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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l 13. 2021

영화 <빛나는 순간> 이 있는 : 올레 3-B 코스

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14.6 km

# 온평포구 ~ 표선 해수욕장

# 상징 : 통오름

#  21년 6월 23일 10시 25분 ~ 19시 10분 (8시간 45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4~5시간이며 난이도는 하에 속한다. 


https://www.jejuolle.org/trail/kor/olle_trail/default.asp?search_idx=4



혼인지 마을 : 온평포구


온평포구에서 시작한다. 혼인지 마을임을 강조하는 온평 마을답게 이곳에도 조형물들이 있다. 온평포구에 남아있는 옛 도댓불도 볼 수 있다.




시작한 지 500m 만에 3코스의 A와 B코스가 갈린다. 오름을 올라가고 싶긴 하지만 일단 바다가 우선이기에 B코스를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다음에 3-A를 가야지 다짐하며. 



오늘도 해녀 삼촌들은 일하고 계신다. 


호잇호잇 숨비소리 들리는 해녀 삼촌들의 물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 시야에 이렇게 많은 해녀 삼촌들이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이 마을에는 활동하는 해녀 분들이 많으신 걸까? 궁금해진다. 



원경의 성산일출봉과 근경의 해녀 삼촌들의 물질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외계에 와 있는 기분이다. 나의 세계는 육지가 전부인데, 육지에선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오감이다. 


아직도 보이는 성산일출봉이다. 멋진 자태를 계속 계속 보여준다. 1코스와 2코스는 '성산일출봉'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과연 성산일출봉은 몇 코스까지 보일까? 


연듸모루 숲길


바당올레를 끝내고 숲길로 들어간다. 


숲길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약 1km 정도로 길지 않고, 올레길에 있는 숲길 치고는 밝아서 혼자서도 별로 무섭지 않다. 


다시 바다로 : 온평 환해장성, 신산 환해장성


약 3km 지점에 온평 환해장성 그리고 신산 환해장성이 나란히 있다. 그냥 환해장성인데 소속된 행정구역으로 이름이 바뀌는 듯하다. 



구름이 꽤 있는 날이라 바다와 하늘은 어둑어둑하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은빛 바다에 팔은 따끔거릴 정도로 햇빛이 내리쬐는 날씨가 좋은데 아쉬웠지만, 그래도 시원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3코스 바당 올레는 그냥 해안도로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돌길을 걷는다. 바다와 해안도로 사이에 숨겨져 있으며 딱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폭의 길이다. 제주 바다를 보면서 검으면서도 희끗희끗하며 이름 모를 제주의 초목들이 자연의 색을 뽐내고 있는 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흥이 오른다. 



멋진 신산리 해녀 삼촌들이 보여서 반가웠다. 하늘이 어둑하니 바다는 짙어 보이고, 매서워 보인다. 아무리 근해라도 너울에 멀미라도 하시진 않을까. 



해녀들의 물질을 바라보고 있는 풍중이 보인다. 누구의 남편일까? 누구의 아버지일까? 해녀들이 물질을 끝낼 시간이 되었는지, 온평마을 해녀상 앞에 트럭들이 네다섯 대 주차되어 있고, 아저씨에서 할아버지 같은 남성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풍중은 '해녀가 바다에서 나오는 시간에 맞춰 나가서 마중하는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체로 해녀들의 가족들이 이 일을 맡는다. 나는 내가 목숨 걸고 일하고 있는데, 막걸리 마시며 기다리기만 하는 남편이 있으면 화날 것 같은데, 해녀들은 풍중이 있음에 감사하고 뿌듯해한다.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이사님이 쓰신 해녀에 관한 책「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을 보면 풍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스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온 사람이 풍중과 해녀를 보며 '프랑스에서는 여자가 일하고, 남자가 논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해할 수 없어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멀리 프랑스까지 갈 것도 없고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설록 티 뮤지엄보다 훨씬 맛있는 : 신산리 마을카페


신산 포구를 지나 카페에 앉아서 쉬면서 서명숙 이사님의 ⌜서귀포를 아시나요⌟를 보면서 눈물지었다. 이 책에선 아버님의 이야기가 가장 와닿는다. 신산리 마을카페 5.7km 중간 스탬프 지점이 나온다. 젤라또 장인이 만든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또 쉬었는데, 이때가 14시 즈음이었다.




농개


농개(농어개)는 농어가 많이 들어오는 어장이다. 입구를 막아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용천수가 솟아나는 곳이다. 



올레 3코스에선 무수히 많은 현무암 돌들을 볼 수 있다. 그리 크지는 않으면서 바다까지 두꺼운 두께로 펼쳐져있다. 




영화 <빛나는 순간>의 무대 : 삼달리 바다


영화 <빛나는 순간>의 무대인 삼달리 해녀 탈의장과 삼달리 어촌계를 지난다. 영화를 보면서 제주 곳곳의 풍경을 알아보며 '어! 저기는 저기다! 저기는 어디다!' 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것도 올레길을 걸으면서 얻은 수확이다. 해안도로를 차로 달리는 것을 100번 해도 아마 그렇게 알아보긴 힘들 것이다. 그런데 해녀탈의장이 있는 장면에서 어디서 보긴 봤는데, 정확히 어디라고 집어내진 못해서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것을 보니 삼달리 어촌계였다. 역시, 내가 지나갔던 길이다. 



