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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Oct 24. 2021

저는 문을 열 수 없어요

자가격리는 부동산 사기에서 안전할까?

 

지금은 해외 백신 접종자에 대해 제한적으로 자가격리 면제 조치가 시행되고 있어 자가격리 걱정을 좀 덜었지만-같은 비행기 내에 있을지도 모를 확진자에 대한 염려는 있다- 작년 겨울, 조카를 보기 위해 한국으로 향했을 때는 자가격리가 큰 걱정거리였다. 가족 모두의 걱정거리 말이다. 지금이야 아기(조카)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백신 접종을 마쳐 걱정이 덜하다지만 당시에는 이런 전염병 사태 자체가 처음인지라 자가격리라는 생소한 상황 앞에서 내가 묵을 숙소를 구하느라  식구들이 동분서주해야 했다.


 회사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보통 호텔 아니면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는데 우리 부모님은 인터넷 사용을 어려워하시다 보니 부동산을 먼저 방문하셨다.  부모님은 격리 내내 나가지 못할 내가 안쓰럽다는 마음에 가능한 한 깨끗한 곳으로 구해주려 했으나 가격을 떠나 집주인들이 반기지 않았다. 2주 요금뿐 아니라 한 달 요금을 내고 2주만 쓰겠다고 해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허름한 곳이나마 숙소가 구해졌을 때는 좀 놀랐다. 캐리어를 들고 동네에 내리는 것 자체가 눈치 보이던 시기-해외유입 확진자 추이를 보니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이니만큼 집주인이 찝찝해하는 마음도 백번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좌석버스가 아닌 지정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애틋하게 그리워했던 탓에 버스를 기다리는 세 시간 동안 도넛이나 신나게 먹자는 마음으로 도넛 가게를 향했는데 안타깝게도 도넛 가게는 지정 버스를 기다리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구역에 있었다. 버스는 시에 있는 하수처리장 옆에 비슷한 행선지의 사람들을 내려놓고 떠났다. 우리 집은 내가 없는 사이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공항에서 그 도시-자가격리 숙소는 이사한 집 근처였다-까지 가는 건 처음이었다. 주소지에 따라 하수처리장에서 PCR 검사를 받는 사람, 그리고 그냥 목적지로 가는 사람으로 나뉘었다-주말에 입국했기 때문에 관할 보건소 정책 따라 제각각이었다-. 몇 명인가가 나보다 먼저 내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내릴 곳을 찾아가는데 버스 운전사 아저씨가 왜 하필 지금 (한국에)들어왔느냐고 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보다 먼저 내린 남자 둘한테는 아무 말씀 안 하시더니 왜 하필 나만 단둘이 남았을까. 그래도 해외 유입 확진자 수나 코로나 시국 때문에 주말에까지 일터에서 고생해야 했던 아저씨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농담 섞인 책망 정도는 애교스럽다. 그냥 파하하 웃고 말 수밖에 더 있나.


 자가격리 생활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어차피 집순이라 홈트레이닝하고, 소설책 읽고, 당시가 아직 B2 시험을 준비하던 시기라 프랑스어 공부 좀 해주고. 평소랑 다를 것도 없었다. 다만 아주 작은 원룸이어서 내가 물티슈로 몇 번만 싸악 싹 닦으면 청소가 끝난다는 게 좀 귀여웠다. 주말이 끝나자마자 보건소로 가서 PCR 검사를 했고, 생각보다 거대한 구호물자를 전달받았다. 가족 중에서도 공무원들이 있어 코로나 시국에 얼마나 고생이 심한지 조금은 알고 있었는데 주말에 도착한 내게 그리도 신속히 구호물자가 도착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구호물자 박스의 거대한 위엄을 본 다니엘은 무슨 가게를 통째로 갖다준 거냐고 놀랐다. 지자체마다 해외입국자가 많으면 물자가 바닥난 곳도 있다기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음식은 물론이고 정신건강센터에서 준 색연필까지 들어있었다.


 어느 날은 비가 왔는데 숙소에 비가 새길래 내가 도착하기 전에 가족들이 놓고 간 종이컵을 벽에 붙이고 음식 포장 비닐로 물길을 만들어 어찌어찌 빗물을 받기는 했는데 그다지 신통치는 않았다. 다행히 그날 온 것이 가장 큰 비여서 그 후로는 빗물 걱정 없이 잘 지냈다.


