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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Feb 05. 2017

말기암, 자동으로 정리되는 인간관계들

껍데기를 벗겨내면 드러나는 실제 인간관계


후배와 친구를 홍대에서 동시에 만나 맛있는 삼계탕을 먹고 과일쥬스를 마시고 즐거운 수다를 떤 하루.. 내가 건강했다면 술자리가 벌어졌을 테지만 중년 남자들끼리 만나 술없이 식사와 차만을 마시며 수다떠는 일이 그리 흔한일은 아니다.


수다의 화제는 내가 병원에 누워있었음 이미 죽었을텐데 아직 멀쩡한 생존에 대한 기쁨과 생식한답시고 암환자가 생라면 뜯어먹기나 하는 내 기행을 질타하는 걱정스런 야단등이 주이다. 모든 화제가 나를 위주로 진행된다.


친구와 후배는 나를 만날때마다 꼭 사진을 남기려고 한다. 몇십년을 같이 지냈어도 사진 찍는것 같은건 한번도 신경써본적 없던 친구들이다. 엄마도 그러신다..당장은 멀쩡해 보여도 내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것을 염두에 두고있다는 행동인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런것을 전혀 염두에 두고있지 않다.


말기암 판정이후, 내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들이 자동 정리가 되었다. 정확하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되는데 자신에게 어떤 귀찮은 일이 닥칠까 알아서 연락을 끊는 부류와 진심으로 모든것을 내주고 도와주려 하는 사람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생각지도 못하게 진짜로 아낌없이 후원을 보내주는 20년지기 후배앞에서 내가 그간 사람내면을 진짜로 보지못했음을 뉘우치게 된다. 짠돌이 쫀쫀한 성격등 매장을 운영하는 후배인데 장사할땐 몇천원 가지고도 꼼꼼히 따지고 드는 스타일 이다.


그 짠돌이 스타일에 친구 만나면 뒷말도 많이했던 후배인데 내가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고 하는순간 20년간 보여줬던 내가 알던 성격은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자신도 넉넉치 않은 상황에서 그야말로 부담갈 정도로 계속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비싸다는 정관장 홍삼을 계속 맞춰서 다려 내려보내는것과 함께 최고급 보충제를 구해주고 자신이 판매하는 최고의 제품들을 넘치도록 지원한다. 부담돼서 계속 사양해도 해주고 싶어 못견디겠다는 투다.


거의 삼십년지기 친구도 마찬가지, 내가 어떤 악조건의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내편이 되어줄 사람들이 정확하게 드러난다. 반면, 대부분 관계들은 립서비스 안부로 관계정리를 하는데 친척들도 마찬가지 두 부류로 나눠진다. 뭐라도 하나 보태주려는 친척과 형식적인 립서비스 안부를 건네고 손내밀까 미리 걱정하며 관계를 맺지않으려는 친척들로 나뉜다.


결국, 주위에 남게되는 사람들은 가족을 제외하면 손꼽을만큼 몇명되지 않는데 쓸데없는 관계들이 한방에 정리된것에 나는 충분히 만족 스럽다.


지금 나와 만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사회적 형식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내가 아무것도 줄수 없음을 알아도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으며 자신이 줄수있는것은 아낌없이 주려고만 한다. 정성과 시간이 오래 걸리는 효소를 직접 만들어 주는 지인도 있다. 효과가 있기에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비록, 소수의 관계일지언정 내가 피해만 끼치고 죽더라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슬퍼할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이 나에겐 많은 위안이 된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사회적으로 죽음을 선고받은 이후 모든것이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모든일에 감사하다는 감정을 지니게 돼고 편안하고 포근한 감정을 가질수 있으며 필요한것이 그다지 없기에 아무것도 부럽지 않은 충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질적으로 가진것 없어도 죽음과 함께하는 삶에서 명품옷 좋은차 좋은집등 물질적인 욕망은 내안에 들어올 자리가 없다. 지금의 내 상황에서 건강 말고 더이상 무엇이 더 필요할까.. 오직, 한가지만 부족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면 된다. 현재, 내가 할일은 오로지 숨쉬고 살아가는것 외엔 없기 때문에 마음은 한없이 여유롭게 된다.


시골에 있을때 시간날때 마다 무제한 통화하는 친구가 있는데 나보고 하루종일 심심하지 않냐고 한다. 죽음과 함께하는 환자에겐 그냥 살아있다는것 , 사는것은 절대 심심하지 않다.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즐겁거나 괴롭거나 둘중 하나이다.


나는 내가 사실은 얼마나 낙천적인 성격이었는지 그것이 천성이었음을 그동안 깨닫지 못했었다. 겉으론 농담을 하며 대부분 사회생활을 했어도 항상 만족을 모르고 스스로 고뇌하는 심오한 사람인줄 알았었다.


사회생활 하느라 복닥거리며 살았던 이전에 비해 숨쉬고 아프지만 않고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삶 속에선 감사하는 마음에 이유가 필요하지 않고 행복을 느낌에도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아무런 이유없이 나는 존재만으로 행복할수 있고 즐거울수 있다."감사하고 감사하다". 이것은 내가 말기암 판정이후 항상 주문처럼 외우는 나만의 만트라 이다..


https://brunch.co.kr/@yemaya/729

Chaim Pshutim (Simple Life):

https://youtu.be/06NTB0A2V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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