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가의 체온이 높은 건

뜨거운 사랑이 가득해서

by 연하일휘

팔랑거리는 종이들이 한 두장씩 내려앉다, 쿵 소리를 내며 눈앞을 가로막는 벽이 된다. 긴 시험대비를 시작하며 학습지들이 적당한 속도로 쌓여나가고 있었건만, 예기치 못한 종이 뭉치들이 덮쳐 온다. 이거 시험에 나온대요- 아이들의 말이 덧붙는 학습지들의 양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 덧붙여 시험 며칠 전이 되어서야 시험 범위를 새로이 알려주는 친구들 덕분에 수업 준비를 하다가 결국 책상 위로 널브러지고 말았다.


단단한 책상에 뺨을 대고 멍하니 학습지들을 응시한다. 교과서로만 시험 대비를 한다면 얼마나 편할까. 학교 선생님들이 열정이 반영된 학교 학습지들은 수업 준비부터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새로운 내용이니 만큼, 짧은 시간 내로 아이들의 머릿속에 주입하기 위해서 늘어난 수업 시수는 덤이다. 여느 때보다도 늘어난 수업은 환절기라는 외부적 요인과 맞물리며 목의 통증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것만으로는 그다지 바쁜 일상은 아니다. 이미 익숙한 시험대비와 벼락치기이기에 충분히 게으름을 부리려면, 부릴 수도 있을법한 일정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정말 타이밍이 좋지 않다.


"이모, 저 이번에도 도와주시면 안 돼요?"


고등학생인 조카의 카톡 하나에 흔쾌히 답장을 보내고 할 일들을 추가한다. 준비하고, 수업하고, 복습용 학습지 만들고, 또 복습해 주고. 그런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 '병원'이라는 글자들이 박힌 것이 문제다. 몇 개월 주기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병원 진료 기간이 이번 시험 기간과 딱 맞물리고 말았다. 흉부외과, 내분비과, 신경외과, 정신과, 류머티즘과, 정신의학과. 평균 두 달, 길면 1년을 주기로 다니는 과들의 진료가 하필 2주 사이에 꽉 들이찼다. 진료를 위한 피검사나 기억력 검사, 초음파 검사 등등. 할 일들이 많다. 여기에 공모전이라는 글자 하나도 일정 사이에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paper-1392749_1280.jpg Pixabay


과자 봉투 하나를 열고 오독거리며 글을 읽는다. 8월쯤부터 공모전을 준비하며 퇴고를 반복하던 글들이다. 신기하게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속출한다. 노랗게, 파랗게, 빨갛게. 곳곳에 칠해 둔 흔적들에 고민이 이어진다. 아예 문단의 순서를 바꿔볼까. 이 문장을 아예 다른 방식으로 써보면 괜찮으려나. 이거 말고 다른 단어는 없나. 우득- 생각을 이어나가던 중,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혀 위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조각난 과자의 잔해가 아니다. 조심스럽게 뱉어낸 조각이 하얗다. 불길한 소리가 맞았다. 치아 하나가 깨져버렸다.


이리저리 거울을 보며 살피던 중, 어릴 적 치료했던 치아의 일부분이 깨진 것을 발견했다. 기억상으로는 초등학교 시절에 땜질이라 하며 치료를 받았던 것일 텐데, 얼추 30년은 된 녀석일 테다. 결국 바쁜 일상 속에 나의 치과 진료 하나까지도 더해졌다. 치아 하나만 문제인 줄 알았건만, 아마 비슷한 시기에 치료를 했던 다른 치아도 문제가 발생했다. 바쁨 속에 통증이 더해진다. 치료 중인 쪽으로는 작은 압력만 가해져도 비명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프다. 영수증에 찍히는 숫자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짜증으로 산출된다. 여유가 없어진다. 잔뜩 날이 서 있어, 웃음이 가려진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작은 화면 속에서의 짜증 섞인 울음을 보면서, 웃게 되는 것이 말이다. 욱신거리는 뺨을 부여잡고, 치과로 가던 길 영상 통화 하나가 걸려 왔다. 화면 속에는 울음을 터트리는 조카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이모 이러버려쪄. 이모오."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며 잔뜩 찡그린 조카의 얼굴에 웃음을 터트린다. 뒤늦게 화면 속 이모 얼굴을 확인한 녀석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띤다. 뺨에 얹힌 눈물방울을 그대로 둔 채로 '이모'를 외치며 화답하듯 맑은 웃음을 보여준다. 그래, 이모야. 이모 여기 있어.


바쁘다는 일정 속에 조카를 마지막으로 보러 간 날을 헤아린다. 짧게, 30분도 되지 않는 시간정도로 본 것이 거의 열흘 전이다. 품에 안고 책을 읽어준 날이 기억나질 않는다. 품에 꽉 차게 안아준 것도, 동그란 뺨에 뽀뽀를 해 준 것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 것도 너무 오래되었다. 틈날 때마다 조카를 보러 가던 것도 잊을 정도로 일상 속에 파묻혀 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할 일들을 미루고 조카를 만나러 간다.


동생네 집에 발을 들이자, 조카의 신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달려와서 이모 품에 안기는 녀석을 번쩍 들어 올린 뒤, 보드레한 뺨에 입을 맞춘다. 오랜만에 본 이모가 좋은지 목에 팔을 감싸고선 내려놓지 말라며 어리광을 부리는 녀석이다.


"아꼬미 이모야아! 아꼬미꺼야!"

(*아꼼이 = 조카의 애칭)


자기 이모라며 폭 안기는 녀석이 예쁘다. 그래그래, 네 이모야. 품 안의 온기가 조금은 뜨겁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체온이 높다던데. 신체적인 반응보다도 이 작은 몸 안에 꽉 들어찬 애정의 온도일지도 모르겠다. 바쁘다며 조카에 대한 사랑조차 잊고 있던 이모에게, 잊지 않고 사랑을 건네주는 조카의 따스함은 잠시나마 통증마저 녹여버린다. 동그란 눈동자가 작아지며 찡그린 듯한 웃음이 얼굴에 새겨진다. 조카를 끌어안고 한참을 서로에 대한 애정 표현을 주고받는다.


이모를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듯, 집안에서도 조카는 내 손가락을 꼭 쥔 채 놓아주질 않는다. 화장실에 가려는 이모의 뒤를 졸졸 쫓아오는 통에 생리현상까지 미루며 다시금 작은 몸을 껴안는다. 사랑을 전해주지 못한 날들에 대한 미안함을 주고받는 온기 속에 녹여본다. 따뜻한 체온에 녹아내릴 것 같은 날. 작지만 뜨거운 사랑에 녹아내리는 날.


valentine-candy-626446_1280 (1).jpg Pixaba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색깔을 조립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