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지난 4월.
처음 텃밭을 분양받았다.
왜 신청했을까.
집에 온 화분마다 다 죽이는 마이너스의 손인데 무슨 배짱으로.
그저 흙장난 수준인 줄 알았던 텃밭농사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고 놀랍게도 작물들은 심기가 무섭게 무럭무럭 잘 자랐다. 식물을 키우는 재미가 있다는 걸 들어는 보았지만 알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 느낌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잘 정리된 다른 밭과 달리 늘 어수선하고 삐뚤빼뚤 엉망진창 텃밭이었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텃밭을 자연스레 사랑하게 되었다.
가장 큰 위기는 한여름의 더위였는데 이 때는 매일 같이 날아오는 재난문자를 보면서 한동안 발길을 끊기도 했다.
이제 가을 수확을 끝내고 나니 텃밭 분양의 마지막 달이 되었다.
주말에 갑자기 추워진다는 뉴스를 접하고 급하게 밭으로 가서 마지막 배추들을 뽑아왔다.
다른 밭들에 비해 좀 늦게 심었기에 한 주 더 있다가 뽑고 싶었지만 내 마음보다는 날씨에 맞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무와 쪽파는 지난 주말에 뽑아왔고, 오늘은 배추 열 두 포기를 뽑아왔다.
빨간 머리끈을 했던 배추들을 차곡차곡 소금물에 절였다.
김장은 이제 안 할 거라며 작년에 이사 오면서 김치냉장고도 버렸는데 이걸 다 어디에 둘지 모르겠다.
그래도 처음 지은 농사에서 얻은 배추를 버릴 수는 없잖은가.
약을 안치고 키워서인지 아니면 농부가 재주가 없어서인지 모양이 마트에 파는 것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신선함 만큼은 으뜸이니 잘 다듬어서 김장을 해야겠다.
텃밭 안녕.
그런데 우리의 이별은 생각보다 힘이 드는구나.
월요일에는 섞박지.
화요일에는 파김치.
수요일에는 물김치.
목요일에는 배추김치를 담았다.
텃밭의 마무리가 이렇게 노동으로 끝날 줄이야.
그래도 결정했다.
내년에도 텃밭 분양을 신청하기로. 일단 추첨 발표가 난 후에 고민해 보려고 한다.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