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히 Dec 16. 2019

글로 되찾는 일상



1.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지 않으니 날짜 감각이 사라진다. 오늘 아침에 켠 라디오 덕에 월요일이 다시 밝았고 2019년이 2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또 실감한다. 주 2회뿐이지만 책방에 가는 날을 기점으로 전날엔 이걸 하고 다음 날엔 저걸 해야겠다며 한 주를 계획한다. 기준이 사라진 탓에 잠깐 일시정지돼버린 일상이 어색하기만 하다. 지금 내 옆엔 지혈에 방해되는 커피 대신 오렌지주스가 놓여있다.




2.

시술이 끝나고 숨도 못 쉴 정도로 칭칭 감아놓은 압박붕대 때문에 온종일 소파에 누어 텔레비전만 봤다. 핸드폰도 쥐기 힘들고 팔도 움직이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답답했다. 얕은 숨을 내뱉어도 명치를 콕콕 찔러대는 고통과 눕는 자세와 최대한 비슷한 자세를 찾으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일 때마다 조여 오는 붕대에 살이 밀리는 고통을 겨우 참고 드디어 붕대를 풀었다. 마음먹기를 어려워하지 막상 마음을 먹으면 잘 참는 편인데 이번엔 쉽지 않았다. 붕대 하나로 삶의 질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깊은숨을 들이마실 수 있게 된 사실에 감사하며 식탁에 앉아 키보드를 천천히, 살살 두드린다.




3.

샤워에 도전했다. 물줄기가 세지 않게 샤워기 물을 반 정도만 틀어놓고 조심조심 머리를 감고 몸도 닦았다. 기름기가 씻겨 나가니 이렇게 상쾌할 수가. 로션도 처음 발랐다. 평소 15분이면 충분한 샤워 시간이 30분, 2배가 걸렸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조심조심, 냉장고 문을 열 때도 조심조심,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을 때도 조심조심, 양치할 때도 조심조심하다 보니 밥도 천천히 꼭꼭 씹어먹게 됐다.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이 나쁘지만은 않다. 역시 이겨 내고 나니 새로운 게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감은 그 틈에서 자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