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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연 Jan 11. 2021

'며느리'는 설거지하는 사람?

시조카에게까지 주다 남은 빼빼로를 전달받은 나.


이 집안에서 서열 꼴찌는 나였기에 그 날 있었던 다른 일에 있어서는 더 놀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더 놀랄만한 일이 생겼는데...


결혼식을 하고 15일째, 결혼 후 시댁 가족들과의 첫 식사 자리. 

시아버지 생신이시기도 하셨다. 


가족들끼리 점심 식사를 하고, 형님이 설거지를 하러 가시기에 나도 설거지를 하러 따라나섰다. 


분명 남편한테 듣기론 형님이 결혼하고 6년 동안 설거지를 하신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게 저번 추석부터 설거지를 하셨다. 


설거지야 뭐 같이 해도 된다 생각을 했기에 대수롭지는 않았지만 

며느리만 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서 기분이 좋진 않았다. 


점심 식사와 설거지를 마치고, 저녁도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갔다.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고 뒷정리를 하는데 역시나 형님이 설거지를 하러 갔다. 

나는 고기를 구운 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때 남편이 설거지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려 하자 형님이 말했다.

"OO이가 설거지하기 싫대?"

남편은 그런 게 아니라 점심엔 와이프가 했으니 자기가 저녁엔 하겠다고 했다. 


옆에서 눈치만 보던 나는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아서 

"형님 제가 할게요, 가서 쉬세요"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형님의 답변 

"나 쉬고 싶다고 말한 적 없는데?"


아... 그러시구나...


그러고선 설거지가 마무리되고 형님은 시어머니와 아주버님을 불러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쾅하고 들어가시길래 우린 어리둥절했다. 


시아버지는 아무래도 화가 난 거 같으니 우리 보고 들어가라 하셨다. 


남편과 나는 쭈뼛쭈뼛 방으로 노크하고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나더러 형님이 시키는 대로 하라 하셨다. 

남편보고 눈치 없이 왜 거기서 설거지를 네가 하냐며 나무라셨다. 


아주버님은 내가 여태까지 눈치 없이 집안일도 안 하고, '어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라는 말 한마디 안 했다 하셨다. 


남편이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서 "형수도 6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갑자기 왜 이제 와서 그러세요" 


분위기가 점점 치닫자 시어머니는 카드를 주시며 형님과 나에게 카페 가서 따로 대화를 하고 풀고 오라 하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뭘 풀어야 할지 몰랐지만 옷을 챙겨 입고 나섰다. 


"형님, 제가 뭐 잘못한 게 있으면 말씀을 해주세요."

"..."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적만 흘렀다. 

바깥에 나와서 형님이 입을 뗐다. 


"나는 우리 남편이 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집안일도 다 해. 그래서 시댁에서만큼은 집안일시키고 싶지 않아"


"아 그러세요? 저도 남편이 집에서 집안일 많이 해요. 안 그래도 추석 때 저희 둘만 설거지해서 같이 하자고 제가 남편한테도 말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나는 설거지는 우리가 했으면 좋겠어. 보통의 가정들이 대개 며느리들이 하잖아?"


도대체 형님이 말씀하시는 말이 이해가 안 갔지만 

아주버님과 남편의 사이가 좋아서 괜히 나 때문에 싸움이 번질까 봐 한 번 참기로 했다. 


"저는 그런 줄 몰랐네요. 그럼 제가 설거지를 안 해서 화가 나신 거예요?"


"뭐 그렇기도 하고... 알아서 집안일을 안 한다고 내가 느껴지기도 했고. 그리고 너는 설거지 한 번 했는데, 나는 두 번 해도 되는 사람인가 싶어서 화가 났어."


"아 그러셨군요, 네 잘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눈치가 좀 없어서요. 시키시고 싶으신 일이 있으시면 직접 말씀을 하세요. 저는 그런 걸로 화가 나신지 몰랐네요." 


"뭐... 그래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니긴 한데 한 번 노력해볼게"


이런 대화를 끝내고 시댁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시어머니는 형님댁에 보낼 음식을 잔뜩 싸주시기 시작하셨다. 


남편이 저번에 장인어른이 선물로 주신 오징어 우리도 좀 달라고 하자, 시어머니는 "너네는 가까우니까 다음에 와서 가져가"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시어머니는 형님이 화가 나서 달래주려고 하신 것 같았다. 

'내가 둘째 며느리보단 첫째 며느리인 너를 더 챙겨준단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라'라는 것처럼.


화도 많이 나고 어이도 없는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게 앞으로 있을 일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는 걸 이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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