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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Sep 25. 2021

한라산 숲에 파묻히는 : 돈내코 탐방로

서귀포 바다를 굽어보며

이름도 귀여운 돈내코 


돈내코 탐방로는 한라산을 남쪽에서 올라가는 코스이다. 원앙폭포로 유명한 돈내코 계곡 유원지 상류에 위치한 해발 500m의 탐방안내소에서 시작한다. 돈내코 탐방로의 최종 목적지는 남벽분기점. 이곳에서 남벽순환로를 따라서 영실 대피소로 1시간 더 가서 영실 탐방로나 어리목 탐방로로 하산할 수 있다. 


돈내코의 옛 지명은 ‘돗드르’이다. ‘돗’은 제주어로 ‘돼지’를 뜻하고, ‘드르’는 알뜨르, 정뜨르, 웃뜨르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듯 ‘들판’을 뜻한다. 돈내코의 돈은 ‘돼지’, 내는 ‘하천’, 코는 ‘입구’를 가리킨다. 이 지명들은 모두 돼지랑 관련이 있는데, 이곳이 들판으로 흐르는 하천의 입구에 멧돼지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볼 수 없다. 


돈내코에서 윗세오름까지 총 9.1km의 구간은 1973년에 처음 개방하였는데, 21년이 지난 1994년 7월 1일부터 자연휴식년제로 폐쇄 통제하였다. 그리고 2009년 12월 4일 15년 만에 재개방되었다. 


한라산 돈내코 탐방로 등반기 : 7km, 편도 3시간 30분 일정, 피톤치드 20,000% 


# 2021년 8월 10일 7시 30분 ~ 14시 (6시간 30분)


# 올라가기 : 돈내코 탐방 안내소 해발 500m 7시 30분 - 1km/7km 7시 50분 -  해발 700m 7시 58분 - 해발 800m 8시 22분 - 2.1km/7km 08시 25분 - 3km/7km 8시 50분 - 해발 1,000m 9시 - 3.5km/7km 9시 8분 - 해발 1,100m 9시 18분 - 해발 1,200m 9시 36분 - 해발 1,300m 9시 55분 - 평궤대피소 5.3km/7km 해발 1,450m 10시 12분 - 갈림길 6.38km/7km 11시 17분 - 남벽분기점 7km/7km 11시 27분  (3시간 57분)


# 내려가기 : 남벽분기점 11시 42분 - 남벽 앞 11시 47분 - 평궤대피소 12시 13분 - 둔비바위 12시 26분 - 해발 1,200m 12시 37분 - 1,100m 12시 48분 - 해발 1,000m 13시 - 해발 900m 13시 19분 - 해발 700m 13시 40분 - 돈내코 탐방 안내소 14시 (2시간 28분)


돈내코 탐방로는 총 7km로 한라산 국립공원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편도 3시간 30분 여정이다. 돈내코 코스는 쉬운 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난이도 ‘보통’으로 안내되어 있다. 

http://www.jeju.go.kr/hallasan/info/info/realtime/course06.htm


돈내코로 올라가서 영실이나 어리목으로 내려올 수 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돈내코로 올라가서 돈내코로 내려왔다. 돈내코는 올라가는 코스로는 인기가 없는 모양인지 올라가는 때는 등산객을 많이 볼 수가 없었으나 영실이나 어리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하산하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 


돈내코 탐방 안내소 ~ '밀림'에 들어가기까지


이곳은 이전에 한라산 둘레길 4구간인 동백길을 걸을 때 지났던 곳이라 길이 눈에 익었다. 동백길의 끝이 돈내코 탐방로와 만나면서 끝나기 때문에 동백길을 끝내고 차량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돈내코 탐방로로 내려와 돈내코 탐방 안내소를 지나서 버스 정류장이나 택시 잡는 곳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돈내코 코스는 한라산 등반로 중에선 가장 인기가 없어서인지 주차장도 아주 작다. 이전에 봐 두었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탐방 안내소로 약간의 오르막 언덕을 올라간다. 



