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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의 사랑

복덩이가 사랑을 전해주는 날

by 연하일휘

조그만 발이 뾰족, 세워지는 뒷모습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웃음꽃을 터트린다. 할아버지의 간식들이 담긴 상자의 위치를 확인한 조카는 꼬물거리며 침대 위로 올라서더니, 상자로 손을 뻗는다. 고구마, 고구마- 제가 좋아하는 간식을 찾고 싶은데, 까치발을 들어도 상자 안이 보이지 않자 시무룩해진다. 함무니이- 삐죽거리는 그 표정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눈동자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KakaoTalk_20250420_231828778.jpg ⓒ 연하일휘



"너무 달아서 많이 먹이면 안 되는데...."


제부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을 대신 꺼낸다. 고구마 맛이 나는 할아버지 간식을 좋아하는 조카는 두 다리를 동동거리며 잔뜩 신이 나고, 할머니는 눈치를 보며 손주 손에 간식을 쥐어준다. 이게 동상이몽이지. 엄마, 애기한테 하나만 까줘- 하나만. 손주에게 하나라도 더 손에 쥐어주고 싶은 어머니는 구석에 두었던 캐리어에 간식을 하나씩 담아준다.


"이거는 엄마꺼. 이거는 아빠꺼. 이거는 할머니 줘야 해?"


커피 캐리어를 손에 쥔 조카는 세상을 다 가진 듯이 소리를 지른다. 슬슬 간식을 더 까달라고 조르기 전에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시간이다. 할머니랑 놀이터 가서 놀까? 그제야 손에 든 간식을 내려놓고 할머니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선다. 오늘은 어머니의 부탁으로 제부가 거실에 홈캠을 설치하러 온 날이다. 조금 더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어머니와 나는 조카를 데리고 놀이터로 향한다.


킥보드를 타고 놀이터를 질주하던 조카를 바라보다 어머니는 놀이터 앞 카페로 시선이 향한다. 아빠한테 커피라도 한 잔 사다 줄까? 장인장모집에 와 고생하는 사위에게도 뭔가를 해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말에 조카가 냉큼 그 말을 따라 한다. 커피? 아빠 커피? 할머니 말을 따라 하며 카페로 함께 향하지만, '외출 중'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다. 결국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마트로 종종걸음을 옮긴다.



KakaoTalk_20250420_231828778_02.jpg ⓒ 연하일휘



과자들이 진열된 매대 한 구석에 아이들의 장난감들이 놓여 있다. 자동차를 발견한 조카의 눈이 반짝거린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 하나를 손에 들고서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몬뜨럭! 몬뜨럭! 아직 '몬스터 트럭'이라는 단어가 잘 되지는 않지만, 이젠 제법 발음들이 정확해졌다. 근데 엄마 저번에도 몬스터 트럭 사줬었어- 아이에게는 '이거 집에 있잖아.'라는 말이 통하지만, 할머니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집에 있으면 뭐 어쩌겠는가, 손주가 좋아하는데 어머니의 귀에 그 말이 들릴 리가 없다.


요즘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조카다. 동생이 태어난 뒤로부터 애정을 잔뜩 뿜어내며 애교를 부리는 녀석에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푹 빠져버렸다. 귀여운 질투의 방식에 어머니는 조카가 어린이집에 갔을 시간에만 몰래 둘째를 보러 가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를 보면 멀리서도 짧은 다리로 도도도 달려가는 그 모습에 어머니의 손주 사랑이 점점 더 깊어진다.


뽀로로 음료수도 하나 손에 쥐고, 양 옆에 할머니와 아빠를 앉힌 조카는 웃음이 사라지질 않는다. 그러다 아버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질 때쯤, 어머니는 재치 있는 말로 조카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제 아빠랑 배 보러 갈까? 할머니의 말 덕분에 조카는 좋아하는 드라이브까지 즐기는 날이 되었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던 중,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아빠가 너희 가자마자 급하게 옷 벗고 화장실 다녀왔어."


여러 차례 뇌졸중이 온 아버지는 언어장애 이후, 좌반신 마비와 인지장애가 찾아왔다. 대소변 실수가 잦아지다 보니, 화장실을 갈 때면 미리 바지를 벗어 버리신다. 인지장애가 왔다 하더라도, 당신 스스로가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선택한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었다. 차마 손주에게 '가'라는 말을 하지 못하던 아버지의 모습에 뒤늦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러 와 잔뜩 기분이 좋은 손주를 보며 아버지는 혼자서 얼마나 끙끙거리셨을까.


조카가 태어난 이후부터, '복덩이'라는 호칭을 자주 사용했다. 아버지가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던 응급실을 가지 않게 되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할 때면, 수치들이 안정적이라는 말과 함께 점차 병원에 가는 주기가 길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이 늘어났다. 아이를 간절히 바랐지만, 몇 년간 소식이 없다 찾아온 조카가 태어나며 나타난 변화들이다. 힘든 일들이 다 지나간 이후에 찾아온 것일까, 혹은 정말 복을 안고 찾아온 복덩이인 것일까.


부족한 이모가 다 하지 못하는 효도를 대신해 주는, 고마운 조카. 조카 덕분에 오늘도 웃음이 가득한 날이다.



KakaoTalk_20250420_231828778_01.jpg ⓒ 연하일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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