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나는 돈보다 시간과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최저 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시간이 아까워 아르바이트하지 않았다. 돈은 직장을 가지고 난 뒤에 벌어도 된다 생각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경험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방학을 이용해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떠나기도 했고, 배를 타고 외딴 섬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단연코 서울에서 두 달간 머물렀던 시간을 꼽을 수 있다. 요즘이야 제주 한 달 살기, 서울 한 달 살기라는 용어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2004년 즈음에는 대학을 타지역으로 가지 않는 이상 삶의 터전을 벗어나는 일이 흔하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크게 없었다.
지방에서 자라고 지방대로 진학하다 보니 20년간 경상권에서 생활했다. 대학교 1학년 말쯤 되니 우물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내 모습이 보였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문득 서울에 가보고 싶었고 그곳의 생활이 궁금했다. 궁금하면 해봐야 하는 내 성격에 역마살이 발동하여 겨울방학을 이용해 서울 생활을 해 보기로 했다. 친구의 언니가 서울에 대학을 다니면서 자취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두 달만 나를 재워줄 순 없는지 문의하여 소정의 방값을 지불하고 언니 집에 머물기로 사전에 의논했다. 그렇게 서울 생활 계획이 수립되었고 생활비를 포함한 두 달간의 계획이 포함된 몇 장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학교 가기 전에 엄마 아빠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살포시 두고 갔다. 결론적으로 나의 계획은 이러하니 돈을 달라는 호소문이었다. 내 완벽한 계획과 절실함이 통했는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요즘 말로 서울 한 달살이, 아니 두 달살이를 하게 되었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이 서울권 대학생들과의 교류였기에 여러 스터디 그룹에 참여하여 다양한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소그룹으로 구성된 사람들과 영어 회화를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위한 정보를 교류하면서 그들의 적극성을 배웠으며, 스스로 찾고 공부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경험을 가득 안고 지방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많은 부분이 변해있었다.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법을 몸과 마음으로 깨닫고 실천하게 된 것이다.
돈과 경험의 가치를 바꾸었던 또 한 번의 경험이 있다.
대학 생활이 끝나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지방 사립대 공대는 학비가 비쌀뿐더러 인기도 많지 않음을 이유로 학비의 85%를 장학금으로 돌려주는 제도가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가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장학금을 받으면 갚는 형태로 학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내가 과연 돌려받은 학비를 즉시 갚았을까? 기본 세 살 이상이 많은 남자 소굴에 나 혼자 여자 후배였던 이유로 나는 또다시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선배님들, 저의 대학원 1학년 2학기가 제 인생에 있어 마지막으로 걱정 없이 놀 기회라 생각합니다. 저는 떠나겠어요. 논문은 다녀와서 쓰겠어요!”
그렇게 얘기하고, 안식년을 떠난 교수님께 거짓말을 하고 85%의 장학금을 가지고 21박 22일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휴학하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으며, 어학연수나 해외 교류 프로그램에 지원해 본 적 없었기에 해외여행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내가 혼자서, 아주 먼 나라 유럽 대국으로 배낭 하나 짊어지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을 만났고, 겁 없이 움직였으며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큰 곳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을 접하고 많은 경험을 해보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스스로 찾고 두드려본 경험이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크나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커다란 태풍이 되어 돌아오는 나비효과와 같이, 스스로 찾은 작은 경험들이 멋진 내 인생을 만드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군대를 제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생에게 500만 원을 쥐여 주며 유럽 배낭여행을 권했고, 내가 베풀었던 그때의 호의를 동생도 잊지 못한다. 동생은 그 뒤로도 나의 권유로 국토대장정 등 여러 활동에 참여함을 발판삼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직했으며, 서른이 되자마자 가정을 꾸려 훨훨 날아가 버렸다.
젊은 날 겪어보는 경험의 가치를 돈의 액수로 환산할 수 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그건 지금, 이 순간의 시간과 경험이 돈보다 가치 있다는 마음이다. 그렇게 오늘도 새로운 경험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한다. 언제나 그때의 마음을 잊지 말라는 듯, 책상 한쪽에서 스무 살의 내가 멋쩍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