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촉이 있고 나는 실행력이 있는데 현실은 금전이 없다.
나보다 6살 많은 남편과 결혼했지만 결혼할 당시 남편은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모은 돈이 3,600만 원쯤, 친정엄마한테 빌린 돈 2,000만 원과 시어머니께서 주신 1,000만 원 포함해 대략 6,000만 원의 돈만 있었던 우리는 울산에서 조금은 외각인 시골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보다 조금 멀리 내다볼 줄 알았던 남편은 비록 돈은 없지만 28평에서 시작하면 문제없이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으니 빚을 1억 이상 내자고 했다. (그때 당시 28평의 집이 1.8억쯤이었다) 몇 년에 걸쳐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지친 나는 내 인생에 더 이상의 빚은 없다는 애송이 같은 생각을 굳혔고 적을 빚을 위해 24평의 집을 1.45억에 매매 계약을 마쳤다. 10월이 결혼임에도 남편의 자취방 재계약 시기로 인해 1월에 계약을 완료했고 8월에 입주하기로 했다. 매매 금액의 10%인 1,400만 원을 입금하고 집 구하는 일에 손을 놓았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집값이 솟구쳐 올라 아주 구석에 있던 우리 집 또한 3,000만 원이 오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길로 계약 파기를 당했다. 계약금의 두 배인 2,800만 원을 돌려받으면서 굉장히 씁쓸했다. 집값이 너무 올라 우리가 가진 돈으로 구할 집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또 다시 발품을 팔아 집을 보러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절망스러웠다.
꽃피는 3월이었다. 바쁜 부서에서 일하던 우리는 일할 시간도 부족했고 데이트는 불가능하다시피 한 시기를 거치고 있는 와중에 또다시 집을 보러 다녀야 했다. 21평집이 매매가 1.5억으로 뛰어있었다. 이런 코딱지만 한 집이, 20년이 다 되어가는 집이 1억 오천이라니. 집을 매매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우리는 그냥 가진 돈에서 신용대출을 조금 추가하여 21평 집을 1.1억에 전세로 들어갔다. 1,400만 원이 갑자기 생겼으니 기쁘게 가구를 구매하고, 그 돈으로 결혼 준비를 마쳤다. 한동안 집값이 더 치솟았고, 우리는 영원히 시내 중심가에 살 수 없다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 더 외각으로 주택청약을 넣었고, 운이 좋았는지 인기가 없었는지 넣는 족족 다 걸리는 바람에 빚을 내고 또 내어 38평의 집과 35평집 두 채를 계약했다. 언젠가는 부모님을 울산으로 모시고 싶은 욕심에 무리해서 두 채를 계약했 던 것이다. 결국 부모님은 울산으로 오지 않으셨고 입주 시점에 두 집의 분양권을 모두 처분했다. 회사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먼 거리를 매일 아이를 데리고 출퇴근하는 게 자신은 없었기에 하나는 1,400만 원을 받고 기분 좋게 팔았지만, 나머지 하나는 200만 원이라는 2년간의 대출 이자도 안되는 가격에 어쩔 수 없이 버렸다고 표현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새집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가깝고 나름 초등학교도 바로 앞에 있는 4년 차의 깨끗한 집을 찾아 이사했다. 전세를 빼는 시점에 집값이 약간 하락해 있었다. 남편은 촉이 좋은 사람이라 내게 몇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다. 살던 동네의 48평집 A와 조금 더 시내와 가까운 34평의 집 B였다. 당시 2살이었던 아이를 데리고 여러 군데의 집을 둘러봤다. 우리가 가진 재산은 1.1억이었다. 그 돈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집은 없었고 무조건 큰 빚을 내야 했다. 맞벌이하면 빚 2억 정도는 괜찮다는 남편의 말에 손을 벌벌 떨면서 집을 보러 다녔는데 정말이지 운명처럼 지금의 집을 만났다. 문수산이 멋지게 보이는 정남향의 햇살 가득한 고층 집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조금 내려갔다 생각되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동향집을 보러 갔는데 그날 부동산 소장님은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다며 총 6개의 집을 보여주셨다. 같은 아파트의 A, B, C, D 타입을 다 보고 동향과 남향을 모두 봤다. 그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초록빛 나무와 반짝이는 저수지가 보이는 도심 속 고층 남향집. 거실 창밖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얘기했다. “오빠, 이런 집은 돈 있으면 바로 사겠다..”
그렇게 부동산 투어가 끝났고 나는 그 집에 살고 싶어 그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가 가진 재산은 1.1억이었고 그 집의 가격은 4억이었다. “오빠, 그 집을 매매 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빚을 3억을 내야 되는 거야?”. 퇴직금을 선지급 받고 이것저것 모아보면 2억 2천쯤 필요했고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남편의 말. 며칠 밤을 부동산 카페를 드나들며 시세를 보고 주변 상황을 검색하고 지난 가격을 검색했다. 입주 시점으로부터 1억 정도 오른 가격이었다. P가 1억인 셈.
돈을 떠나 다른 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보며 살고 싶었다. 동향집보다 2,500만 원이나 비싼 금액이었고, 굳이 산 뷰를 2,500만원이나 더 주고 사는 게 현실적으로 맞는 건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가격을 흥정하다가 3.9억을 불렀더니 부산에 산다는 집주인이 다음날 울산으로 왔다. 우리 집이 그렇게까지 깎아야 되는 집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길로 집주인은 기분이 상했는지 계약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내 마음속에 이미 그 집은 우리 집이었기에 다른 부동산을 통해 어렵사리 그 집을 손에 넣었다. 그렇게 힘겹게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