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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에 이골이 난 돌멩이의 잃어버린 일기장

032. 행사 출장과 이 시기의 단상들 2

by 한량돌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E12QM-a9TFk

<【��������】조용한 시골 한옥 책방에서 듣는 독서음악 - BIBIDA MUSIC>




[2025년 1월 00일 9시경 - 행사 출장 6일 차]


아.. 한 시간을 늦게 일어났다. 큰 일 났네..

근데 도착 시간은 비슷했다. 망할 서울 교통 체증.


요즘 다행히 피글렛 님이 혼자서 오픈 준비를 다 해준다.

당신 없었으면 난 이 행사 못 했어 정말로.. 고마워요.



[오전 11시경]


지긋한 여사님이 그릇을 꽤 많이 샀다.

무겁기도 하고, 강아지를 안고 있어 본인 차까지 좀 그릇을 들어주길 부탁한다. 지금 바쁘지 않으니 그러겠다고 했다.

아니, 그보다 당연하다는 듯 나의 노동을 요구하는 태도가 아니어서 그렇게 했다.


차에 짐을 실어주었다. 그녀는 연신 고맙다고 했다.

내가 고맙죠 뭘..



[오후 12시 48분]


오전 판매를 한바탕 마쳤다. 한숨 돌리고 핸드폰을 확인한다.


- 실장님 안 돼요.. 안됩니다아아...


왈가닥 매니저님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몇 달 전 퇴사 소동을 벌였던 그 왈매님이다.

KakaoTalk_20250128_004600996.jpg


내가 퇴사하기 전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대체자를 찾기 위해

푸바오가 왈매님에게 구인 지시를 했나 보다.


자기 붙잡을 땐 언제고 이렇게 갑자기 포기하려고 하냐고 나를 붙잡는 매니저님의 성화.

감사한 연락에 기분이 썩 괜찮아졌다. 돌멩이 실장, 짜식 그래도 열심히 한다고 했긴 했나 보네.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자랑스러운 어머님.. 응원합니다..!



[오후 7시 40분경]


어제 폐점 시간이 지나서까지 나를 괴롭히던 온몸에 명품을 두른 아주머니가 다시 찾아왔다. (근데.. 옷은 왜 안 갈아입어요?)


총 구매 금액은 120 여 만원인데, 할인에 할인을 요구하고 사은품도 더 챙겨주길 요구했다.


웃기시네. 나는 이 현장의 책임자다!

완강하면서도 똑 부러지게 그녀에게 최대한 맞춰주었다. (예?)


아무튼 큰 건도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다.



[2025년 1월 00일 - 행사 출장 7일 차.]


작업장 상황이 혼란스러운 것 같다.

넘치는 출고량에 실수가 자꾸 생기나 보다.


한 번은 오배송을 받은 고객에게 메시지가 왔다.

KakaoTalk_20250123_014032912.jpg 실수해서 미안합니다만.. 다 이를 거야!


아마도 내가 '우린 주 판매처가 온라인이니 택배 걱정은 마시라.'라고 전했던 사람인가 본데,

빈정대는 투로 말을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니 그래도 사람 하는 일인데.. 실수가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당신 삶이 얼마나 팍팍할지 안 봐도 비디오다..



행사 택배 오배송 때문에 미쳐버리겠다는 푸바오.

결국 이모님들 본 공정으로 복귀시키고, 내일부터 본인이 직접 포장한단다.


제가 그렇게 말했잖아요. 택배도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그릇 종류도 헷갈려하는 이모님들 데려다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준비시키면 될 일이냐구요..


근데 그러셨죠.

택배는 원래 여자들이 우르르 싸는 거라고, 그 시간에 남자들은 다른 힘쓰는 거 해야지 맞는 거라고.


사장님.. 그 말씀, 경험 없는 제가 보기엔 그 옛날 품목도 몇 개 안 되는 그릇들 신문지로 둘둘 싸서 대량 출고할 때나 맞는 얘기고요. 지금 우리 그릇 종류만 99개잖아요.


포장 과정은 또 어떤데요. 고급 브랜드로의 발돋움을 위해 B급 출고되는 일 절대 없어야 하니까 검수 철저히 하고, 사용 설명서 넣고, 택배에 향기 오일 뿌리고, 겉 박스에 브랜드 도장 찍고, 사방으로 완충제 채우고, 파손주의 스티커에 송장까지..


직접 포장해봤으니까 알잖아요.. 왜 사람들이 택배만 맡으면 혀를 내두르면서 도망가는지..



[2025년 1월 00일 12시경 - 행사 출장 8일 차]


오늘의 구내식당. 이번 메인 메뉴는 육개장.

두리번두리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그 순간 목에 걸고 있던 출입증을 육개장에 폭 담가버렸다.

