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행사 출장과 이 시기의 단상들
으아아아아아아아
정신차려어어어 할 수 이따아아아아
* 아래 일기에는 과한 징징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이 일기장을 입수하신다면
들여다보는 동안 부정적인 마음이 전염되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함께하면 더 좋을 추천곡
https://www.youtube.com/watch?v=zVuAKAlS8O4
<[4K] 하현상 (HA HYUN SANG) - “등대 (Lighthouse)” Band LIVE│겨울 감성 무대⛄ [it's Live X Blooming Concert 2021]>
2025년 1월 00일 4시 00분 - 행사 출장 1일 차
서울로 출장을 가는 날이다. 짐은 어제 1톤 트럭에 다 꾸려놓았다. 분명 빠진 게 있을 것만 같다.
전날 아침에 푸바오가 일찍 출발해야 하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 보라고 했다.
전날 오후엔 내가 없어도 작업장이 잘 돌아가도록 주변 정리를 하고, 다른 직원분들에게 이것저것 인수인계를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훌 가서 평소처럼 퇴근했다. 이럴 줄 알았거든!
첫날이라 행사 품목 입고 작업을 해야 해서 푸바오가 우리 집으로 나를 태우러 온다고 했다.
나는 푸바오의 전화에 놀라 깨었고, 약속 시간보다 살짝 늦게 나왔다.
그런데 푸바오는 왜 안 오는 거야. 아, 전화했을 때가 본인도 일어났을 땐가 보네.
어제 밤늦게 귀가하신 것 같던데. 아이고야..
기다리면서 담배를 하나 물었다.
몇 모금 마시자마자 곧 트럭이 온다. 아까운 장초,,
- 어.. 다시 담배 피우니?
- 아.. 예..
운전은 푸바오가 한다. 그가 얼른 자라고 한다. 잠이 오질 않는다. 그저 별 탈 없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초행길 이슈와 행사처의 복잡 삼엄한 보안 절차로 인해 예상보다 늦은 7시가 되어서야 행사 현장에 도착했다.
새벽 간에 외주 업체에서 설치해놓은 세트를 보고 푸바오는 불만감에 또 한숨을 쉰다. (제발 이제 그만 업체 바꿔요..)
3시간이 확보 됐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릇과 집기들을 불나게 비치한다. 현장이 깜깜한데 불을 안 켜준다. 한숨이 계속 나온다.
9시가 되어서야 불이 켜졌다. 오픈 시작은 10시 반.
10시부터 행사처 담당들이 와서 이런저런 수정사항을 얘기한다. 아니 지금 그러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오..
정신없는 우리에게 '뭘 도와줄까요. 말씀하세요.'라고 묻는다.
필요 없고 제발 그냥 저기 멀리 계세요.
곧이어 약 3주 간의 대장정을 같이 해줄 매니저님도 도착했다. (이분은 피글렛이라고 부르겠다.)
정신없는 오픈 준비에 목례만 까딱.
여기 행사처에서 경험이 많은 분이라고 하니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첫날부터 참 정신없게 미안하네요..
믿을 건 우리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좌충우돌, 주먹구구식으로 행사를 준비하는 우리와 그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나.
진짜.. 짜증 나는 경험이다. 나는 왜 최선을 다 하지 못할까.
뻔히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지 알면서도 행동을 주저하는 나를 욕하려다가
요 근래 집에 가서 유튜브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고 쓰러지는 나를, 건강하지 못하게 살이 계속 빠지는 내가 떠올라 그만,, 비난을 멈춘다.
너무 강한 자기애는 위험하다지만 지금 같은 전시 상황에서는 내가 나를 먼저 지켜줘야 해.
결국 완벽하게 세팅 못하고 행사가 시작 됐다.
주말이라 그런가 사람이 왜 이렇게 많니.
많이 팔아야 하지만, 많이 팔수록 고통스러운, 마음 뜬 직원의 아이러니.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머리가 빙빙 돈다.
아아, 정신 차려. 나는 지금 현장 책임자잖아.
여기 결제 시스템은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행사는 또 카드별로 왜 이렇게 많은지.
복잡하게 주문하고 왜 취소하고 또 주문하는 건지.
도대체가 예습을 할 수가 없는 외부 행사의 결제 시스템들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저 많은 경험이 답인가..
하루 종일 둘이서 버둥버둥. 그래도 피글렛 님이 있어 복잡한 건들 잘 해결하고 1일 차를 마쳤다.
푸바오는 3시쯤 먼저 작업장으로 복귀했기 때문에 오늘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
터미널에서 푸바오가 데리러 오기로 했다.
얼마 만에 타보는 고속버스인지. 주말이라 그런가 버스 안은 빈자리 없이 붐볐다.
버스 창에는 이윽고 내부의 열기로 인해 희뿌옇게 커튼을 쳤다.
앞 천장 쪽에 달린 TV에 나오는 탄핵 뉴스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그냥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기로 한다. 그리곤 돌아가서 뭘 우선순위로 해서 처리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12시 지나기 전에 얼른 작업장 돌아가서 송장 뽑고, 밀린 재고 정리 하고, 내일 협조 내용 소통하고.. 또.. 뭐 해야 하ㄷㅓ ㄹ.............zZZ
2025년 1월 00일 행사출장 4일 차.
