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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Nov 13. 2019

개도 새도 새끼를 낳는데 설마 애를 못 낳겠어요?

이게 위로의 말 맞나요......


결혼해서 한 3년간 바쁘게 일을 하느라 아이를 미뤘습니다.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가지면 되지. 뭐' 하고 생각했어요. 아이는 아무 때나 여유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옷이나 백이나 자동차나 집이 아닌데 말이죠. 온전한 나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목록에서 '임신'은 제외해야 한다는 걸 그땐 몰랐어요.


혼자의 노력과 습관으로 '마음먹은 일'을 하는 데에 어쭙잖은 자신감이 있었던 젊은 날이었죠. 서른 살 즈음이었지만 여전히 철이 없던 때였어요. 스무 살 남짓에는 서른 무렵이면 완전한 어른이 되어서 세상일을 척척 알아서 할 줄 알았거든요.


웬걸요. 서른이건, 마흔이건, 하물며 쉰이 된 지금도 여전히 세상일은 잘 모르겠고 어려워요. '정답을 찾아가는 삶이라는 게 대체 존재하긴 하나?' 싶어요. 그저 제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믿어버립니다. 자꾸 뒤돌아 보며 후회하기 싫으니까요.



아이를 갖기 위해 3-4년간 불임치료를 했었습니다. 호르몬 주사와 약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인공수정 여러 번과 시험관 시술까지 받았었죠. 중간중간 지쳐서 병원 치료를 쉬기도 했는데요, 그럴 때조차 완전히 손을 떼고 쉰 적은 없었습니다.  


모든 일에 어리석을 정도로 미련과 집착이 많았던 때라 전국에서 유명하기로 소문난 한의원, 한약방을 찾아다녔어요. 대전의 모 한약방은 백발백중 임신시키는 환약을 만들어 판다고 했는데요,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우스운 게요. 방문 시 5세 미만 사내아이 소변을 받아오라는 거예요.



"아니, 제가 아이가 없어서 약을 지으러 가는데  5세 남아 소변을 어디서 받아 갑니까?"

"동네나 주변에라도 아이가 있을 거 아니에요?"

"남의 집 아들 소변을 빌려서 고속버스 타고 약 지으러 오라는 얘기예요?"

"댁이 어디신데요?"

"서울이요."

"그냥 오세요. 어차피 먼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은 그냥 오게 해요."

"그럼, 가까운데 사시는 분들은요?"

"소변 갖고 오셔야죠."

"왜요?"

"왜 긴요. 그 소변으로 환약을 만드니까요."


헉, 뜨악!!!!  임신 한번 하겠다고 모르는 남의 집 사내아이의 소변으로 만든 환약을 먹어야 한다니... 이게 말이 되나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한약방은 전국의 불임환자들로 넘쳐나서 오전 진료만 한다는 거였어요.


제가 나름 이성적인 사람인데 거길 갈 리가 있었겠어요?

.

.

.

하지만 저는 고속버스 타고 혼자 갔습니다. 남편 몰래. 그리고 5세 미만 남자아이 소변이 첨가된 염소똥 같은 환약을 받아왔어요. 매끼 스무 알씩 세서 먹었지요. 그 한약방은 서비스가 엉망이어서 환약 개별 포장 개념도 없었어요. 소형 지퍼백 같은 데에 한 달 치 약을 가득 넣어 줘서 그걸 매번 숟가락으로 덜어내 일일이 개수를 세었죠.


그거 세서 먹을 때마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야?' 하면서도 먹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아이를 가지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당시 아는 지인이 저와의 통화에서 위로라고 한 말 때문이었어요.


"개도 새도 새끼를 낳는데 설마 사람이 애를 못 낳겠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 그냥 넘어가도 될 말이었는데요. 그때 저는 정말 아이를 못 갖는 상황이었고 그런 시간들이 몇 년씩 쌓이다 보니 우울해지고 자존감도 바닥인 상태였거든요.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진 상태라 그때 들은 말은 뇌리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그렇죠. 저는 개도 아니고 새도 아니고....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개나 새한테 하는 말을 사람인 저한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렇게 말을 했어야 했는데 못했어요.


아이 못 갖는다는 사실이 무슨 커다란 흠처럼 여겨졌고 당시에는 그 사실이 제 평생에 오점이 될 거라 착각했었어요. 불임의 원인이 저의 호르몬 수치 불균형이라는 것이 늘 저를 주눅 들게 만들었는데 하루아침에 개와 새와 비교까지 당하니 정말 괴로웠습니다.  


제 친구 중 하나는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너는 무슨 그런 개새 같은 말을 가만히 듣고 앉아 있었냐?"라며 저를 막 야단쳤는데요, 거친 말속의 진심이 읽혀서 위로가 되더군요.


불임 기간 동안 겪었던 일들이 참 많았어요. 그 일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숱하게 생각했었고 스스로를 돌아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했었지요. 지금도 아주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예전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제 힘들었던 시절들의 고민 덕분 같아요.


그런 힘들고 아픈 시간들이 없었다면 생각 없이 살았던 저란 사람, 얼마나 교만했을까요? 그래서 때론 저에게 다가왔던 시련과 다가온 시련, 앞으로 다가올 시련들이 무조건 다 싫기만 한 건 아닙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개도 새도 아닌 애가 제 곁에 있습니다. 그 애가 벌써 17세예요. 저한테 폭풍 문자를 보내고요. 날마다 귀찮을 정도로 애정 고백을 하지요. 책 읽다가 불의한 장면을 보면 분노하고 눈물 흘리며 욕도 날리는 신체 건강한 아이입니다.


어떤 날은 귀엽다가도 또 다른 날은 '저게 내 애 맞아?' 싶을 정도로 제 속에 화를 솟구치게도 만드는 아이죠. 아이 때문에 속상하거나 실망한 날, 아이로 인해 세상이 다 무너진 것처럼 힘들던 날. 그래도 저를 일으켜 세웠던 기억은요. 불임 시절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소변 환약 복용도, 시험관 시술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병원 치료도, 전국의 명약도 아무 소용없었던 시절. 개와 새와 비교당하는 숱한 모욕에도 임신 한 번 한 적 없어서 완전히 포기했던 시절.


'엄마, 이제 다 포기했어? 세상사는 데에 큰 욕심 없는 거지? 좋은 사람 된 거 맞아? 그럼, 내가 슬슬 찾아가 볼게.' 하며 자연스럽게 다가와 준 딸아이. 밀당의 대가, 최고의 협상가인 딸을 보며 저는 인생을 새롭게 배우는 중입니다.


누군가 힘든 사람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몇 푼어치도 안 되는 어떠한 조건들이 상대적 박탈감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게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제 행동을 돌아보고 늘 경계합니다.


혜민스님은 겪어보지도 않으셨을 세상 일들을 어쩜 이렇게 잘 아실 수 있을까요?



무조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모든 일이 자기 원하는 대로 쉽게 되면 게을러지고 교만해지며, 노력하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 어려움도 모르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은 내 삶의 큰 가르침일지 모릅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118쪽



5세때 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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