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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한 송이일지라도,

by 연하일휘

길을 걷다 장미를 만났다. 몇 걸음 더 이어진 이후, 또 다른 장미들을 마주한다. 언제나 한 두 송이만 피어있던, 그리고 쉽게 져 버리던 장미가 아닌, 담벼락을 수놓는 모습에 발을 멈춘다. 저마다 고개를 치켜들다, 몇몇은 이내 푹 고개를 숙이고 있다. 탐스럽게 피어 있는 꽃송이들에, 그 어느 날 손에 쥐어졌던 한 송이의 장미가 겹쳐진다.


술을 마신, 마시려는 학생들이 한데 모이는 대학로. 어두워진 밤하늘,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여러 매장들 앞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장미가 제 모습을 뽐낸다. 스무 살의 봄은 새로운 하루하루를 마주하며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시기였다. 장미꽃 한 송이가 심어진, 한 손으로도 쥘 수 있는 작은 화분을 선물 받았다.


누구였을까, 긴 시간이 지나며 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이 잊혔다.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친구들의 손에도 쥐어져 있던 화분을 보면 아마 선배들이 어린 후배들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게 두근거리는 마음은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꽃이 좋아. 아니, 꽃 선물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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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말고, 한 송이- 혹은 두세 송이까지만. 큰 부피를 차지하지 않지만 잠시 즐기고 보내줄 수 있는, 짧고 작은 그 만족감이 좋다. 꽃을 좋아했었다. 예쁜 사진을 찍고 눈으로 즐기며, 그 작은 향을 누리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적에는 꽃 선물의 즐거움을 알지 못했다. 말리기도 힘들고, 뒤처리가 귀찮은 꽃을 왜 선물로 주는 것인지- 졸업식 때마다 받은 꽃다발을 보며 불만족을 토로하곤 했었다. 그러다 단 한 송이의 꽃이 주는 만족감 이후부터 조금 더 꽃이 좋아졌다. 풍성하게 한가득 채워진 꽃도 좋지만, 작은 것에서 오는 작은 만족감이 때론 더 크게 다가온다.


작은 의미를 담을 수도, 별다른 의미 없이 건넬 수도 있는 꽃 한 송이.


나는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아무 의미 없던 꽃도, 애정을 담은 꽃도 있었다. 친구의 졸업식을 위해, 장미 잎 하나하나를 만들어 사탕 부케를 만들었을 때처럼- 애정을 듬뿍 담기도, 별다른 친분이 없는 이에게 형식적인 축하를 건네기 위해 구입한 장미꽃처럼-


의미가 없어도 괜찮다. 의미가 담겨있다면 더 좋다. 그저 그 꽃 한 송이에 취하는, 잠시의 만족감은 언제든 찾아오니까. 활짝 핀 장미 대신, 다음에는 오므린 꽃봉오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욕심일까. 꽃 한 송이를 바라보고, 떠올리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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