저 멀리 백록담이 담겨있는 두모악이 보일 정도로 맑은 날씨이다. 양 옆은 온통 묘지이다. 서귀포 바다를 바라보고 볕이 잘 들면서 멋들어진 한라산에 자리한 묘역들이 좋아 보인다. 



돈내코 탐방 안내소에 도착하자 올라가는 인원과 시작 시간, 그리고 어디로 하산할 것인지를 적었다. 7시 30분. 돈내코 탐방로는 어떤 모습일지 설렘에 차서 등산을 시작한다. 


여전히 한라산 둘레길을 걸었을 때 하산했던 길을 따라 올라간다. 제주 국제공항에서 떴음직한 비행기가 마치 로켓처럼 올라간다. ‘비행기가 아니라 로켓인가? 원래 비행기가 저렇게 수직으로 올라가나?’


돗드르와 서귀포 바다를 밑에 깔고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비행기를 한참이나 구경했다. 날씨는 너무나 쾌청. 너무나 맑음. 오늘도 멋진 남벽분기점을 기대했다. 




한라산 둘레길 4구간 동백길과 만나는 돈내코 등산로


‘밀림 입구’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돈내코 탐방로는 ‘밀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빽빽한 숲이 이곳 말고 달리 어울리는 곳이 어디 있을까. 빽빽하고도 빽빽한 돈내코 숲이다. 



부슬부슬 비가 오던 날 걸었던 한라산 둘레길 동백길의 끝자락에서 만난 돈내코 탐방로


1km 지점을 지나고 곧 한라산 둘레길과 만나는 지점이 나왔다. 즉, 한라산 둘레긴 4구간 동백길은 원래 자체 길이 11.3km 지만 한라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1km의 추가 발품이 더 필요하다. 



http://hallatrail.or.kr/allcourse


한라산 둘레길 4구간 동백길에서 가까운 곳에서 노루를 본 것이 거의 돈내코 탐방로에 다다라 였기 때문에 노루를 지척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등반로에는 혼자 뿐이고, 그래서 발걸음을 조심조심 걸으며 아무도 없는 척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한 명 못 본만큼, 노루도 한 마리도 못 봤다. 무엇이 패인이었을까. 



1.72km 에는 썩은물통이 있다. 자그마한 습지인데 예전에 표고버섯을 재배할 때 사용했던 연못의 물이 흐리다고 해서 붙은 귀여운 이름이다. 


한라산 숲에 파묻힌다 : 피톤치드 20,000% 돈내코 코스


7km 중에서 2.57km 지점을 적송지대라고 알려주는 표지판이 나왔다. 소나무와 다른 나무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소나무 내의 품종을 어찌 구분할 수 있을까. 구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서울에 있는 공원에 심겨있는 나무처럼 뚝뚝 끊겨서 숲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들과 다르게 여기는 '밀림'을 이루며 자연 모습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을 보니 나무의 삶에도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겠다



오른 지 1시간 40분 만에 3.5km 표시를 보았다. 목적지 남벽분기점 7km의 반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돈내코 코스는 평궤대피소에서 남벽분기점까지 평지 초원이 나오기 전까지는 완전히 숲에 휩싸여있다. 다른 한라산 코스도 당연히 한라산 숲에 파묻혀 올라가지만 돈내코 코스는 다른 코스보다 탐방로 너비도 좁고, 숲의 밀집도가 달라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호흡이 가빠져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도리어 몸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온몸의 헤모글로빈에 갓 생산된 신선한 산소를 갖다 붙인다. 


산 밖에 아무리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도 이 안에선 무적이다. 숲이 다 막아준다. 하지만 8월 초중순 한여름의 더위는 그대로라서 땀이 뚝뚝 흘러내린다. 