 어린왕자의 소혹성 B-612에서 조난생활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 방안의 아주 작은 공간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자가격리가 정신건강에는 별로 안 좋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격리 해제를 5일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무튼 프랑스어는 귀에 안 붙는단 말이야.. 무슨 소릴 하는지 다 뭉개져서 들려..라고 생각하며 다시 하던 홈트레이닝에 집중하려는데 생각해 보니 여긴 한국 아닌가. 아 이래서 고립이 정서에 안 좋다고들 하는구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1년도 지난 이야기를 왜 이제 와서 올리는가 하면 격리 기간 동안 있었던 기막힌 일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혹시라도 글을 올렸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안 쓰고 있었는데 여러 번 생각해 봐도 상호를 노출할 것도 아니고 누구 신상이 노출될 것도 아니라 문제 될 소지는 없어 보여서 그냥 써도 되겠거니 싶어졌다. 정말 격리 해제가 목전이었던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유유자적 유튜브를 보고 있었고 마침 부모님이 등산이 끝난 김에 주변을 지나고 있어 문 앞에 구호 간식을 놓아주기 위해 격리 숙소로 오고 계신 시점이었다. 문밖으로 비닐봉지 놓이는 소리가 들려서 5분 뒤에 집어오면 되겠거나 싶었는데 부모님 아닌 다른 한 쌍의 목소리가 문 앞에 서있는 부모님에게 누구시냐고 따져 묻기 시작했다.


 이 격리 숙소는 부모님이 부동산에 수소문해 겨우 구한 것이었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했고 다른 수많은 집주인들에게 퇴짜를 맞은 뒤여서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부모님이 그런 사정을 설명했지만 문밖의 다른 부부는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지 이성을 잃고 문을 열라며 막무가내로 문고리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엄마는 절대 문 열지 말라고, 자물쇠 위의 걸쇠까지 잠그라고 문안의 내게 소리치고 부부 중 여자분은 당장 문 열어보라고 하고, 난장판이었다. 안절부절하던 나지만 격리도 다 끝나가는 마당에 여기서 문을 열어 금쪽같은 한국 체류 기간에 2주의 격리 기간을 더 추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부모님이 그 커플을 설득해 일단 밖으로 나갔고, 나는 필로티 기둥을 타고 올라오는 경찰과 그들의 대화소리를 엿들으려 노력했지만 그렇게까지 잘 들리지는 않았다. 부모님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은 채 흐른 30분여의 시간 동안 나는 불안에 시달렸는데, 다행히 (나에게는) 별일 없이 끝났다.


 알고 보니 부동산이 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빈 집을 나에게 빌려준 후 중간에서 돈을 가로챈 것이었고, 피해자는 부모님에게 나 역시 피해자이기 때문에 격리 기간이 끝날 때까지 있어도 좋다고 통 크게 허락해 주었다. 피해자 부부는 후에 이 부동산을 고소했는데, 듣기로는 이 부동산이 아직도 멀쩡히 영업 중이라는 것 같다-사실 이 부분이 제일 무섭다-. 사정을 들은 경찰은 일단 알겠고 집안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로 셀카를 찍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날 크게 당황해 문을 열라고 말하며 문고리를 당겼던 부부는 내가 자가격리 중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미열이 나는 기분이 들어 PCR 테스트를 받았지만 음성이었다고 한다. 내가 최초 입국 후 주말이 끝난 시점에 PCR 테스트를 받았을 때 역시 결과는 음성이었고 애초에 내가 당황해서 문 앞에 서있을 때도 마스크를 낀 채였기 때문에-밖에서 싸움이라도 나면 격리 연장이고 뭐고 말려야 한다는 생각에- 부부가 PCR 테스트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날로부터 1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날 부모님이 문 앞에 간식을 놓아주러 오지 않았다면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운이 정말 나빴다면 부부가 열쇠공을 불렀거나 경찰이 먼저 도착해 결국 문이 열리고 내 자가격리가 연장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보다 가장 고생한 질병관리본부와 각 지자체의 공무원 분들께 아낌없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사기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 격리가 끝날 때까지 있어도 좋다고 허락해주신 집주인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


아, 또 내가 도착하기 전 숙소를 청소했던 엄마가 바퀴벌레 똥이 많다고 하신 얘기를 듣고 정말로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바퀴 동무들에게도 감사 한조각을 전한다. 자가격리 기간동안은 쓰레기를 버릴 수없으므로 내가 아무리 음식 먹은 용기를 닦고 쓰레기 봉투를 꽁꽁 묶어도 벌레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바퀴의 신이 나를 비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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