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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Oct 11. 2019

애초부터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으로 남으면 된다


저희 딸아이는 집에서 꽤 거리가 떨어진 초등학교에 다녔었습니다. 작고 아담한 학교 뒤에는 산이 있었고 교정에는 연못이 있었어요. 남편이 등산 갔다가 그 모습에 반해서 아이의 첫 학교로 점을 찍었습니다. 자연친화적인 학교에서 아이가 뛰어놀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학군이나 학업 성취도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저도 그러자고 했어요.


그때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요. 아침마다 아이를 학교로 실어 나르고 끝나면 데리고 오는 일이었어요. 쉽지 않은 그 일을 저는 5년 동안 했습니다. 제 친구들은 저를 보고 그랬어요. '실어 나르는 모양새를 누군가가 본다면 아이가 8 학군 학교에 다니는 줄 알겠다고요.' 유별나다는 얘기였겠죠.


저희 아이가 다녔던 학교는 8 학군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서울 끄트머리 조용한 동네에 위치해 있었어요. 근처에 보육원이 있었고요. 반대편에는 임대 아파트도 몇 동 있었는데 탈북자들과 그 자녀들이 살고 있다고도 했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 후 소통하는 엄마들이 여럿 생겼는데요. 다 저보다 어렸어요. 친해지고 나서 나중에 얘기하더라고요.  


"언니, 약간 모자란 사람인 줄 알았어."

"왜?"

"남들은 더 좋은 학군 찾아 떠나는데... 무슨 잘못된 정보를 듣고 여길 들어왔나 해서."

"학교 경치가 좋아서 왔지."

"거봐. 언니는 아주 많이 모자라. 자녀교육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어."

"그럼 너희는 왜 여기에서 애들 학교 보내는데?"

"그야, 우리는 원래부터 여기 토박이니까 그렇지. 살던 대로 사는 거야."


저는 그 동네를 떠날 때까지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장난스러운 놀림거리가 되어 주며 절친을 맺었습니다.우리는 모두 치열한 사교육이나 차등을 두며 내 아이만 특별하게 키우는 교육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애초부터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어쩌다 가끔씩 만나면 처음과 변함없는 그들을 보는 것이 여전히 즐거워요. '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우리 아이가 그 학교를 갔었나 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또 하나. 제가 그 학교를 가게 된 나름 운명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요. 다양한 환경에서 각각 자라나는 아이들을 통한 세상 읽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어요.


저는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계속 도서관 명예 사서와 멘토링 봉사를 했어요. 수백 권의 책들을 일사천리로 정리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갔었는데요. 팔목이랑 어깨가 너무너무 아파서 고생을 많이 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고 청소도 하고 책 읽기도 하면서 내 아이뿐만 아니라 학교에 있는 다른 아이들,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아이들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경험도 했습니다.  너, 나,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소중함을 느끼고 배웠던 시간들이었어요.   


당시 멘토링으로 저와 짝꿍이 된 2학년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1주일에 한 번씩 책을 읽어주고 같이 놀아주는 봉사활동이었어요. 그 친구는 한 학년 아래인 저희 딸아이보다 키와 덩치가 작았습니다. 왜소한 체형에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진 예쁘게 생긴 남자아이였는데 참 조용조용하고 수줍어했어요. 남자아이들 사이에 있을 때도 까불고 소리 지르고 장난치는 아이들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소리 없이 걸어 다녔고 벽 쪽으로 붙어 다녔어요.


김윤나 작가의 '당신을 믿어요' 책을 보면 참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참나무는 햇볕을 받고 싶어 하지만 씨앗이 그늘진 곳에 떨어지는 바람에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야 할 때가 있다고 해요. 게다가 옆에 있는 다른 씨앗으로 인해 햇볕이 가려지기도 하고 성장을 방해받는 일도 종종 생깁니다. 


그럴 때 참나무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해요. 햇볕을 받으려면 위로 자라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자 다른 행동을 합니다. 즉 줄기의 아래쪽에 가지와 잎을 만들어서 햇볕을 받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아래쪽의 잔가지들은 햇볕을 받지 못해서 말라붙게 되죠.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에너지를 낭비한 꼴이 되고 맙니다.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더 자라지 못하는 참나무. 그 나무는 마지막까지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게 된다고 해요.  이 참나무 이야기는 페터 볼레벤이 쓴 <나무 수업>을 김윤나 작가가 인용한 것인데요. 원저자인 페터 볼레벤의 표현을 빌리면 '건강한 나무는 애초부터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그렇다. 건강한 사람은 애초부터 자신의 에너지를 고갈해가면서 필요 이상의 업적을 세우려고 핏대를 세우지도 않고, 자기 권리까지 포기해가며 상대를 배려하지도 않으며, 필요 이상의 분노를 끌어들여 사람들에게 강함을 보여주려 하지도 않는다.

남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노래보다는 자신을 위한 노래를 부를 줄 안다.  


<당신을 믿어요> 46쪽





제가 멘토링을 했던 그 친구는 보육원에 살고 있던 아이였어요. 그 후 몇 년 동안 도서관을 오며 가며 그 친구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은 내성적이었다는 점과 될 수 있으면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저학년 그맘때 아이들이 선생님들이나 도서관 명예 사서 엄마들 앞에서 있는 그대로 행동하며 떼를 부리기도 하는 모습 같은 걸 그 친구에게서 본 적이 없었어요. 어디서나 흠 잡히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며 산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애쓰느라 위로 쭉쭉 자라고 살집이 올라야 할 나이에 왜소할 수밖에 없었나 싶으니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1주일에 한번 같이 활동해 주는 것. 학교의 외부 행사에  동행해 주는 정도였는데요. 그런 활동이 그 친구에게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점에 있어서는 확신을 갖기는 어려웠습니다.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면 저로서는 기쁜 일이지만요. 그런 일련의 일들이 그 친구에게 또 다른 상처나 아픔으로 기억되었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오직 그 친구만 아는 일이겠지요.


김윤나 작가의 '당신을 믿어요'를 읽는 내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고 매 순간 덜컥 덜컥 걸렸던 것은 김윤나 작가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에 제가 멘토링을 했던 그 친구가 덧입혀졌기 때문 같아요.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작고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깊고 아프게 팬 상처들까지 떠오르기도 했고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일생의 어느 순간 반드시 겪어내야 하는 고통은 잘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과 법칙이 아닙니다. 원치 않았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불행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도 되고요. 고통의 비를 맞으며 두려움이라는 상처를 가슴에 새겨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불행이 예고 없이 온 것처럼 행운도 행복도 어느 날 문득 올 수 있다는 기대쯤은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고통을 견디며 감각을 예민하게 키워서 우리 앞을 지나쳐 버리려는 작은 행복 정도는 낚아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그중에서도 그때 제가 멘토링 했던 그 작고 여렸던 그 친구는 특히 더 그랬으면 해요. 그 친구를 처음 만난 후 거의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디에서든 잘 자라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거나 불필요한 애씀 따위는 집어치워 버리고 자기 인생을 당돌할 정도로 야무지게 잘 살아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년의 지독한 고통을 뚫고 나와 베스트셀러 작가와 강연가. 코칭 심리 전문가로 활동하는 김윤나 작가처럼 멋진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 김윤나 작가의 저자 특강을 들으러 가던 날 아침, 그 소년을 위한 작은 기도를 했습니다. 눈 똑바로 뜬 행운이 그를 찾아가는 상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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