제주 고유어가 가득한 돈내코 : 살채기도, 둔비바위


4km 지점인 살채기도가 나왔다. 소나 말들을 방목할 때 산짐승의 출입을 막기 위해 나무로 얼기설기 역어서 만든 문을 제주 고유의 언어로 '살채기'라고 한다. 여기에 길 도(道)가 더해져 '살채기도'로 불린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에서 말하는 고요하지 않아 '옳은' 한라산 숲이다. 온갖 종류의 새들이 다채롭게 산의 속삭임을 풍성하게 만든다. 



돈내코 탐방을 시작하며 등산객 명부를 작성할 때 내 앞에 두 명인가 있었다. 그분들이 올라가며 분명히 거미줄을 다 해치셨을 텐데, 부지런한 거미들이 내가 올라갈 때 이미 또 거미줄을 쳐놔서 돈내코 코스는 얼굴에 붙어 간지럽히는 거미줄 떼는 것이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올레길 18-1코스 추자도가 거미줄 최강자였고, 두 번째가 바로 이 돈내코 코스의 거미줄이었다. 


해발 1,100m를 지난 시점에는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가까워져 있다. 


4.7km 지점의 이름은 둔비바위이다. ‘둔비’란 제주어로 두부라는 뜻이다. 정말 두부 한 모같이 생긴 정갈한 사각형의 바위이다. 누군가가 두부에 앉아 당 충전을 하고 깜빡하고 쓰레기를 잊고 간 모양이다.



까마귀가 위협하는 : 평궤대피소


해발 1,300m를 지나자 숲의 마수에서 벗어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은 파랑. 충혼 묘지에서 올려다봤던 바로 그 색깔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금세 흐림으로 낯을 가린다. 


평궤대피소에 도착했다. '평궤대피소'는 작은 동굴 속에 움푹 들어간 바위를 고스란히 살려 건물을 지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궤'란 위로 큰 바위나 절벽 따위로 가리워지고, 땅 속으로 깊숙하게 패어 들어간 굴을 뜻한다. '평'은 편평하다는 뜻인지, 퍼져있다는 뜻인지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평궤'라는 단어 자체는 제주어사전에는 들어있지 않다. 


남벽분기점에는 점심 먹는 등산객이 많을 것 같아 여기서 먹기로 한다. 아무도 없는 곳이기에 코로나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는 신경 쓰지 않았을 수 있어도 다른 신경 쓸 거리가 있었다. 손 닿으면 닿을 거리에서 내가 김밥을 흘리기를 기다리는 까마귀 두 마리. 너무 가까이 있어서 도시락에서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채갈 것만 같은 두렴증이 인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딴 데를 보는 척 하지만 그게 나를, 아니 김밥을 정면으로 보고 있는 거 다 안다! 원래 자기 것이라는 듯 쳐다보고 있어서 매우 신경 쓰였다. 




백록담 화구벽을 바라보며 평탄한 산책길


해발 1,450m 평궤대피소에서 해발 1,600m 남벽분기점까지 이어지는 1.7km의 길은 평지이다. 


넓은드르 전망대에서 서귀포 바다와 귀요미 섬들을 쫘악~ 내려다볼 수 있다고 안내판에 나오는데 구름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걷히면 살짝 보일까? 싶어 기다려봐도 아래쪽으로 가득 찬 구름은 꽤나 짙어 보인다. 여기에도 까마귀 두 마리가 놀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 그들의 관심사는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남벽분기점 도착 : 앞으로 더 나아가면 영실이나 어리목으로 하산 가능


멋진 백록담 화구벽에 감탄하며 한 발자국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남벽분기점에 닿는다. 



출발한 지 약 4시간 만이다. 중간에 점심 먹는 시간을 가져서 안내 시간보다 30분가량 초과되어 도착했다. 남벽분기점에 도착하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약 15분가량 쉬는 동안 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또 도착한다. 지난번 영실 탐방로에서 보았던 파란 하늘에 뚜렷한 남벽은 보이지 않고, 구름에 가려 흐릿흐릿하게 보인다. 약 15분 정도 쉬고 유턴해서 내려간다. 



