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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ug 25. 2020

유통기한이 지난 현 시대의 '종교'들

유종의 미 '완결편'을 내놔야 할때..


말세라 칭하는 현 시대, 왜 이렇게 목사나 스님등 영성을 빙자한 원숭이들의 난잡함이 극에 달하는건지 따져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원래 범죄 성향의 말종들이 합법적으로 사기치기  좋은 종교와 영성계로 몰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된 근본이유는 모든 고대 종교들의 기반인 경전 말씀들 유통기한이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음식이 썩고 상해서 변질되면 그 냄새를 맡고 날파리들이 꼬이는건 당연하다.


한국은 과거 쌀밥에 고기국 먹으면 소원이 없다던 시절에서 현 시대 인류는 일부러 채식을 선호하고 살빼기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 인류가 원하던 삶은 이미 충족됐음에도 그 시대 인류의 소망인 쌀밥에 고깃국 타령하는 시대에 뒤쳐진 가르침이 현 시대 '종교'  모습들이다. 그때는 옳았어도 지금은 아니다.


예수와 붓다가 현시대 한집에서 같이 자취한다는 코믹 만화 '세인트 영맨' 실사판 영화


일본만화 '드래곤볼' 과 같은 초 히트작은 작가가 아무리 깔끔한 완결로 작품을 완성하려 해도 주위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매편마다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할수 없으므로  최초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용이 산으로 가면서도 어거지로 스토리를 최대한 질질 끌며 연재를 이어 나간다. 죽어도 죽어도 어떻게든 살려내는 히트한 영화나 미드라마 대부분이 그렇고 작품의 완성도 보다는 자본주의 관점에선 보증된 흥행만이 중요할 뿐인지라 내용이 어떻게 흘러 가던지 그다지 중요한것이 아니다.


https://brunch.co.kr/@yemaya/402


현 시대의 종교 모습들이 대부분 그렇다. 이미 시대가 흘러 유통기한이 다 지났음에도 어떻게 변조해서라도 계속 흥행을 이어가려 이단 삼단 바이러스 변형하듯 계속 모습을 바꾸면서 가지를 쳐 나간다.

 


요즘- '공작왕'의 배경인- 티벳밀교의 창시자  '파드마 삼바바'란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보니 티벳밀교에 관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책들을 보고 있다. 보면서 자꾸 뭔가 걸리는데 그것은 바로 과거 가르침의 핵심들이 지금의 시대와 딱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시대가 달라지면서 그 효용성이 다해 유통 기한이 지났음을 보면서 고전문학 읽는 재미로 보게된다. .. 옛날 사람들은 그랬구나 느끼면서..


 분량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해설도 마찬가지다. 50년대 서양문물의 관점에서 신비하게 바라본 불교 해설이 현시대 특히나 본토 동양인들에게 제대로 먹히기는 힘들다. 티벳 밀교를 공부 하려니 현시대 나같은 독자보다도 못한 50년대 서양 철학 관점의 답답한 깜깜이 해설을 보고 있어야 한다. 그나마도 없는것 보다는 나으니까. 티벳어를 영어로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줌에 감지덕지 해야한다.


불교가 처음 인도에서 생겨났을 당시와 지금의 인류는 완전히 다른 사회와 삶을 살고있다. 원시적 삶과 벗어날길 없는 계급사회에서 불교는 인간으로 태어난 자체가 고통이고 해탈해서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 더 이상 인간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됨을 목표로 하고있다.


예수를 기둥으로 삼은 서양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지옥같은 인간사에서 휴거로 천국으로 들림받아 간다 라는 가르침을 기본으로 삼는다.



그 모든 가르침들은 그 시대 짐승같이 살던 인간들이 열망하던 이상향으로 '굶주리고 고통뿐인 인간 사회 자체가 싫다. 죽어서 다시는 이 지옥같은 세상에 환생하지 말자 ' 이다.


*실제로 불교 경전에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이 생긴 계기가 석가가 죽으면 극락에 가게 된다고 말하니 제자들이 서로 극락 가라고 죽이게 돼서 라고 하며 기독교 에서도 죽으면 천당 간다는 말에 신도들 자살이 늘어나자 자살은 죄악이라는 가르침을 추가 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의 인간들은 그렇지만은 않다. 사회도 문명화 됐고 과거같은 원시적 계급 억압도 많이 사라졌다. (도리어 공짜로 의료를 지원해줘도  나라가 왜 이것밖에 안해주냐며 적반하장식의 요구가 많아졌다.)지금은 붓다나 예수시절, 인간이 유기견처럼 가뭄으로 굶어죽고 생존에 허덕이는 원시 문명 시대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현 시대는 일반인들도 예전의 왕보다 더 많은 물질적 혜택을 누리고 신기한 것들을 먹으며 산다. 과거인들이 현대인들의 물질 문명과 삶을 본다면 (속마음은 모른채)천국에 살고 있다고 부러워할 것이다.


게놈 프로젝트를 끝내고 죽기 싫다고 영생 하겠노라 발버둥치는 대다수 현시대 인간들에게 죽어서 더 이상 이 지옥같은 세상속에 환생하지 말고 해탈하자거나 죽어서 천국 가는것이 정답이다 라고 주장하는 종교 가르침들이 와 닿을리 없는것은 자명하다.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현생은 무조건 투자하고 희생해서 죽고나서 좋은데 가는걸로 결판내자 인데 난 죽는거 싫은데?어쩌란말?믿고 가 말어?종교적 믿음에 따르면 죽음앞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것은 천국을 부정하는 모순이 된다. 어서 죽어서 빨리 천국 가시라는 말이 교회 다니는 교인들이나 목사에게 덕담인지 아닌지 고민되지 않을수가 없다. 아브라함 시절에 자식을 재물로 바치고 안 믿으면 가족도 돌로치라는 경전을 지금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이라고 따르라 한다면 따르겠는가?


