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좋은 첫 번째 이유
날이 추워지니 그래도 잘 잡니다
누구보다도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다름 아닌 잠이다.
잘 자는 것도 복이라는데 나는 그 복은 타고나질 못한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로 점점 퇴화하는 중이다. 어릴 때는 어디서나 곧잘 자고, 심지어 잠도 많았다. 자도 자도 잠이 또 와서 14시간을 내리 잔 적도 있다. 엄마는 오후가 다 지나가는데도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딸과 그 방의 문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눈앞에 보였다면 한숨이라도 쉬면서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기라도 할 텐데 말이다.
어릴 때는 낮잠 자는 것도 좋아했다. 주말에는 사실 낮잠이라고 말하기도 뭐 한 게 기상시간 자체가 이미 1시, 2시로 넘아가는 경우가 허다해서 그 경계가 모호했고, 평일에는 하교 후에 꼭 1시간 정도를 잤다. 그리고 늦은 밤이나 새벽까지가 내 주 활동 시간이었다(지금의 내 모습과는 정반대의 생활 패턴이다). 어떤 주말은 너무 오래 잠을 자서 머리가 어지럽기도 했다.
낮과 밤이 바뀌는 바람에 고생했던 적도 있는데, 대학교 1학년의 겨울방학이었다. 새벽 4시, 5시까지 자지 않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잠을 자는 기이한 패턴을 정상궤도로 되돌리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20살의 패기였다고 변명해 보고 싶다).
지금의 나는 아침형 인간을 넘어 새벽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어릴 때처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새벽형 인간이 아니라 기상 시간이 너무 이른 새벽형 인간이다. 오늘 내 기상 시간은 4시 30분이었다. 일찍 잠드는 만큼 일찍 눈이 떠지는 건 당연한 걸까. 보통은 10시부터 노곤노곤 해지는데, 날씨가 추워질수록 수면의 질은 좋아진다. 따뜻하게 데워진 온열매트에 나른하게 몸을 누이고 스르르 잠드는 그 시간은 늦가을과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행복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꿀잠을 자는 공간은 따로 있으니 바로 대중교통이다. 그중에서도 버스! 나는 버스를 좋아한다. 지하철은 뭔가 꽉 막힌 느낌인데, 이른 새벽에 타는 버스는 한산하고 교통체증도 없어 출근길이라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화롭다. 나는 이른 아침에 나와 조조할인까지 받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놀라운 것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지 않고 도착할 때쯤이면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쪽잠이 꽤나 달콤하다. 오늘의 출근길도 그랬다.
사실 나는 수면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일찍 잠들어도 중간중간 잘 깨고 아침에 일어나도 푹 잤다의 느낌이 아니라 선잠인 때가 많다. 특히 중간에 깬 잠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아 더 잘 수 있어 행복해'가 아니라 '아 앞으로 이만큼이나 더 자야 하네'로 느껴질 때가 많다. 다시 잠들기 쉽지 않을 때면 머리맡에 독서 등을 켜고 책을 읽다 잠에 빠져들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든다는데, 벌써 내 나이가 그 정도인가 싶어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른 새벽 홀로 세상에 있는 듯한 고요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고 위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