아직도 몸이 긴장되어 있던 건지 다행히 아침에 잘 일어나서 행사처로 향한다.
노을이 보이지 않는 빌딩 숲과 붐비는 사람들이 지겨워 떠났던 나는 다시 그곳으로 가고 있다. 기분이 꼭 신병 교육대 들어가는 까까머리가 된 기분이랄까.
날이 갈수록 체력 회복에 어려움을 느껴 서울에 숙소를 잡을까 푸바오와 상의하다가 괜히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 그냥 출퇴근하겠다고 했다.
작업장에 돌아오지 않으면 왠지 큰 일 날 것 같다. 참, 지 혼자 일 다 해요. 근데 어떻게 해 여건이 그런 걸..
서울 출근길이 얼마나 구린지 10km 거리를 한 시간 반을 운전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먹고살기 위해서 이렇게 출퇴근을 한다는 거잖아.
아, 이제 다시는, 다시는 서울에서 일하지 않으리.
서울은 놀러 가야 제 맛이야.
아니 평일에도 이렇게 바쁘다고?? 야~~ 이거 참 허허..
복잡한 결제 이슈와 다양한 유형의 고객들에게
오늘 특히나 기가 쪽쪽 빨린다. 야아 아아. 소리 지를 힘도 없네..
내가 그러건 말 건 그래도 시계는 계속 돈다.
- 실장님! 벌써 다섯 시 넘었어요. 얼른 식사하고 오세요~
- 아, 네. 시간이 벌써. 얼른 다녀올게요!
미로 같은 직원 통로를 지나 지상으로 내려왔다.
와, 사람 진짜 많다..
길게 늘어선 유명하다는 복권 판매점의 대기줄.
흡연구역에서 끊임없이 헛소리하는 어딘가 아픈 아저씨.
서로 웃고, 화내고, 껴안으며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
...
명동거리처럼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 숙이기는 좀 싫고, 그 대신 천장을 바라보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천장도 한 번 기갈나게 고급스럽게 해 놨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몇 숟가락 먹다가, 오늘 나온 탕수 만두는 고양만두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잠깐 눈이 감겼다. (아니 나 이거 집 갈 때 운전해도 되는 거냐...?)
밥을 먹고 돌아와서 현장에 부족한 재고를 파악하고 작업장으로 넘긴다. 작업장에서 푸바오가 미리 준비해 둔다. 그걸 실고 와서 내일 채우면 된다.
8시가 다 되어가서 피글렛 님을 먼저 보내기로 한다. 이래저래 대충 마감을 한다.
박카스 F를 속에 때려 넣으니 눈이 좀 뜨인다. 이 기세로 얼른 복귀해야겠다.
우리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_~
아, 오늘은 특히 수많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무한한 박수와 위로를 보내고 싶다.
2025년 1월 00일 12시 40분
오늘 할 건 다 했다. 아니지. 하나 남았는데..
어떻게 말한다..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니 푸바오는 절절 끓는 가맛불을 만지고 있었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말하겠어.
- 작가님. 드릴 말씀이..
특유의 쭈뼛 말투로 이리저리 퇴사 이유를 둘러댔다.
내가 생각했던 삶의 모습이 아니다.
계속 이렇게 흘러가면 내 작업이 안 될 것 같다.
내가 나를, 내가 주변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것 같다...
푸바오는 말했다.
안돼... 안돼..
아직 자리가 안 잡혀서 그런 건데..
......... 나도 해줄 말이 없다. 그래.. 그래..
후련하다.
약간의 미안함은 있지만,
마음이 꽤 편해졌다.
2025년 1월 00일 01시 03분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수 하현상의 '등대'가 나왔다. 이 놈의 알고리즘은 셀프 퇴사 통보도 알고 있는 거냐?
노래 한 번 드럽게 슬프네.
울먹거림을 참을 수 없다. 그래도 눈물은 안 났다. 진짜 눈물이 메말랐나 봐.
좀 울어보고 싶다.
누구라도 나에게 잘 살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는 밤이다.
얼른 가서 씻고 자야지.
아직도 행사 출장 한참 남았다.
[하현상 - 등대] 가사
아무리 울어도 울어지지 않는 날에
조용히 파도가 말을 걸어오는 길에
언제까지 머물 거냐는 누군가의 말은
금방 돌아가겠다고 대답해 보지만
나만 또 제자리에 서성이며
남아 있는데
어느 새벽달이 지나가네
난 오늘도 전하지 못한 말들이 있나
파도에 소리쳐봐도 들리지 않으니
그렇게 억지라도 웃어 보이는 건
내일이 있어서야
발걸음엔 그림자가 잔뜩 배어 있고
처음이 주는 떨림은 이젠 익숙해서
그냥 아무 대답도 못 한 채로
남아 있는데
어느 새벽달이 지나가네
난 오늘도 전하지 못한 말들이 있나
파도에 소리쳐봐도 들리지 않으니
그렇게 억지라도 웃어 보이는 건
내일이 있어서야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어
외로움도 저 바다에 날려버리겠어
아무리 도망쳐봐도 아침은 올 테니
그렇게 너를 보며 웃어 보이는 건
등대가 빛나서야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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