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베푸는 질투인가봐.
빨갛게 익은 딸기에서 풍기는 단내가 차 안을 가득 메운다. 과즙이 터져 나올 듯, 탐스런 딸기 한 팩을 손에 쥔 어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손자가 오물거리며 먹을 장면, 그리고 꼬물거리는 손녀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할머니에게 나타나는 조건 반사다.
"할무니랑 맘마 먹을까?"
집에 들어서자 밥을 안 먹겠다며 떼를 쓰는 조카와 제부가 씨름 중이다. 할머니가 먹여주는 밥을 몇 입 받아먹다가 3분에 1쯤 남겨놓고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딸기 몇 알을 씻어 간식 그릇에 담아주니 기쁨의 탄성을 내지른다. 딸기에 푹 빠진 손자를 바라보다 슬그머니 어머니는 손녀를 보기 위해 방으로 들어선다.
"하무니? 함무니?"
입안에서 오물거리던 딸기를 꿀꺽 삼키더니, 사라진 할머니를 찾는다. 애처롭게 '함무니이' 부르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안고 있던 손녀를 여동생의 품에 안겨준다. 제 앞에 앉은 할머니를 보자, 그제야 다시 딸기 하나를 입안에 물고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후로 조카는 할머니가 제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에도 자기 옆에 꼭 붙어 있으라며 할머니 껌딱지가 된 날이다.
"이거, 아기한테 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지?"
질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색다른 방향이다. 늘 '이모 집착' 혹은 '아빠 집착'만 있던 조카였기에, '할머니 집착'에 어머니는 사르르 녹아내린다. 그래, 할머니는 네가 첫 번째야. 몰래 아기를 한 번 안아보고 온 어머니는 모른 척,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손주 사랑에 흠뻑 빠져든다.
"얘는 사랑받고 자란 게 티가 나."
조카가 웃음을 터트릴 때마다 내뱉는 말이다. 여느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해맑은 그 웃음을 보면 그 안에 가득 채워진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전해진다. 충만한 사랑을 받은 만큼, 그 사랑을 베푼다. 많이 웃어주고, 많이 안아주고, '조아!'라며 애정표현을 잔뜩 건네준다. 그래서 질투의 방향이 다른가 보다. 미워하기보다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더 품으려 하는 모습이 보인다. 동생에 대한 미움보다도, '사랑하니까 내 곁에 있어줘.'라는 말이 들리는 것마냥 잔뜩 애정을 건네준다.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사랑을 베푸는 질투를 하나보다.
옥상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그란 눈물 방울이 뺨에 그대로 맺혀있는 조카가 담요로 둘둘 말아진 채 아빠 품에 안겨 있다. 과자를 가지고 장난만 치기에, 제부가 과자를 뺏어 먹었더니만 서러움이 폭발했단다. 귀여운 울음에 웃음을 터트리며 조카를 대신 품에 안아 든다. 별다른 구경거리도 없는 옥상이건만, 조카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운 듯 반짝이며 이리저리 손으로 가리킨다. 어느새 훌쩍거림이 멎었다.
"감기 들겠다. 이모 빠빠하고 집에 가자."
아빠의 어깨너머로 작은 손을 흔든다. 이제는 이모 집착을 해 주지 않는 조카가 아쉽다. 할머니 더러는 집에 가지 말라면서 대성통곡했다매. 너, 이모가 둘째보다 너를 더 예뻐하는 거 다 알고 있는 거 아냐? 똘똘한 조카는 이모의 사랑을 이미 눈치채버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