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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Apr 22. 2021

마당 아몬드 나무의 비밀

    올봄엔 유독 소나무가 많아졌다. 텃밭 가에 두 그루, 마당 주위 비탈에도 세 그루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겨우내 열심히 자랐는지 작년엔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다. 다른 나무들이 성장을 멈춘 시기에 어린 소나무는 무럭무럭 자란다더니 사실이었다. 나무도 어릴 땐 귀엽다. 보송보송하던 여린 솔잎이 빳빳한 탄력을 올리며 짙푸르게 성장하는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가지치기를 해주면 더 건강하게 자란다는데 참견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자연이라는 말을 따라 스스로 그러하게 둘 참이다.   

  

  과일나무들 가지치기도 올해는 생략했다. 포도나무만 예외로 가지치기를 해 두었다. 포도나무는 새로 난 줄기에서만 열매를 맺는다. 겨울엔 거의 죽은 것 같은 앙상한 목질인데 여름이면 새 줄기와 잎이 왕성하게 돋아난다. 탐스런 열매도 주렁주렁 달린다. 우리 집 과일나무 중 가장 수확이 많다. 이곳 마당엔 앵두, 블루베리, 포도, 복숭아, 자두, , 대추, 감나무가 자라고 있다. 종류가 제법 많지만 수확할 만큼 열매가 달리는 건 앵두, 블루베리, 포도, 대추 정도다. 복숭아나무도 열매는 가득 맺는데 알이 잘고 대부분은 벌레가 꼬여 익기 전에 떨어진다. 이웃 사람 말로는 개복숭아라고 한다. 하지만 근처의 다른 개복숭아와는 또 열매 크기나 색이 조금 다르다. 확실한 품종을 모르니 그냥 복숭아나무라 부르고 있다. 주변에 자라는 수많은 풀과 나무의 정확한 정체를 알긴 힘들다. 요즘 흔히 보는 제비꽃이나 쑥도 종류가 수십 가지다.       


    마당의 복숭아나무는 그 정체성에 대해 몇 년 간 오해가 있었다. 처음 발견했을 땐 영락없이 아몬드 나무인 줄만 알았다. 봄에 텃밭 흙을 뒤집다 발견한 가느다란 줄기 아래 아몬드가 달려 있었다. 통통하게 불은 아몬드에서 싹이 돋아 줄기를 뻗은 것이 보였다. 아래쪽으론 하얀 뿌리도 촘촘히 돋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분명 아몬드였다. 집에서 늘 먹고 있는 바로 그 아몬드. 평소 생 아몬드를 사서 씻은 뒤 볶아서 먹고 있다. 벌레 먹거나 불량인 아몬드는 골라내어 음식물 찌꺼기와 함께 밭에 묻었다. 텃밭에 거름 삼아 묻은 음식물 찌꺼기에서 싹이 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감자나 호박씨, 콩이 주로 그랬다. 상태가 좋지 않아 버려진 것들인데도 싹은 멀쩡히 돋았다. 아몬드도 싹이 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싹이 났으니 키워보기로 했다. 처음 발견된 자리에 가만히 주저앉혀 흙을 잘 덮어주고 둘레에 풀이 접근 못하도록 잔돌을 깔아주었다. 지나갈 때마다 잘 자라라, 응원도 하고 필요한 거 있음 말해, 대화도 시도했다. 부엽토 거름도 듬뿍 주고 겨울엔 낙엽과 풀덤불을 긁어다 두툼히 덮어 얼지 않도록 보살폈다. 아몬드 나무가 자랄 기후 조건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자랄만하니 싹이 트지 않았을까 싶었다. 검색을 해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몬드 나무를 재배하는 농원이 있었다. 복숭아나무와 생김새가 흡사한데 열매가 익으면 과육이 벌어져 씨가 드러난다고 했. 그 씨앗 외피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몬드였다.     


   내 은근한 관심 속에 나무는 천천히 키를 높이며 가지를 뻗고 버들잎 같은 길쭉한 이파리를 내었다. 두 해 정도까지는 가느다란 꼬챙이 수준이었다. 보잘것없는 모습이었지만 산골 마당의 정서는 그로 인해 글로벌해졌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아몬드가 나무로 자라는 마당인 것이다. 세 번째 봄부터 나무는 갑자기 성장이 빨라졌다. 나무도 사춘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내 품을 벗어나는구나 싶게 낯설 정도의 성장이었다. 쑥쑥 자라 내 키를 넘어서면서 사방으로 가지를 뻗더니 이파리가 무성해졌다. 영양이 부족할까 염려되어 난로에서 나온 재와 낙엽 거름을 섞어 넉넉히 둘러주고 쌀뜨물도 수시로 부어주었다. 동생은 <아몬드 나무>라 이름 쓴 팻말을 만들어 나무에 걸어주었다.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빈센트 반 고흐 작품

