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지 않아서, 보잘것없어서 다행이야
집 가까이에 작은 산이 있다. 산이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봉긋 솟아오른 느낌도 없고, 밖에서 보면 펑퍼짐해서 봉우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동산이다. 주변은 수선하고, 들어가는 입구도 분명하지 않지만 일단 들어가면 완전 딴 세상이다. 우리만의 비밀의 문이 열린다.
일단 사람이 없다. 평일에는 말할 것도 없고, 주말에도 아침 일찍 가면 사람이 거의 없다. 이름 있는 산이 아니라서 일부러 찾아오는 등산객이 없고, 대중교통도 주차장도 없어서 접근성도 매우 떨어진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우리 세상이다.
딸이 느끼는 시크릿 가든의 느낌은 여기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 손길이 미치지 않고 멋대로인 작은 카오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인공미는 1도 없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일부러 꽃이나 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어서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은은하게 빛난다. 지금 꽃은 모두 졌지만, 새로 돋아나는 연두색 새잎이 봄 햇살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길이 여러 갈래인 것도 매력이다. 작아도 지루하지 않고 매번 다른 길을 걷는 것 같다. 그 모든 길은 다 연결되어 있고, 혹시나 샛길로 빠져도 인근 동네로 내려올 수 있어서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
엄마, 아빠 신의 계시받는 것 같지 않아?
남편이 딱따구리 소리가 나는 곳을 올려다보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신의 계시를 받은 자가 된다.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자연의 빛과 소리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 조물주의 창조물에 감탄하는 이 시간이 어쩌면 신과 소통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산을 좋아해서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도장 깨듯 순례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유명하지 않아서, 보잘것없어서 명산 리스트는커녕 지도에도 없는 이 산이 딱이다. 이곳이 우리가 쉬어 가고, 호흡을 가다듬고, 안정을 찾는 퀘렌시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