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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Oct 09. 2022

#9 이현진

 진다르크. 지은이 현진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현진과 지은은 대학교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둘은 너무나도 달랐다. 키가 작은 지은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현진은 키가 컸고 오밀조밀 귀엽게 생긴 지은에 비해 큰 눈에 웃을 때 입꼬리가 시원하게 찢어지는 현진이었다.

 “왜 그러는 거야?”

 “뭐가?”

 “너가 당한 일도 아니잖아. 일 키우지 마. 너가 다칠 수도 있어.”

 “내가 다칠 게 뭐 있어. 잘못 했으니까 벌 주자는 건데.”

 “야, 그래도 학생이 교수 상대로.. 우리가 그만큼 힘이 돼?”

 “교수가 학생 상대로 성추행하는 건 말이 돼?”

 “다른 방법은 없어? 대자보 붙이고 시위하는 거는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너 덕분에 신기한 거 많이 보긴 한다.”

 “내가 과대한테도 이야기하고, 조교한테도 이야기해보고 심지어 행정실에도 이야기했는데 다들 나몰라라 하잖아. 뭐 어떻게 해줘? 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데 숨이 막히더라니까. 이게 최선이야. 괜찮아. 이걸로 학교에서 못 잘라.”

 운동을 했던 탓인지 본래 타고난 기질이 그런 것인지 현진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게다가 오지랖도 넓어서 사건사고의 중심에는 대부분 현진이 있었다. 그런 현진을 지은은 늘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런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세상도 정의로워지지,라고 생각했다.

 현진은 키가 작았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태어났을 때에도 신생아들 중 제일 컸었고 초등학교 때에도 키가 가장 커서 언제나 늘 뒷자리를 도맡았었다. 현진이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농구부가 있었는데 키가 큰 탓에 코치 선생님의 눈에 들어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좋아해서 시작한 농구는 아니었지만 코트에서 나는 운동화 마찰 소리가 현진을 계속 뛰게 만들었다. 그렇게 10년동안 농구를 했다. 운동부는 엄격했고 그 엄격함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한 채 순응했다. 한 명이 실수라도 하면 같은 기수인 아이들은 다같이 기합을 받았었고 운동을 할 때에도 쉴 때에도 밥을 먹으러 갈 때에도 언제나 한 몸처럼 움직여야 했다. 합이 중요한 운동인 만큼 단합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기 위해선 엄격한 코치와 선배들은 없어서는 안 된다. 자율성을 잃었지만 그 엄격한 집단 속에 속해있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편안해서 싫지 않았다.

 “농구도 이제 한물 간 거 아니냐?”

 동기들은 코치와 선배들이 없을 때 이런 걱정을 하면서도 모두 훈련에 빠지지 않고 열심이었다. 농구 코트 위에만 서면 다들 발에 날개라도 달려있는 것마냥 날아다녔다.

 경기보다 더 힘든 것은 체력훈련이었다. 상대팀에게 공을 뺏기지 않으려면 순발력과 민첩성이 필요하기에 플랭크 콤보, 플랭크 드리블, 하이 니 익스플로젼, 런지, 레그 하이 니 콤보, 크로스 스텝과 같은 기초 체력훈련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였다. 현진은 체력훈련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방학 때마다 농구부에서 가는 극기훈련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훈련지는 늘 해병대 캠프였다. 엄격한 분위기에서 10년 가까이 훈련을 해온 현진과 동기들인지라 굳이 공포감을 조성하지 않더라도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데 왜 매번 이런 곳에 와서 훈련을 하는 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단합이 더 잘 되는 건 맞지만 현진에게는 매일매일이 극한의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숙소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여름에는 자고 일어나면 모기나 이름 모를 벌레에 물려 긁은 탓에 언제나 진물이 흘렀고 겨울에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고 틈새로 찬 바람이 계속 들어오는 탓에 체온을 잃지 않기 위해 동기들과 꽉 껴안고 잠들곤 했다.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현진은 코치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계속해서 농구를 했을 것이다. 조그만 권력을 쥐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괴롭히는 사람은 어느 집단에나 있지만 그 권력이 전부인 곳이라면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겐 강해지는 비겁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생각하는 바를 표정에서 숨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미성년자 시절의 현진은 코치를 볼 때마다 드는 반감을 군기가 바짝 든 눈빛 속에서 부당함을 여과없이 드러내곤 했다. 말의 힘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을 표적으로 삼았기에 다른 어른들은 허튼 소리 말고 훈련이나 하라며 믿어주지 않았다. 운동선수는 운동만 잘 하면 된다며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참석도 못 하게 하며 무리한 훈련을 지시하곤 했다.