점점 뜨거워지는 온도를 느끼며 : 내려가는 길


끝도 없이 내려가다 보면 ‘내가 언제 이렇게 올라왔지?’ ‘내가 이 길을 올라온 게 맞나?’ 하는 불과 몇 시간 전의 나를 의심하게 만드는 기분이 든다. ‘내가 이런 돌을 봤었나?’ ‘이런 구간이 있었나?’ 분명히 올라갈 때 더 천천히 음미했을 텐데, 내려올 때 낯설다. 그러고 마지막에는 ‘와! 나 참 열심히 올라왔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기특함이 차오른다. 아마 이런 작은 성취감이 등산의 또 하나의 기쁨일 것이다. 




오를 때는 그냥 줄줄 흐르는 땀에 계속 더위를 느끼며 올랐는데, 내려올 때는 확연한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어느 지점부터 사우나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그 느낌과 비슷한, 하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약한, 공기가 느껴진다. 그럴 때 주위를 자세히 보면 나무의 느낌도 바뀌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약 2km를 남기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 발걸음이 급해진다. 빠르게 내려와서 오후 2시 돈내코 탐방 안내소 도착. 그 맞은편에 푸세식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스틱과 핸드폰을 차 트렁크 위에 올려놓고 손을 씻고서 그냥 출발해버렸다. 깨달은 것은 약 20분 뒤. 다시 차를 돌려 돌아가 보니 반대편 차선 정중앙에 홀연히 스틱이 있다. 다행히 부서지지 않고 멀쩡한 상태였다. 하지만 주차장까지 돌아가 봐도 핸드폰은 찾을 수 없었다. 스틱은 찾았건만 핸드폰은 못 찾다니. 잃어버린 폰은 습한 데에 가면 카메라에 습기가 차고, USIM을 넣어도 ‘USIM이 들어있지 않음’이라는 경고가 뜨는 등 고장 난 상태였다. 그래서 핸드폰 자체는 크게 아깝지 않았는데, 몇 시간 동안 찍은 한라산의 초록초록한 사진들을 잃은 게 슬펐다. 즐거웠던 한라산 등산의 그 푸르른 기억이 마치 판타지처럼 나의 뇌리에만 남아버렸다. 마치 사진에 담기지 않는 존재인 양 말이다. 


USIM도 들어있지 않았던 폰이라 되찾는 것을 빠르게 포기했다.


한라산 돈내코에 위치한 남국선원


그런데 한 달이 지난 9월의 어느 날, 남편 폰으로 전화가 왔다. 핸드폰을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는 전화였다. 위치는 바로 돈내코의 남국선원. 이 절에 기거하는 스님께서 주우셨다고 한다. 아이폰을 찾은 것보다 그 안에 들어있을 돈내코의 사진을 찾은 게 훨씬 기뻤다. 가을 태풍이 오던 추석 전 주, 다시 서귀포 돈내코를 찾아갔다. 


남국선원은 스님들이 기거하며 수행하는 곳이다. 특히, 몇 개월 동안 문을 걸어 잠그는 방식의 수행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수행하려고 스님들이 예약을 하고 줄을 선다는 기사를 보았다. 머물고 싶어지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는데, 역시나 싶었다. 일반 시민들도 수행할 수 있게 개방하고 있다. 


http://seogwipo.grandculture.net/seogwipo/toc/GC04601215



한라산 남쪽에 위치한 남국선원은 엄청난 경치를 자랑한다. 아이폰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알지도 못했을 이곳. 이렇게 멋진 곳을 알게 되어서 기뻤다.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



그리고 이 아이폰은 나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나 보다. 아마도 메인보드가 나갔을 듯한데, 거금을 들여 리퍼받아 써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말이다. 유심이 없어도 부처님의 은혜로 돌아온 핸드폰, 돌아온 돈내코. 누군가의 선의 덕분에 더욱 소중한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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