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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Oct 14. 2022

#10 권수연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이 수연에 대한 공통된 평이었다. 책임감 있고 유능하고 상황판단 및 대처 능력이 좋은 데다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지만 편한 느낌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먼저 나서서 모임을 꾸리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수연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맴돌았다.

 수연은 장기기증 코디네이터이다. 누군가가 죽어야만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수연에겐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때로는 그런 생각도 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뇌사자가 되어버린 사람이 병원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함께 했던 사람들 중 하나라면 과연 굳건히 죽음을 선택해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울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무너지지 않을 힘이 있는지.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선택할 권리가 없는데 자꾸만 자신에게 주어지는 무거운 결정권들이 수연을 잡아먹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 들 때가 때때로 있었다. 그들을 향해 제발 죽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곧 가족을 잃을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가족을 잃은 사람의 표정을 보는 것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잃을 사람들의 표정에는 슬픔, 분노, 원망, 희망, 안도, 공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섞여 있어 쉽사리 파악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수연의 또래로 보이는 여자의 남편이 빗길 교통사고로 인해 뇌사 판정을 받아 장기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차분하던 여자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지는 걸 보았다. 말실수를 한 건 아닐까, 내가 이 단어를 뱉어도 되는 것이었나, 찰나에 숨을 너무 크게 쉰 건 아닐까. 수많은 생각들이 수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상담을 하는 건 마라톤을 하는 것과도 같았다. 수연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 표정들은 공여자의 보호자들에게는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것이니 상담을 하는 시간 동안 수연은 살을 깎고 피를 쏟아낼 정도의 정성과 마음을 담아낸다. 깊은 바닷속에 공여자의 보호자와 수연만이 있는 듯한 공허함 속에서 바다의 바닥까지 천천히 내려가는 속도로 느리게 꺼져만 간다. 상담이 끝난 후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올 때에는 오랜 시간 바다에 잠겨있었던 것마냥 수연은 등과 가슴이 축축하게 젖어있다. 모든 기증 처리가 끝난 후 수연은 샤워 도구를 챙겨 병원 당직실 내에 있는 샤워장을 향해 갔다. 차디찬 물을 온몸으로 맞으며 울음을 토해내는 것은 수연의 일과가 끝마쳤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수연에게는 늘 어려운 일이다. 정을 주는 것이 수연의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생명의 연장과 맺음을 권유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수연은 그들보다 두발 앞에서 서있어야만 했다. 사회초년생이었을 때에는 공여자와 공여자의 보호자, 기증을 받은 사람 모두에게 마음을 쏟았다. 그 누구도 가엾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에,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 만큼의 삶의 요령이 없었던 수연은 그들에게 온 마음과 감정들을 건넸다. 쉽사리 흔들리다 보니 수연은 마음을 단단하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공여자와 공여자의 보호자, 그리고 기증을 받은 사람들 중 가장 슬프지 않은 사람은 수연이라는 것을 3년 차 때 깨우쳤다. 그들보다 더 슬퍼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안 된다. 이식을 대기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시간이 한정적이기에 수연은 슬퍼하고 아파할 틈이 없었다.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수연은 단단한 바위가 되어야만 했다. 이미 많은 공여자들에게 마음을 쏟아내고 있어서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요가였다. 필라테스가 유행할 때 이미 한물 가버린 운동이라며 사람들의 관심 밖에 벗어난 요가를 선택했다. 근육을 키우고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 저 깊은 아래에 위치한 수연의 감정 상자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꾹꾹 눌러줄 무거운 돌덩이가 필요했다. 발라사나 자세를 취할 때면 자기자신이 무거운 돌덩이가 된 것만 같았다. 바닥을 뚫고 지하 깊은 곳까지 끝도 없이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감정 상자를 누르고 있는 것은 돌덩이가 된 수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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