 날아올랐다. 미군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총구를 하늘로 틀어 올리며 탄창 수십 발을 쏟아부었다. 방패로 삼은 시체는 누더기가 되었고, 무토는 시체에 난 구멍 속으로 소총을 발사했다. 딱 한 발을 쏘았지만, 적군의 입 안이 터졌다. 무토는 누더기가 된 시체를 던지고는 가뿐히 착지했다. 

    이 순간 쉭 소리가 남과 동시에 무토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왔다. 유탄이었다. 펑! 소리와 함께 땅이 패었고 날아든 파편이 무토의 팔뚝에 박혔다. 하지만 그리 심하지 않았다. 최고강도로 훈련된 무토의 근육조직은 보통 인간보다 서너 배는 더 단단해서 총알이든 칼이든 깊이 박히지 않았다. 고통도 충분히 참을 줄 알았다. 그저 따끔거리는 정도로만 느끼고 말 뿐. 

    시계를 확인했다. 19분이 지나 있었다. 이제 신호를 보낼 때였다. 무토는 일본군 수류탄을 딱딱한 바닥에 때려 안전 고리를 해제하고는 유탄이 발사된 지점에 던졌다. 사초 후 수류탄이 터지며 악 소리와 함께 유탄을 발사한 미군이 즉사했다. 이어 연달아 수류탄 세 발을 정문 방향을 향해 던졌다. 일제 공격 신호를 확실히 보내기 위해서였다. 무토는 도망치는 적군 무리의 수를 재빨리 훑었다. 십여 명이 약간 넘어 보였다. '마지막 청소'를 위해 무토는 소총을 들고 후방 절벽 면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서 난사를 퍼부을 작정이었다. 

    이때, 펑! 펑! 척탄통 유탄이 곳곳에 터졌다. 흙비가 쏟아졌고, 도망치던 미군의 몸뚱이가 갈가리 찢어졌다. 공중으로 솟은 조명탄이 터지면서 한순간 사방은 대낮처럼 밝아졌다. 

    마츠이의 돌격 지시가 이제야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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