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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지 Mar 12. 2023

가창오리를 향한 너의 마음을

나는 너무도 사랑한다.

순수한 것들은 너무도 사랑한다.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드러내는 순수한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잠들기 전 가족 단톡방에 카톡이 울렸다. 오빠였다.

“이것 좀 봐. 저게 전 세계 가창오리 전부래”라며 동영상 링크를 보내줬다. 잠들기 직전이었고, 영상 길이가 짧지 않았다. 원래라면 그냥 잠에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난히 오리를 좋아하는 오빠가, 그 밤에 오리영상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살짝 귀엽게 느껴져서 못 이기는 척 영상을 틀었다.

영상에는 유튜버 새덕후님이 월동을 위해 세상의 모든 거창오리들이 모여 군무를 이루며 날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몇 개월간 촬영한 영상을 기록해 뒀다. 3년간 가창오리들이 자신의 머리 위로 군무를 이루며 날아가는 것을 보기 위해 겨울마다 고창과 금강을 찾아가 오리들이 날아오를 때까지 카메라를 켜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기다림에 답이라도 하듯 드디어 오리들이 새덕후님 위로, 경이롭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군무를 이루며 날아갔다.


경이로웠다. 오리들의 근무가 자연이 주는 소중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영상 속 새덕후님도 침대에 누워 영상을 보는 나도 광경을 보며 하는 말을 이것뿐이었다. 우와~

새덕후님의 우와에는 몇 년간 기다리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는 사실의 감격과, 가창오리 근무 그 자체로 보고 느껴지는 경이로움이 담겨있을 것이다.

나의 우와는 새덕후님의 순수한 마음의 진정한 감탄이 담겨있었었다. 물론 영상 자체도 경이로웠지만.

어떤 것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사랑이 가창오리의 군무만큼 경이롭게 다가왔다.


오리를 좋아하면 오리가 그만큼 새덕후님을 좋아해 준다는 보장이 없다.

오리들이 새덕후님이 3년이나 기다렸으니깐 그래 이쯤 됐으면 이제 쟤 머리 위로 날아주자라고 하며 떡하니 날아준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새덕후님은 3년을 기다렸다. 말도 통하지 않은 오리를 기다렸다.

조건 없이 오리를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3년의 시간을 기다렸다.

조건 없는 마음. 열정. 애정. 어떤 것을 너무도 사랑해 순수하게 그것만을 원하는 새덕후님의 마음이 가창오리의 근무보다 예뻤다.


난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나? 조건 없는 마음으로 그것을 사랑하고 열정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생각은 하늘을 수놓은 거창오리들 아래, 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티 없이 웃고 있는 새덕후님의 얼굴을 이번연도에 본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 속에 저장시켜 준다.


순수한 것들은 세상 어떤 것보다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 어떤 것보다 아름답다.


다음 겨울에는 보러 가봐야겠다. 금강에 가창오리들을.

세상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준 오리들을 보고 나도 아름답게 웃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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