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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Dec 11. 2018

출발선에 섰다.

그 과정도 쉽지 않습니다. 휴학하고 돈 모아서 세계일주 #3

휴학하고 돈 모아서 세계일주 #3


인생은 실전이래

제 대략적인 계산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획표 일부 첨부

   한 달에 최소 210만 원은 벌어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벌 수 있는 돈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번듯이 하진 못 하더라도 '직장'이라는 걸 가져야 저 정도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요. 누나네 집 거실에 제 옷이 가득 든 상자를 내려놓았습니다. 따로 풀어 정리하진 않았습니다. 어차피 곧 떠날 테니까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겁나 떨어짐

   이디야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켰습니다. 마침 스탬프가 10개나 모여서 공짜로 한 잔 시켰죠. 매일 앉던 카페 깊은 곳 소파가 있는 자리로 향했습니다.

   주홍색 원목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아메리카노를 올려놓고, 인터넷을 켰습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대한(大寒)'이라는 단어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대한(大寒) - 겨울 큰 추위, 1월 20일 ”

새삼, 제가 서울에 올라온 지 보름이나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더라고요.


   그동안 무작정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한 달에 최소 200만 원은 받을 수 있는 직장을 찾아야 했죠.

일단, 제 전공과 관련된 업무는 전부 학사 이상만 뽑는 공채였습니다. 간혹 올라오는 자리도 전문학사 이상을 요구했죠. 휴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직종은 그나마 '사무보조' 정도였습니다.

일이 쉬운 대신 월급은 150만 원 정도. 하지만 저녁 시간과 주말이 있으니 과외나 아르바이트를 하나씩 더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삼성, 현대같이 유명한 대기업 사무보조로 들어가면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고요. 좋습니다. “사무보조”라고 검색해봤어요.


이미지 출처 : 알바천국


   정말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는 모조리 지원했어요.

열심히 쓴 자기소개서를 가지고 맞춤법 검사기도 돌려보고, 글자 수 세기 프로그램으로 글자 수도 맞췄습니다. 필요한 서류와 자격증들은 한 폴더에 몰아 놓고 계속해서 첨부.

회사를 찾아 직접 전화하기도 했어요.


“안녕하세요. 현재 전역 후 휴학 중인 24살 학생입니다. 인턴 공고는 따로 없었지만, 제가 정말 일하고 싶은 회사라서요. 혹시 아무 일이라도 좋으니 일할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제가 이런 걸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서요. 사장님께 말씀드려볼 테니, 이쪽 메일로 이력서 하나 보내주세요. 자유 양식으로요. 다음 주까지 연락드릴게요.”

라고 하고 연락은 안 오고.

“저희는 아르바이트도 학사학위 소지자만 씁니다. 휴학생은 안 돼요.”

라고 매몰차게 거절하고.

하긴, 열정으로 밥 먹고 사는 세대는 지났지 싶었어요.



   나중에 세어보니 지원한 곳이 42군데나 되더라고요. 그중에 1차 합격은 8곳. 최종 합격은 제로.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회사의 불합격 통지가 문자로 온 날. 2월 8일. 날은 어지간히 추웠고, 은은한 조명 아래 그 카페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발이 무척 시렸던 것 같습니다. 2월부터 일을 시작해서 10달 동안 돈을 모으는 게 목적이었는데, 지원한 회사는 모두 떨어지고 다시 빈손인 지금이 2월 8일이라니요.


   넘어졌다지만, 오래 주저앉아있을 시간은 없었습니다.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건데요. 침착하게 다시 알바천국을 켰습니다. 이번엔 학원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나름대로 입대 전엔 과외도 많이 해봤으니,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월급도 꽤 높고요. 적어도 180만원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면접

   알바천국에 올라온 강사 구인 공고를 보며 이것저곳 지원했습니다. 지원한 수많은 곳 중 면접 제의가 온 곳은 3곳. 왕십리에 있는 단과학원, 의왕시에 있는 종합학원. 동탄에 있는 재수학원. (지역은 이제 따로 가릴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살이 쪄서 이젠 맞지도 않는 정장에 몸을 욱여넣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학원마다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정말 회사같이 철저한 분위기의 왕십리 학원에 비해, 의왕시에 있는 학원은 정말 동네 친숙한 학원 같았습니다. 동탄에 있는 재수학원은, 거뭇하고 피곤했던 학생들이 기억에 남네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면접을 봤습니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깔았고, 말은 최대한 전달력 있게 했습니다. 면접 전엔 미적분을 공부해갔습니다. 혹시 시강을 하라고 할지도 모르니까요.



합격

   면접이 모두 끝나고, 평소처럼 은은한 조명이 켜진 카페 한쪽에 앉아 더 지원할 곳이 있나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처음 일자리를 구할 때보다 훨씬 익숙하게 구직사이트를 훑고 있었죠. 하지만 차분히 앉아있지는 못했습니다. 이젠 딱히 쓸만한 새로운 공고도 없고, 우울한 마음에 피시방이나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처음 보는 번호인데? 하면서 받았습니다. 30대 여성 정도 되어 보이는 목소리가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염광섭 선생님 맞으신가요? 마운틴 학원입니다. 면접 합격하셨는데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


   붙었습니다. 그 친숙한 의왕시의 종합학원이요. 2월 말부터 출근하시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화가 끝나고 저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1달을 차분히 되짚어보니, 지원한 곳은 40곳이 넘으며 떨어진 면접도 10곳이 넘습니다. 짧지만 굵은 고생이었습니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고 잘 헤쳐나간 것 같았습니다. 계획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어쨌든 일자리를 구했잖아요.


   가벼운 문제라면, 처음에 세운 계획보다 더 많은 돈을 모아야 했습니다. 생각보다 돈을 버는 시기가 늦어졌거든요. 하지만 괜찮았습니다. 학원은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출근하니까 주말이든 평일 오전이든 부업으로 일도 하나 더 구하면 되었습니다.


   나 원 참, 출발점에 서기도 정말 어렵네요. 하긴 육상선수들이 올림픽 출발선을 밟기까지 얼마나 큰 노력을 하는데요.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 그나저나, 그때 쓴 일기에 이런 말도 있네요.


“앞으로 무슨 장애물이 있든, 1년 후의 나는 전 세계를 모두 밟아보고 다시 한국에 돌아올 겁니다. 어떤 시야를 가지게 되든, 한층 더 성장한 나 자신이 되어있을 거예요.”


오올. 일자리 구하기가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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