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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아침의 누나와 너

춥지 않아도 추운 것 같은

by 연하일휘

작은 공간 안을 메운 따스한 공기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서는 것은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도톰한 이불 안의 열기, 그리고 나와 강아지의 체온으로 데워진 난방텐트의 온기, 이 두 가지를 모두 걷어내야 한다니. 겨울의 아침은 게으름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몸에 붙게 만든다.


누나가 일어난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길게 몸을 늘이며 기지개를 켜는 강아지가 눈에 들어온다.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애교쟁이인 할아버지 아가는 아침잠도 없나 보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얼굴께로 다가와선 누나 뺨에 제 뺨을 부비며 산책을 나가자 애교를 부린다. 하지만 누나가 이불속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을 깨달았는지, 편한 자세로 이불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한다. 잠들기 전, 옷을 잘 입혀줬건만 왜 아침에 일어날 때면 다 벗겨져 있는 걸까. 이불 위를 한 바퀴만 구르면 금세 벗겨질 듯, 아가의 몸에는 옷의 흔적만 걸쳐져 있다.






주말의 아침은 여유롭다.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이불속으로 파고들다 깜빡 잠이 든 사이, 코끝을 간질이는 보드라움에 다시 눈이 떠진다. 내가 잠결에 아가를 껴안은 듯, 어느새 품에 안겨 잠든 아가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온다. 혹여 잠을 깨울까, 숨소리도 죽인 채 아가의 잠든 모습을 응시한다. 저 동그란 뒤통수를 손가락으로 몇 차례 쓰다듬는다면, 뒷다리를 뒤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켜겠지. 색색거리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작은 텐트 안을 메우는 짧은 시간 동안 아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하루의 시작을 연다.





깨우지 않으려 했건만, 꼼지락거리며 핸드폰을 손에 쥐었더니 어느새 일어나 버렸다. 한두 차례 누나의 얼굴을 핥다가 신이 난 듯 이불 위를 폴짝거린다. 누나가 출근을 하지 않는, 여유롭게 산책을 나설 수 있는 시간임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간식을 갈망하던 여느 때와는 달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산책을 가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여유로운 산책을 갈 수 있는 날임은 분명하지만, 누나는 온기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설 용기가 쉽게 나질 않는다.


추운 날씨에 미뤄진 목욕 탓에 덥수룩한 털이 시선에 계속 걸린다. 조금 더 풍성하게 몸을 감싸 안았을 털뭉치가 푹 가라앉아 죄책감이 가슴을 콕콕 찔러댄다. 조금 더 잘 보살펴줘야 하는데. 추위를 핑계로 아가에게 쏟는 정성이 줄어든 요즘이다. 목욕은 미루더라도, 산책은 가야지. 몸을 일으켜 세우니 폴짝이며 좋아하는 아가의 모습이 뭔가 허전하다. 어라, 너 옷 어디 갔니?





이불을 몇 차례 들춰봐도 강아지 옷이 보이질 않는다. 강아지에게 물어보아도. 그래, 답이 돌아올 리가 없지. 텐트 앞에 벗어두었던 얇은 겉옷 하나를 걸치며 밖을 나선다. 생각만큼 춥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춥지 않은 날씨는 아닌 아침이다. 방문 문턱에 강아지 옷이 툭 떨어져 있다. 누나가 잠든 그 짧은 사이에 볼일까지 야무지게 보고 온 듯, 배변패드에는 아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살랑거리며 뒤를 따르는 강아지에게 옷을 입혀주며 몇 차례 쓰다듬어 준다. 요 기특한 것. 때때로 추운 날에는 이불이나 베개에 실수를 하기도 했었는데, 화장실을 잘 사용했다는 기특함이다. 목줄을 꺼내 들고 산책에 나설 준비를 시작하니, 몇 차례 제자리를 빙글 돌면서 현관 앞으로 달려온다. 게으름을 피우며 뒹굴대는 사이, 어느새 햇빛이 세상을 밝히기 시작한 시간. 여유로운 아침을, 강아지와 여유롭게 시작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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