 “운동 선수는 많이 알아봤자 피곤만 해. 너희 공부해서 뭐 할래? 수업 듣고 공부할 거면 운동 관둬, 너희 훈련 나오지 마.”

 불합리한 지시였다. 참지 못한 현진은 훈련을 나가지 않고 수업을 들었다. 동기들이 모두 말렸지만 현진은 오히려 후련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체력훈련이 현진에게 순발력과 민첩성만 키워준 것이 아니라 끈기 또한 만들어주었다. 부모님조차도 현진이 서울로 대학을 못 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용케 해내고야 말았다.

 지은이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이상한 남자를 만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연애에는 관심도 없던 애가 갑자기 결혼이라니, 그 남자에게 약점이라도 잡힌 것은 아닌가 하는 괜한 생각이 들었다.

 “네가 갑자기 무슨 결혼이야?”

 “왜, 나는 결혼하면 안돼?”

 “아니, 그건 아닌데. 너 뭐 책 잡힌 거 있어? 연애도 귀찮아 하면서 안 하던 애가 무슨.”

 “뭐라는 거야, 그런거 아니거든.”

 오히려 연애는 지은보다 현진이 더 관심이 많았다. 즐겨보는 프로그램도 연애 리얼리티, 연애 상담, 로맨틱 코미디, 사랑이 없으면 거들떠 보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현진은 이성들에게서는 인기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사람친구는 많은 편이나 이성적 발전이 어려운 쪽이었다. 그 중에는 현진을 적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현진이 키가 커서 옆에 가기 부담스럽다는 것과 어딘가 드세다는 것이었다.

 “너 여자 좋아하냐?”

 술자리에서 평소에 싫어하던 회사 선배가 물어온 적이 있었다.

 “여자요? 좋아하죠?”

 “아, 너 레즈 맞구나?”

 잘못 알아들었다. 이성적인 호감을 묻는 질문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현진은 확실한 이성애자였지만 흔쾌히 아니라고 대답해주기 싫었다.

 “그건 왜요?”

 “사람들이 궁금해 하잖아.”

 “궁금하면 돈 내고 직접 물어보라 해요.”

 “어휴, 넌 여자애가 왜 이렇게 드세냐, 고분고분한 맛이 없어.”


 하, 하고 현진은 웃어버렸다. 이렇게 웃으면 사람들이 기분 나빠한다고 언젠가 지은이 말한 적이 있었다.

 “선배는 남자가 되어놓고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

 아직도 남자는 이래야 되고 여자는 이래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누가 법으로 정해놨어? 정해놨다 한들 잘못 된 거면 고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 아니야. 머리도 봐, 좀 길러. 남자처럼 짧게 하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오해하지. 옷도 펑퍼짐하게 입고 그게 뭐냐.”

 “닥쳐요.”

 “뭐?”

 “아님 꺼지던가요.”

 그 선배는 닥치지도 꺼지지도 않았기에 현진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현진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그 자리를 빠져나가야만 했다. 헛구역질이 났다. 술집에서 현진의 집까지는 전철역 3개 정도 되는 거리였다. 속에서 오른 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현진은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다 지은이 주말마다 가는 빵집을 마주쳤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아이스슈를 사서 얼굴에 갖다대니 열이 조금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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