I See ;; 헐레벌떡 세면대로 달려가 빠득빠득 닦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KakaoTalk_20250123_115358371.jpg 당분간 맛있는 냄새가 날 것 같다.


육개장에서는 무슨 맛이 날까.

101011001 같은 맛이 날까? 는 개뿔. 얼큰-하이 좋네!



[오후 3시경]


손님이 끊긴 시간,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봤다. 근데 그게 꼭 고기 굽는 불판처럼 생긴 게 아닌가.

KakaoTalk_20250128_003340663.jpg


나는 혼잣말을 했다.


- 아, 고기 먹고 싶다..


그때 옆에 있던 피글렛 님이 말했다.


- 나두요..

- 그러면.. 행사 끝나고 다음 주에 같이 고기 먹을래요?

허허 이놈 자식, 전개 봐라?


이 기간의 힘듦을 속풀이 할 상대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좀 외로워서였을까?


또래인 피글렛 님과 가질 식사는 왠지 이 행사 출장의 여정의 매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말에 치과 가야 하는데.. 치과는.. 다 끝나고 그다음 주에 가자. 어차피 늦은 거..



[오후 4시경]


현장에 나와 브랜드를 홍보하고 그릇을 판매하는 것은 나 같은 유리멘털에게는 진짜 진짜 피곤한 일이다.

안 하고 안 벌고 말ㅈ..


그렇지만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듯, 이런 와중에도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 아유 예뻐라~

- 참 괜찮네~


우리 그릇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많은 사람들. 온라인 어디 어디에서 보고 찾아왔다는 사람들.

그렇게 고객들을 만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꽤 매력적인 물건을 팔고 있구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우리 그릇을 좋아해 주는구나. 우리 경쟁력 있구나.' 하는 그런 긍정적인 단상들.


그러다 갑자기 행사처의 담당들이 들이닥친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아니 왜요, 우리 아무 잘못도;; 사탕 몇 개 주워 먹은 죄 밖에는..


그때 밑에서 정장 빼 입은 남자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온다.

담당 부장이란 사람이 달려가는 걸 보니 딱 봐도 높으신 분들인 갑네.


나는 그러건 말건 당황하지 않고 그릇을 정리한다. (당황했다.)

나는 귀가 좋다. 그들이 하는 말이 들린다. 우리가 최근 주방 관련 행사 중에 가장 성적이 좋다고 한다.

행사 기간도 아직 꽤 남았는데 말이야. 흠흠.


피글렛 님과도 점점 손발이 맞아가는 느낌이다.

자아,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요.



[2025년 1월 00일 오후 11시경 - 행사 출장 11일 차]


소복이 눈 내리는 밤.

곧 설 연휴라 그런지 촌구석은 더욱 조용하다.


작업장에 돌아와 사무 업무를 보고, 푸바오가 챙겨놓은 추가 재고들을 차에 실는다.. 아- 오늘도 끝났구나.


돌아가는 길에 푸바오에게 전화가 왔다. 웅얼웅얼 뭐라고 하는 거야..

이 양반 술, 담배 끊은 지 오래인데 혀가 꼬이는 걸 보니 술을 한 잔 한 것 같다..


아이고 아버지..... 많이 힘들죠..? 내가 어찌 그 어려움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고맙고.. 밉고.. 응원합니다.




눈이 이젠 펑펑 오는구나.


내일모레까지는 설을 맞아 행사가 잠시 멈춘다.


집에 돌아와 씻고 일기를 정리하면서 아주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아우 근데 배고파 돌아가시겠네. 늦어서 뭘 먹기도 그렇고..

내일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파트 앞 마트에서 돼지 앞다리살을 두 팩 사야겠다. 김치찌개나 해 먹자.

엄마가 준 김치가 이젠 푹 익고도 남았겠다.


잘 챙겨 먹고 밀린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해야지...

아니 잠깐 말이 또 딴 길로 세네;;




어느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인용해 본다.


글쓰기는 모두가 배우지만 모두가 글을 쓰지는 않는다.

글쓰기는 쉬이 흘려보내질 일상을 정제하여 높은 가치의 보석을 만들어내는 숭고한 작업이다.


나는 앞으로도 삶이 오지게 힘들지언정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거다.

오늘 이 켜켜이 쌓여가는 달기도, 쓰기도 한 일상이

작가가 될 나를 키우는 양분이 되도록.



으아아 간만에 잠 좀 자자!

고생 많았습니다. ~_~






사진 출처


- 대문사진

<a href="https://pixabay.com/ko//?utm_source=link-attribution&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image&utm_content=1076186">Pixabay</a>로부터 입수된 <a href="https://pixabay.com/ko/users/nova_27-1710840/?utm_source=link-attribution&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image&utm_content=1076186">Katja ____</a>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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