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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n 17. 2021

왜 검사 결과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을까?

피검사, 소변검사 등등 결과가 궁금해 죽겠다!

53세 남자 박배현 씨는 한 달 전 바닷가에 놀러 갔다 조개껍데기에 종아리를 베었다. 베인 줄 모를 정도로 가벼운 상처였으나 3일 후부터 붉게 변하고, 통증이 생겨서 동네 병원에서 항생제를 먹기 시작한 지 20일 정도 되었다. 5일 전부터는 설사가 생겨서 설사약도 처방받아먹기 시작하였는데 호전이 없어 대형 병원 응급실에 찾아갔다.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X-ray를 찍고 이어서 소변검사, 피검사, 항문 검사도 했다. 1시간 정도 기다리고 CT도 찍었다. 계속 대기만 하고 검사 결과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없어 간호사에게 직접 가서 물어봤다.

"제 상태는 어떤가요?"

"환자분. 결과가 나오면 의사 선생님이 와서 한 번에 설명해줄 거니까 기다리세요."

"지금 검사만 몇 개를 했는데, 검사 결과나 병에 대해서 설명은 하나도 없단 말입니다!"



환자들은 자기가 어떤 병이 있는지 알고 싶고,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왔는데 검사만 실컷 하고 들은 건 없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의사들은 내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길래 이런 검사를 하는 걸까? 혹시 나쁜 거라서 이렇게 다양한 검사들을 하는 걸까?' 하고 불안하다. 그리고 검사 결과에 대해 궁금해한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진행한 검사 결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왜 그럴까?



첫째, '아직은' 불확실해서요~


가장 큰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직'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 항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응급실 차원에서 수행하는 혈액 검사는 30분 ~ 2시간이면 결과가 나온다. 동맥혈 검사는 아무리 오래 걸려도 10분 안에 나온다. 소변 검사도 마찬가지로 대체로 1시간 이내로 결과가 나온다. 이런 검사들에 대해 일일이 얘기해주지 않는 이유는 빠르게 볼 수 있는 검사들이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모든 걸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A라는 검사를 통해 환자의 병에 대한 모든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면 의사들은 단지 A 검사만 처방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검사는 없다. 다양한 검사들을 시행하는 이유는 한 가지 검사로 진단과 치료를 100% 알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영상 검사의 경우엔 '정답'은 바로 영상의학과가 내어준다. 영상의학과를 전공으로 하지 않은 의사 역시 X-Ray, CT, MRI와 같은 영상을 보고 어떤 병이 어떤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영상을 가장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은 그것을 전문적으로 트레이닝 받은 영상의학과이다. 그래서 환자들을 보는 의사(임상의사라고 한다)들은 영상의학과 의사의 영상 판독에 의지한다. 그래서 CT나 MRI를 찍고, 그 사진을 봤다 하더라도 정확한 정답이 나오기 전까지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을 자제한다.


즉, 어느 정도 '명확해' 질 때까지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을 보류하는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의사가 와서 'A 같아요.'라고 들으면 A가 뭔지 구글링 한다. 그런데 조금 이따가 'B 같습니다.'라고 한다. 그럼 다시 B에 대해 검색하고 가족에게 B 같대 라고 전화해서 공유한다. 그런데 결국 C라고 한다. 그럼 '그전에 A, B라고 말한 건 뭐지? A인 줄 알고 걱정했잖아!' 등등 온갖 검색과 상상과 감정이 오간다. 환자로서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생략할 수 있다. 



둘째, 다양한 것을 고려해야 하니까요~


두 번째 이유는 진단뿐만 아니라 '치료' 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는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병원에 오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아픈 것을 '치료'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전 검사들로 인해 환자의 병에 대해 진단이 어느 정도 되었다 하더라도 치료를 위한 방침들을 정하기 위한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보통 미리 나온 검사들에 관해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X-ray를 찍어서 골절되었음을 알았다고 하자. 표준적인 치료는 수술인데, 이 환자가 수술적 치료를 할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는 혈액 검사 결과를 봐야지 알 수 있다. 그러면 의사는 필요한 검사가 모두 나온 후에 환자에게 가서 설명하기 시작할 것이다.


"X-ray를 찍어서 골절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수술적 치료를 해야 합니다만 환자분의 경우 혈액 검사를 봤을 때 모종의 감염이나 염증이 있는 것으로 의심됩니다. 염증이 있는 상황에서 수술을 진행했을 때는 수술 후 상처가 아물지 않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이 높습니다. 일단 입원하여 항생제 치료를 하며 경과를 지켜본 후에 수술을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 진료의 효율성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ㅠ 


마지막으로는 안타깝게도 진료의 효율성 때문이다. 특히, 대형병원에서는 환자 수가 많기 때문에 효율적인 진료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환자들은 계속 병원 밖에서 대기하며 진료 자체를 못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단과 치료를 위한 정보를 얻은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변 검사는 정상입니다." "혈액 검사는 약간의 빈혈이 있는 것 외에 정상입니다." "X-ray는 깨끗합니다." 하고 모든 검사에 대해 다 설명하러 다닐 수 없다.


한 가지 방안으로 요새 대형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바로 볼 수 있게끔 핸드폰 앱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이용을 권유하고 있다. 앱 사용에 익숙한 젊은 보호자들은 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궁금한 점을 묻기도 한다. 검사 결과에 차근히 설명해줄 수 없는 의료 제도상의 문제를 병원 차원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시스템이나 의료 제도 속의 진료를 넘어서 진정한 '환자 중심 진료'가 된다면 당연히 모든 검사 결과에 관해 설명을 할 것이다. 미국 의학 드라마 <닥터 하우스>를 보면 검사 결과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것을 볼 수 있다. <닥터 하우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이 "아까는 B 질병이 의심되어 검사를 했다 그러지 않았어요? 인제 와서 B가 아니라 C일 수 있다는 말이네요?"라는 것이다. 모든 검사 결과에 관해 설명하기 때문에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요."란 대사가 환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진단에 어느 정도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말을 아낀다. 아닐 수도 있는 진단에 대해 미리 말하고, 그게 아니라 사실은 이거였다는 불필요한 대화를 줄여 진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닥터 하우스>에서는 미국 내 최고의 진단의학과(우리나라에 있는 진단검사의학과와는 다르다) 의사 4명이 오직 한 케이스만 담당한다. 응급실 의사가 12시간 동안 근무하면서 환자를 150명가량 진료해야 하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의료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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