현 시대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건강하고 부자가 돼면) 누구나 즐거움과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는 상황이 되다보니 대다수 인간들 욕망은 과거처럼 현실 도피성 해탈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 남들보다 잘먹고 잘살고 싶다'가 돼 버렸다. 단지, 풍족한 물질문명에 비해 의식은 반대로 동물적으로 타락하고 극심한 빈부격차의 차별에 인류가 스스로 시달릴뿐이다.


그 착취의 근본에도 종교가 있다. (목사나 스님마저도 죽어서 천국과 해탈이 아닌 생전의 부귀영화를 추구 하는것을 흔하게 볼수있다.) 그야말로 사회에서 상처받고 신에게 의지하고 싶은 가장 불쌍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상대로 '사후 천국티켓' 장사를 해서 돈을 긁어 모으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스승이란 자신들의 욕망에 대한 죄책감을 책임지게 하고 대속하게 하는 상징일 뿐이다.  의식의 중심을 잡아줄 영성계가 앞장서 사회적 약자들을 상대로 사기치고 타락 하게 되니 세상이 난장판이 안될수가 없다.


제자들이라 칭하는 자들이 무슨짓들을 하고 있는지 눈 똑바로 뜨고 잘보고 계시곗죠?


인간은 과거처럼  무조건 지옥같은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은것이 아니라  사회적 고통들을 인간들 스스로 문제삼기 시작하고 민주주의 방식으로 해결 하려는 존재로 발전했다. 수천년전 고통받고 억압 받아도 탈출구가 없던 인간의 죽음에 대한 도피 욕구에 맞춘 경전이 현시대 살아서 행복을 누리려는 인간들 욕망을 충족 시킬리 만무하다.


시대가 바뀌어 감에도 계속 어거지로 해탈과 죽어서 천국 가자는 수천년전의 스토리를 이어 나가려니 이단 삼단 자꾸 자꾸 모양을 바꿔가다 모순에 막히고 어거지로 협박 하려다 보니 이유불문 '불신 지옥'이라는 괴상한 개념까지 만들어 사기를 친다. 수천년간 깔아논 밑밥도 가득하고 무조건 막대한 수익이 보장되는 돈벌이를 어떻게 그만 두겠는가.


최초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어거지로 이어져 변형된것이 현세의 종교 모습들이다.  팬시 성향으로 진리의 추구보다는 그럴듯한 달콤한 말로 대중들 마음의 위안과 협박을 적절히 섞어서 돈을 긁어 모으는 장사꾼 공룡기업이 돼 버렸다.


원작자의 의도나 진리의 추구와는 무관한 단순한 성자들의 팬클럽 비지니스 장사에 불과하게 변질 되면서 돈에 눈멀은 사기 날파리들이 꼬이는건 당연한 현상이다. 이단이건 정통이건 건달들이 양복입고 삥뜯냐 양아치가 추리닝 차림으로 삥뜯냐  차이일뿐 무조건 자신들에게 돈 갖다 바쳐야 좋은데 간다라고 신자들 상대로 협박하는 근본 구조는 같다.


*특히나, 교회는 과거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은 당사자 이면서 지금은 태도를 바꾸어 예수를 간판으로 장사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보이는가?


나같은 일반인이 잠깐 휙 훝어만봐도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구조적 허술함과 모순들을 신자란 사람들이 몇년동안 공부하고 기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은  아직 대부분의 인간이 무지를 벗어나 진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는것을 보여주는 실예이다. 대부분 인간들이 그 모순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엉터리 논지의 종교가 현대에도 계속 유지 되는것이다.


시간이 흐른다 해서 종교의 본질이 바뀌는것도 아니다. 종교는 결코 인간이 무지에서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는 지적인 생물이 되길 원치 않는다. 이미 수천년을 그렇게 지나왔고 인간들에게 노예처럼 죄인이란 목줄을 걸어서 재물과 영혼을 빨아먹는 노다지 장사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것임을 안다. 인간이 아직 미신과 토테미즘에 의지하는 무지한 동물임을 일깨워주는 증표가 우리가 보고있는 종교의 형태이다.


그곳에 신이 있을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나와같은 신세대 신인류를 지향하는 부류는 고대 경전들을 고전으로 존중하고 원작자의 핵심을 받아들일뿐 실효성이 사라지고 종교 권력의 입맛에 맞게 변질된 허무맹랑한 주장들은 양심상 받아들일수가 없다. 우선, 경전을 따른다는 그들의 행태가 본받을 만하지 않다는것은 교회에 예수가 없고 절에 붓다가 없다는 명백한 증거다. 껍데기만 남아 수천년간 인간의식을 노예처럼 장악하고 괴물로 변해버린 종교와 종교인들의 범죄들에 더 이상 시달리긴 싫다.


앞차가 빠져야 새차가 온다. 시대에 떠밀려 강제로 폐기처분 당하기보다는 유종의 미로 아름다운 '완결'을 짓는것이 모든 뿌리깊은 고대 종교계의  코앞에 닥친 숙제가 될것이다. 강제로 폐기처분 되는 마지막 까지 얼마나 버틸수 있는지는 끝까지 노예로 먹이를 갖다 바치는 자들의 선택이고 단지 시간이 알려줄 문제다.


시간은 항상 진실과 옳은말을 하는 자의 편이라고 나는 말한다. 내가 옳다면 시간은 언제나 나의 편이다.


https://brunch.co.kr/@yemaya/525

https://brunch.co.kr/@yemaya/874


Déjà Vu:

https://youtu.be/QhE4aVv-v_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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