   아몬드 나무 검색을 해보면 빈센트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가 가장 많이 올라왔다. 옥색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꽃을 피운 아몬드 나무. 서른일곱 해를 산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봄에 동생 테오의 아들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마당의 아몬드 나무가 꽃을 피운 건 네 번째 봄을 맞아서다. 고흐의 그림과 다르게 내 마당의 아몬드 나무는 분홍 꽃이었다. 검색을 해 본 캘리포니아의 아몬드 나무 꽃과 똑같았다. 아몬드 나무 꽃은 분홍과 흰색 두 가지라 했다. 꽃이 핀다는 건 열매를 맺는다는 것. 꽃 피운 그 해 아몬드 나무는 열매를 맺었다. 흔히 보는 매실과 흡사한 열매였다. 열매는 여름을 지나며 벌레가 꼬이더니 가을 태풍에 거의 떨어지고 말았다. 시월 즈음 달랑 두 개 남은 것을 따서 과육을 잘라보았다. 아몬드라면 겉 과육이 갈라져 안의 씨가 드러나야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얇은 솜털에 덮인 열매는 물렁했고 복숭아 향을 물씬 풍겼다. 안엔 단단한 씨가 있었다. 씨를 쪼개니 아몬드와 닮은 속씨가 나왔다. 잠깐 흥분했다. 제대로 익지 않아 그렇지 이게 바로 아몬드가 아닐까 싶었다. 옆에서 흥미롭게 구경하던 동생은 열매를 조금 맛보더 냉정히 선언했다.      

  복숭아네.”         


   그 뒤 두 번의 봄을 더 맞으며 나무는 밑동이 더욱 굵어지고 키도 힘차게 뻗었다. 마당 중심에 떡하니 자리 잡고 마당에서 가장 큰 나무로 자라났다. 처음 발견된 자리가 마당 한가운데였다. 올봄에는 예년보다 열흘쯤 더 빨리 꽃봉오리를 맺었다. 마을의 다른 개복숭아보다 일주일은 빠른 듯했다. 여러 날에 걸쳐 꽃잎을 여는 사이 봄눈이 살짝 지나갔다. 년째 복숭아꽃 피는 시기엔 꼭 한 차례 봄눈을 보게 된다. 난분분 흩날리는 하얀 눈 속에 연분홍 복숭아나무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폰 사진이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봄눈 오는 날 복숭아나무

   어디서 바꿔치기 된 것일까. 지금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라고 실망스러울 건 없다. 하지만 분명 나는 아몬드에서 돋은 파릇한 줄기와 하얀 뿌리를 보았던 것이다. 원하는 자리에 뿌리내리기 위한 나무의 교묘한 위장술이었을까, 아니면 불가해한 생이 내게 건네는 농담 같은 거였을까. 해결되지 않은 내 물음과는 상관없이 나무는 초연하다.  우기와 건기, 혹한과 풍을 지나,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잎을 낸다. 어진 환경에서 최선으로  열매를 키우고 가을이면 잎을 떨휴식에 든다.        


  작년 오월엔 덜 익은 열매를 한 바가지 따서 효소를 만들어보았다. 은 뒤 맛을 보니 매실 효소보다는 신맛이 덜하고 향긋했다. 아직도 내겐 은한 기대가 남아 있다. 나무의 감쪽같은 변신에 어떤 묘한 섭리가 다시 작용할지도 모른다. 오묘한 가을 하늘 아래 실하게 익은 열매가 벌어지고 그 안에서 깜짝 놀랄 무언가가 나타날지도.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오류는 숲속 갈래길처럼 알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아는가. 나라고 믿고 있는 자신 역시 어느 갈래에서 슬쩍 바꿔진 존재인지도.  


   눈이 내린 며칠 뒤엔 초여름처럼 날이 더워졌다.  더디게 열리던 꽃봉오리들도 남김없이 활짝 피었다. 마당 고양이들 분홍 꽃그늘 아래 모여 몸단장을 하며 논다. 동생과 나도 꽃나무 앞 파라솔 아래서 솔잎차를 마시며 쉰다. 산골 마당에 어린 소나무가 자라는 이치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 또한 내겐 불가해하. 모두 어디서 오는 신비일까. 자연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는 나 자신 역시 하루하루 낯설다. 마당 아몬드 나무 비밀이 언제까지나 풀리지 않는 것도 좋겠다. 당연한 것은 자극 없이 편안하지만 불가해한 것엔 낯선 아름다움이 있다. 알 수 없는 채로 마당의 복숭아나무는 여전히 아몬드 나무다.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이름이 아몬드인 복숭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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