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쓸모 Oct 22. 2023

12. 끝과 시작

행복을 위한 선택

남편: 아버지가 우리는 명절 전날에 오고, 형네는 당일 오전에 오라고 하셨어. 갈 거지?


나: 안 간다고 했잖아. 여태 날 도리도 안 할 거냐고 같이 오라고 하시더니 왜 이제는 전날 오라고 하시는 거야? 또 부모님이 시간 조율했으니까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거야? 왜 그래야 하는데? 이게 다 무엇 때문인데, 내가 명절에 안 간다고 한 것도 아니고 형님이랑만 안 부딪히게 시간 조율해 달라는 거였는데, 도리 따지면서 안된다고 하셨잖아. 근데 이제 시간 바꿨으니 와라 하면 가야 해? 내가 여태 어떻게 해왔는데! 10년간 어떻게 해왔는데 그거 하나도 안 받아주시고선 도대체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시는 건데!!!!


남편은 명절 전날 아이넷을 데리고 점심에 시댁으로 향했다. 나 혼자 쉬라며. 그동안 너무 수고했다고. 저녁엔 처가에까지 들러 인사드리고 돌아왔다. 고마웠다. 


처음으로 명절 연휴에 오롯이 우리 가족 6명만 함께 한 시간을 보냈다. 10년간 항상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분주했던 명절. 아이들과 안동 하회마을 줄불놀이도 구경 가고, 찜질방도 가고 인생 네 컷도 찍고, 산책도 하고. 더없이 행복한 명절이었다. 




명절이 지나고 2주 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는 잘 받지 않기에 신경 쓰지 않았으나, 30분 후 다시 전화가 울렸다. 느낌이 싸했다. 두 번이나 전화한 거면 잘못 걸린 전화는 아닐 터라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형님이었다. 그날 이후 형님의 번호를 삭제했기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던 것이다. 


미리 연락하면 오지 말라고 할 것 같아서 출발해서 연락했다는 것이다. 카톡을 보냈는데 못 보는 것 같아 재차 전화했다고. 손이 떨렸다. 생각지도 못한 전화였고, 목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너무 당황한 나는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고선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남편은 나가지 말라고 했으나, 여기까지 온 사람을 그냥 가라고 하기도 그렇고, 도대체 두 달이나 지나서 무슨 심경의 변화로 연락을 한 건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리고 나도 할 말은 하고 싶어서 다녀오겠다고 했다. 

사건(?) 두 달 만에 온 형님의 카톡

형님은 그동안 많이 생각했고 시부모님께도 많이 혼났으며 아주버님과도 많이 다투었다고 했다. 자기가 인지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았고, 잘못했다는 걸 알았으니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질투가 났고, 동조해 주지 않는 것 때문에 나를 화나게 하려고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인정한다고. 언니는 왠지 다 들어줄 것 같고,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은 기대를 하게 하는 사람이었다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편하게 막 이야기 한 것 같다며. 그런데 들어주지 않아 서운함이 쌓였던 것 같다고. 막말은 하면 안 됐는데 조절이 안 됐다고. 


나도 두 달여 동안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태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했구나. 나는 왜 그런 인정을 받으려고 했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었구나. 


시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반, 이제 독립적인 인간이 되겠다는 반항 반, 나는 그렇게 성장했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너무 애쓰지 않고, 그렇게 행복하게만 살아야지. 

예쁜 우리 아이들과 웃으며 행복하게. 

화창한 날 화창한 아이들




이전 11화 11. 선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