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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Nov 12. 2019

#7. 그러게… 우린 왜 헤어졌을까?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어서...  

술 병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알싸한 소주 냄새를 풍기며 취해간다.

일 년에 두어 번 볼까? 십여 년의 세월을 지나 같이 늙고 있는 대학 선배들과의 술자리는 늘 정겹고 과하다. 과하게 취한다.


그들만 만나면 서른 후반의 꼬장꼬장한 여자는 어디로 가고, 스무 살의 말랑말랑한 내가 나와서는 무장해제. 철 모를 때처럼 혀가 꼬일 만큼 술을 마시고 마냥 소리 내어 웃는다. 나는 그들 앞에서 늘 어린애가 되고 만다.


스무 살에서 십구 년 멀어진 현재를 살고 있지만, 그들 앞에서는 나는 늘 스무 살이다.



그날도, 대학시절 잘 가던 포장마차 (물론 그 포장마차는 아니다. 그 자리에 새로 지어진 술집)에서 한잔 두 잔 마셔가며, 질리지도 않는 그때 그 시절 얘기에 즐거웠다.


별의별 이야기가 다 꺼내진다.

우리가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는 끝이 없이 줄줄… 이어진다.

하지만 그 안에, 누구랄 것도 없이 조심하는 내 첫사랑 이야기.


내가 너무 좋아했던 그 유난스러운 연애를 아는 그들은, 그리고 그대의 친구들이기도 한 그들은, 그대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마치 금기어 인 마냥.


이미 오래전에 끝난 연애인데 말이다.



소주병이 3병 쌓여갈 즈음. 제일 순하고 착했던, 그리고 내가 잘 따랐던 한 선배가 툭- 물어온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자. 너희는 대체 왜 헤어진 거야?”



우리가 헤어진 게, 강산이 변하고도 남은 시간만큼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고,

그러니까 그렇게 오래전 헤어진 우리에게 아직도 헤어진 이유를 물어 온다.


평소라면 엄청 타박하며 선배의 빈 술잔을 채워주고 말았겠지만. 그날만은 쉬이 넘어가지지 않았다. 왜 였을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게.. 우린 왜 헤어졌을까?”



너무 좋아했던, 유난스러웠던 연애였다. 주위 사람들이 내 감정 하나하나를 다 들춰 볼 만큼 나는 그대에게 애절했다. 그런데 정작 헤어짐은, 그 이유조차 불분명했다. 왜 헤어졌는지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이유를, 한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런데, 막연히,

왜 헤어졌는지 잘 모르겠는 그게 바로, 이유였던 것 같다.



얼마 전, 카페에서 ‘헤어지는 연인’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사소한 다툼일 수도 있지만, 그 두 사람들 둘러싼 모든 공기가 이별을 말하는 것 같았다.


몇 모금 마시지 않은 두 잔의 커피는 식어가고, 두 사람의 시선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 여자는 식어버린 커피잔만 내려보고,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닿을 리 없는 시선과 애원을 계속 보낸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있더니, 아주 조용히 여자가 일어서서 나가버린다. 남자는 잡지도 못한다. 여자가 나간 문을, 그리고 맞은편 빈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들의 헤어짐을 보며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지독하더라도 저렇게 우린 헤어졌어야 한다.’



헤어진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우린 왜 해어졌을까’라고 묻는 우리는,  

제대로 헤어지지 못해서… 여전히 그 이유를 못 찾는 게 아닐까?



정말 그랬다.

길었던 연애의 끝은 너무 허무했다. 서로 이유도 묻지 못한 채 우리는 어린 이별을 겪어야 했다.


만남, 그리고 사랑이 있다면 그 끝을 맺는 ‘헤어짐’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 마지막 끝을 맺지 못했다.



이제, 그 선배의 물음에 나는 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헤어졌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는 건, 정말 왜 헤어진 건지 몰라서... 인 것 같아.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제대로 헤어지고 오고 싶다.

그랬어야 그 긴 시간 서로 미련을 안 떨었지.."



원래 다들, 첫사랑은 유난스럽게 미련하고 뭐 그런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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