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록, 여행의 기억

Part 3.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by 여네니

여행이 즐겁고 아름다운 이유는 일상의 힘듦을 잠시나마 떨쳐버릴 수 있음이고, 함께 여행한 사람과 사진 한 장으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친정에 여행 사진이 많이 저장되어 있어 옛 추억을 소환하고자 외장하드를 들고 찾아 나섰다. 사진을 들추고 있으니 엄마가 다가와 예전에 제주도 가족여행 갔던 곳 사진이 있느냐 묻는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했던 여러 곳을 사진을 통해 되짚으며 담화를 나눴다. 와 이때는 정말 날씬했다, 젊었다, 그래 여기 너무 좋았지, 이런 사진은 왜 찍었나, 매일 똑같은 옷만 입었네 등등. 수많은 사진 속에 나 홀로 여행 폴더를 열어보며 여행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나는 첫 여행을 시작했을 때부터 혼자 먼 곳으로 떠나는 긴 여행을 추구해 왔다. 나이가 들면 체력적인 이유로 멀리 가기 어렵고 가족이 생기면 혼자 하는 여행이 쉽지 않을 것이며, 직장생활을 지속한다면 길게 떠나는 여행이 불가능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간을 만들어 가장 멀리 떠날 수 있는 여행을 시도했다.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동경,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는 설렘, 여행지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해프닝 등 모든 것이 공부였고 즐거움이었다. 스스로 계획하고 몸으로 움직이는 게 진짜 여행이라 생각했기에 관광 사의 패키지여행을 선호하지 않았으며 젊은 날의 여행이야말로 경험을 사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매번 스스로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혼자 떠나곤 했다.


그렇게 유럽, 미국, 터키, 호주, 인도를 돌았다. 아시아권 관광을 포함하면 열 손가락을 넘길 만큼 비행길에 올랐고 수많은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로움과 삶의 많은 순간을 스스로 이끌어야 한다는 적극성이다. 원래도 유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여행으로 인해 아주 부드럽고 더욱더 열정적인 사람으로 발전했다. 그렇기에 여행을 사랑했고 여행을 즐겼으며, 누군가 선택의 갈림길에 움츠리고 있다면 등 떠밀어 여행을 권하고 싶다.

여행을 통해 얻게 된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에 대해 생각해본다.


“여행,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여행할 때마다 계획을 세운다. 이번엔 이걸 해야지, 여기서 이건 꼭 봐야지 등. 매번 하나의 큰 목표치를 설정하고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매번 이것만큼은 꼭 해야지 하는 것들을 오히려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생애 첫 스카이다이빙을 스위스에서 시도했지만, 날씨 때문에 포기해야 했고, 융프라우의 정상에 올랐으나 안개만 가득했으며, 그랜드캐니언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 절벽을 내려다보고 싶다는 소망도 이루지 못했다. 그뿐인가? 지도를 보며 열심히 찾아가고 있는데 목표했던 곳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사소한 것까지도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접하고 나서부터 나는 여행에 큰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되었다.


날씨도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나름대로 운치 있다 느끼려 노력했고, 그에 맞는 다른 볼거리를 찾아 그저 그 순간을 즐기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큰맘 먹고 돈을 들여 여행길에 나섰는데 계획한 일을 이루지 못하는 것만큼 아쉬울 수가 있을까. 만약 이 모든 것에 스트레스를 느꼈다면 나는 여행을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나라고 아쉽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즐거워지자고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날씨와 다른 변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 상황에 맞는 볼거리를 찾는 나는 자유로운 여행에 더욱더 깊게 빠져들며 다양한 가능성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Excuse me이 가져다준 적극성”


혼자 여행하다 보면 매사가 Excuse me으로 시작된다. 묻고 또 묻다 보니 무언가 묻는데 거리낌 없는 사람이 되었다. “못할 게 뭐 있어? 하면 되지!”, “모르는 길은 물어서 가고 둘러가도 괜찮다”, “넌 누구니 어디서 왔니, 어디를 여행 중이니?” 늘 여러 차례 묻고 답했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무슨 일을 행함에 있어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다. 일단 시도해 보고 잘 안 되면 둘러 가더라도 끝까지 갈 수 있는 뚝심이 여행을 통해 길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획하고 행동하는 여행의 모든 순간이 삶이 축소판이다. 소소하게 흘러가는 과정이 삶의 많은 순간과 연결된다. 그렇기에 여행은 젊은 날 필수적으로 행해야 하는 놀이이고 가치관 형성에 많은 도움을 주는 값진 경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같은 형태를 지속하면 의미를 잃게 된다. 충분히 많이 했다고 느껴지는 순간, 가족 앞에서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고 선언하고는 여행에 종착지라고 말하는 인도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마음이 너무 힘들어 여행을 떠난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서울에서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회사 일 때문에 많이 지쳐있었고, 행복하지 않아서 죽고 싶은 절박한 마음에 두 달간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나왔다고 했다. 각자의 여행이 시작되는 며칠을 함께했고 짧은 시간 우정을 나누고는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여행의 끝에 서울에서 다시 만난 언니는 너무나 정반대로 변해있었다. 함께 했던 순간들이 나의 에너지로 인해 많은 힘이 되었고, 인도여행이 너무나 여유롭고 즐거웠기에 다시 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그렇게 언니는 증권가 속으로 다시 힘차게 뛰어들었고 그로 인해 여행의 의미의 값진 의미를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여행의 시간 속에 나의 몸과 마음을 정비하는 시간이 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마감 없이 그저 몸과 마음이 닿는 대로 보고 듣고 걷다 보면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만나게 된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얼굴이 밝은 이유는 삶의 여유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힘들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 나는 또다시 내면의 나를 만날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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