뒤돌아 보면 아직도 위로 빼꼼 보이는 성산일출봉이다. 


주어동 포구, 신풍 포구를 지나면 바다목장이 나온다.


3-B코스의 백미 : 신풍 신천 바다목장


신풍 신천 바다목장은 약 9km 지점이다. 이곳은 오션뷰 목장이다. 풍경이 아주 멋졌다. 아침보다 구름이 조금 더 걷혀 좀 더 밝은 색의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여기는 사람들이 알고 찾아오는 곳인지 몇 무리의 여행객이 있었다. 그중에서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어머님 무리가 있었다. 우리 엄마도 친구들과 제주 여행을 갔을 때 저렇게 신나서 사진을 찍었겠지 하는 생각에 웃음소리가 정말 듣기 좋았다. 코로나를 핑계로 사람들을 멀찌기 피하면서 다니고,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무뚝뚝 대마왕은 그렇지 않았을 테지만, 엄마인 것 같은 느낌에 말을 걸었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사진 찍는 동안에도 어찌나 웃으시는지 보는 내가 덩달아 웃음이 날 것 같은 아름다운 분들이었다. 바다목장을 배경으로 멋진 단체사진을 건지셨기를. 




신풍 신천 바다목장을 빠져나와 신천리 바닷길을 걷는다. 비슷해 보이지만 용암의 느낌이 다르고, 돌이 다르고, 바다 색깔도 시시각각 변하고, 하늘도 변하여 한 시도 같을 수가 없는 올레길이다.



11km 즈음 걸었을 때 또, 카페에서 쉬었다가 움직였다. 어느덧 낮게 깔려 있던 구름은 사라지고 하늘색을 보이고 있었다. 너른 빌레를 가진 바다를 지난다.



배고픈 다리


올레길 지도를 보면서 배고픈 다리일까 했는데, 아래로 푹 꺼져서 그렇단다. 이름이 귀엽다. 여기서 처음 보았지만, 다른 올레길에도 배고픈 다리를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금발의 외국 여성 세 명을 보았다. 관광지가 아닌 마이너한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여행객이 아니라 미군 등이라서 제주에 머무는 사람이지 않는 이상 이런 곳까지 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배고픈 다리는 천미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는 다리이다. 현재 천미천은 470억 원을 들여 하천 정비 공사를 하고 있다. 자연은 건드려봤자 이득이 없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임을 아직 깨닫지 못한 걸까. 자연과의 공존이 '낭비'처럼 보이겠지만 이 공사에 들어가는 몇 백억 대의 돈이 더 낭비이다. 4대 강 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몰랐을까? 알았을 것이다. 알았음에도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 테지. 어찌 인간 주제에 자연을 건드려서 이기려 드나. 아직도 물길을 건드리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이 많은 가보다. 올레길을 걸으며 하천을 포클레인이 헤집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는데, 마음이 아팠다. 


https://www.hani.co.kr/arti/area/jeju/999142.html


해신사와 천궁 해신당이 나란히 있는 게 재미있었다. 해신사는 '대한불교'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 절임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용왕이 있었고, 부처보다 용왕이 더 높은 지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천리 쉼터를 지나면 곧 소금막 해변이 나온다. 문득 이제 성산일출봉이 안 보임을 깨달았다.


3코스의 백미 : 소금막 해변에서 표선 해수욕장 가는 길


소금막 해변은 아주 한적했다. 이런 하얀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니? 내가 온 날이 주중이고, 시간이 바다에서 놀기 애매해서 그런 걸까? 궁금해서 표선에 거주하는 해녀학교 학생에게 물어봤더니 그게 아니라 원래 이렇게 한산하단다. 



소금막 해변에서 표선해수욕장까지 가는 이 길이 또 다른 3코스의 백미이다. 끝이 보였지만 오랫동안 머물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엔 소금막 해변 오른쪽엔 표선해수욕장을 끼고 바라보는 이 풍경은 고요하다. 파도가 거의 없어 잔잔한 호수 같은 느낌이다. 서핑을 하는 사람 네 명이 이 넓고 아름다운 바다를 즐기는 전부였다. 나도 즐겨야겠다! 무거운 등산화를 벗어 들고 철벙철벙 걷는다. 이렇게 한산한 해변이라니. 제주에서는 드물지 않을까 싶었다. 13km 넘게 걸었던 발의 피로가 온통 씻겨나가는 기분에 매우 신났다. 




3코스의 종점 : 표선 해수욕장


표선해수욕장엔 이상한 조각상들이 많다. 제일 이상한 건 말이랑 치타랑 사람이 뛰고 있는 조각상이다. 3코스를 걸으며 표선에 처음 왔지만, 이후로 표선을 자주 방문하였다. 약간의 관광객에 비해 넓은 바다가 매력적인 곳이다. 



갑분 류승룡이 나타나서 수원 왕갈비 통닭이 생각나 웃으면서 3코스 종점에서 스탬프를 찍었다. 19시 1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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