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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Oct 07. 2019

아이와 물건. 그 질긴 인연(因緣)

딸의 파카, 태평양 건너 미국 다녀온 이유


딸아이가 크면서 어릴 적 사용하던 물건들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어요. 물려줄 동생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옷이며 장난감이며 책이며 시기가 지난 것들을 내보내지 않으면 연령에 맞는 물건들을 들여올 수 없더라고요. 


최근에도 아름다운 가게에 많은 양의 물건들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몇 개의 물건들은 또 남게 되었어요. 정기적으로 물건들을 보내는 와중에도 저희 집을 안 떠나고 끝끝내 버티고 있는 녀석들이 있거든요. 10년도 넘은 아이의 원피스예요. 이건 제가 못 버리고 있어요. 이 원피스를 입은 6-7세를 끝으로 아이가 치마라는 걸 안 입거든요.


트레이닝 바지만 입다가 청바지를 입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낡아 빠져서 보풀이 일어날 정도의 트레이닝 바지만 입고 다녔죠. 남들이 운동선수냐고 물을 정도로 말이에요.





이 원피스를 입고 다닐 때 딸아이가 정말 귀엽고 말도 잘 들었어요. 저는 이 원피스만 보면 당시의 모든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요.  그 후에 아이가 자신의 주장이 엄청나게 강해지면서 내적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아이 본연의 색깔'을 인정해주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이 원피스에 얽힌 깜찍하고 예쁜 추억들 때문인지 계속 갖고 있게 됩니다. 지금도 낡은 운동복 입고 선머슴처럼 돌아다니는 딸아이를 볼 때마다 '아, 이런 귀염귀염 한때도 있었는데' 떠올려 보는 거죠.  





제가 못 버리는 게 원피스라면 딸아이가 못 버리게 하는 건 오리털 파카예요. 이 옷에도 사연이 있는데요.




예전에 제가 이 파카를 딸아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친구 딸에게 줬거든요. 벌써 7년 전의 일이네요. 친구가 엄청 좋아했어요. 그 친구도 성향이 저랑 비슷해서 딸아이에게 보이시한 옷을 주로 입혔거든요. 


그런데 저희 딸이 열 살 되던 어느 날. 이 옷을 입고 있는 친구의 딸을 딱! 본 거예요. 그날부터 제가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엄마는 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을 나한테 묻지도 않고 준 거야?"


작아져서 준 거라고 말해도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작아도 입을 수 있고, 집에서라도 입겠다는 겁니다. 제가 엄마면서도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옷이었다는 걸 간과해 버린 잘못이 컸죠. 


친구랑 통화하다가 저는 말도 못 꺼내고 주저주저하고 있는데 제 딸아이가 전화를 달라더니 말을 하더라고요. '자기 옷을 돌려받고 싶다고.'


뜨악. 저는 아무리 친해도 그렇게는 못하는데 저희 딸은 저랑은 완전히 다른 신인류 같았어요. 그런데 제 친구가 너무나도 쿨하게 제 딸의 이야기를 받아줬어요.

"너네 엄마가 잘못했네. 그리고 물건 아끼는 네 마음이 소중한 거야."


친구가 파카를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거든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딸아이의 오리털 파카는 한국에서 미국 갔다가 미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진짜 사연 많은 옷입니다. 


애착인지 집착인지 아니면 그 사이 어중간한 자리인지 정확히 선을 그을 수 없지만요. 어떤 특별한 물건에는 그 시절 한 때의 우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사진으로 찍어 남기고 물건들을 처분한다고 해요. 그래야 생활의 질서와 균형이라는 것이 잡히니까요. 저도 깔끔하게 꼭 필요한 물건들만 두고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잘 안되네요. 사진은 만져지지가 않잖아요. 저 옷들을 만지면 손끝에 닿는 촉감이 느껴지면서 그때 그 순간으로 저도 모르게 끌려 들어가요. 딸아이와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울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도 알죠. 사연 있는 것들의 사연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는 걸요. 지난날의 사연에 너무 깊이 얽매이면 발걸음이 짐짓 무거워져서 앞으로 기민하게 뛰어나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아요.적당한 때에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정도의 현명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럴 때 제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 있어요.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 속 <서영이와 난영이>입니다. 피천득 선생님은 한국 근대 수필의 기초를 만드신 분입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인연'은 교과서에 실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반면 다른 수필들 중에는 모르고 지나간 것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중 <서영이와 난영이>에는 피천득 선생님의 딸 사랑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피천득 선생님의 딸 사랑이 워낙 각별하여 혹자는 따님만 두신 줄 아는데요. 두 분의 아드님이 있고 막내로 따님을 얻은 겁니다.  따님이 하도 울어서 따님 결혼식 때 부친인 피천득 선생님께서 불참하셨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부녀의 정이 각별했다고 해요.


피천득 선생님께서 미국에 가셨다가 어린 따님을 위해 인형을 사 오시고, 그 후 성인이 된 따님이 유학을 떠나자 그 인형을 돌봐 오셨습니다. 따님처럼 아꼈던 인형 난영에 대한 이야기가 <서영이와 난영이> 속에 들어 있어요.



나는 이 인형을 사느라고 여러 백화점을 여러 날 돌아다녔습니다. 인형은 처음에는 백화점에 같이 나란히 앉아 있는 친구들을 떠나 낯선 나하고 가는 것이 좀 불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상자에 들어 있는 저를 들고 오지 않고 안고 왔기 때문에 좀 안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귀국할 때도 짐 속에 넣어 부치지 않고 안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떠나오기 전에 난영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살 테니까 한국 이름을 지어 준 것입니다.


서영이를 떠나보내고 마음을 잡을 수 없는 나는 난영이를 보살펴 주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낯을 씻겨 주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목욕을 시키고 머리에 빗질도 하여 줍니다. 여름이면 엷은 옷, 겨울이면 털옷을 갈아입혀 줍니다. 데리고 놀지는 아니하지만 음악은 들려줍니다. 여름이면 일찍 재웁니다. 어쩌다 내가 늦게까지 무엇을 하느라고 난영이를 재우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난영이는 앉은 채 뜬눈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는 참 미안합니다. 내 곁에서 자는 것을 가끔 들여다봅니다.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난영이 얼굴에는 아무 불안이 없습니다. 자는 것을 바라보면 내 마음도 평화로워집니다.


 <서영이와 난영이> 중에서



사랑하는 딸을 생각하며 고른 인형이 혹시라도  불안해할까 봐 품에 안는 세심함. 인형의 불안이 딸에게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 아버지의 애틋한 정이 보입니다. 따님과 돌림자의 이름을 인형에게 붙여주어 인위적이기는 하여도 '자매지간의 애정'을 느껴보게끔 하신 마음도 엿보이고요. 딸의 부재를 묵묵히 견디시는 동안에도 한결같이 인형을 돌보신 것은 멀리 있는 딸을 돌보신다는 것과 같은 맥락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아무 때나 자유롭게 연락 가능한 휴대폰이 있는 요즘에는 쉽게 느껴보지 못할 감성입니다. 자녀를 귀하게 대하시고, 인연 맺은 세상 모든 것들에 마음 한 자락을 내어주시는 선생님께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한번 갔다 돌아온 10년도 넘은 오리털 파카와 아이의 원피스를 버리지 못하는 저를 한심하게 여기지는 않으려고요. 계속 보관하다가 어느 날 문득 다 귀찮아져서 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딸아이가 원하는 한은  머리에 이고 지고라도 간직해 주려 합니다. 그 물건들과 저희들의 인연이 아직까지는 이어져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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