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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ee Oct 20. 2021

대충 지내보자


나의 굵직한 감정선은 주로 계절을 따라가고, 여름은 내 모든 의욕적인 마음을 마비시키는 가장 곤욕스러운 계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여름, 가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한 아름 언니가 말했다. 대충 지내보자고. 저 짧은 말이, 어찌 보면 '저게 뭐야?' 할 법한 말이 내게 와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작은 일이어도 항상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게 대충 지낸다는 건 꼭 나 자신도, 시간도 낭비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쓸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이 일 년의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계절. 뭔가를 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따라주지 않는 에너지에 결국 더 크게 슬럼프를 겪는다. 몇 번의 여름을 거치고 나서야 알게 된 나의 패턴이었다. 더 큰 화를 입지 않기 위해선 ‘대충’이라는 단어를 미리 마음에 새겨두는 게 결국 나를 지키는 현명한 방법 이리라.


이렇게 있어도 되나, 나는 뭘 더 해야 하나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불안해할 때마다 곱씹어본다. "대충 지내보자." 애초에 사계절 내내 에너지 넘치는 사람은 못 되니 내게 가장 취약한 계절이라면 ‘탈 없이 지나가기’라는 낮은 목표를 세우자. 작년처럼 금방 쪄 죽을 것 같은 더위는 아니라 그럴까, 아직 까진 마음에 별 탈 없이 지낸다. 글도 잘 쓰지 않고 윤슬처럼 잔잔하게 일렁이는 나날들. 주로 생각이 많거나 마음이 엉켜 있을 때 글을 쓰는 편이니 쓸 말이 없는 지금도 썩 나쁘지 않다.


아마 또 누군가가 무얼 하는 모습을 보면 불쑥 생산병이 도지겠지. 이 한 계절 쉰다고 뒤처지는 마음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겠지. 그게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이렇게 지나가기만 해도 괜찮다고 자꾸 말해줘야겠다. 뒤처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네가 정말 괜찮은 거냐고 자꾸 다시 내 안으로 질문을 던지며, 또 다독이며 이번 여름을 보내야겠다.


좋아하는 나의 공간에서 조명 켜고 침대 위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자. 졸리면 자고, 창 밖에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자. 바닐라 라떼가 마시고 싶으면 그 즉시 뛰어나가 신나게 마시자. 그러다 가끔 기분 나면 책도 꺼내 읽고, 가끔 영감 떠오르면 글도 쓰고, 그렇게 마음이 아주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마다 하나씩. 다시 힘이 나 스스로 기대에 벅차 달리지 말래도 달리는 그날도 또 올 테니까 결코 나를 독촉할 필요가 없다. 대충 보내보는 계절, 기다리는 계절, 재충전하는 계절. 이 또한 내가 껴안을 테니 잘 지나가 보자,

나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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