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씁니다 Jun 05. 2021

먹고사니즘

꿀벌의 먹방쇼

뒷집 할머니가 파꽃을 죄다 자르고 계셨다. 비 오기 전에 잘 말려서 씨를 받으시려는 게다. 살아있는 교과서인 할머니를 따라 우리 집 파꽃도 자르려고 가위를 들고 나왔는데, 벌들의 먹고사니즘이 한창이다.


하나의 둥그런 꽃으로 보이는 파꽃 안에는 작은 꽃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벌들이 그 작은 꽃들을 바삐 옮겨 다니며 알뜰히 꿀을 따먹고 있었다. 먹고살겠다고 저렇게 부지런을 떠는데 내가 파 주인이랍시고 야박하게 굴 수 없지. 식사 끝날 때까지 좀 기다려주기로 하고, 파꽃 앞에 쪼그려 앉았다.


https://youtube.com/shorts/YUG2suOURFw?feature=share


파에도 무슨 꿀이 있을까 싶고, 파꿀 맛은 도대체 무슨 맛일까 궁금해진다. 맵싸한 파맛이 나는 꿀이면 대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꿀이 있다면 탐욕의 대가인 우리 인간들이 벌써 상품화하고도 남았을 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누구 먹는  쳐다보는  세상에서 제일 못할 짓이라는데, 아니 요즘엔 먹방이 대세지, 나는 그들의 먹방을 보고 있다. 세상   없는 짓을 해도  들어주는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내가 하고 있는 짓을 소상히 아룄더니  엄마 피셜, 벌들이 파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파꽃에는 꿀샘이 많아서 벌들이 아카시아 꽃보다 파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 파꽃이 벌들의 맛집이구나, 그래서 저렇게 매달려 부지런을 떠는 거구나, 맛있는  좋아하는  너나 나나 마찬가지구나, 갑자기 동질감이 들려던 찰나, 엄마가 갑자기 아카시아를 묻는다.


참 올봄에 아카시아 향기 맡았어?

응? 그러게, 올봄엔 아카시아 향을 제대로 못 맡은 거 같네. 아카시아 꽃도 못 따먹고.


봄이면 아카시아를 잔뜩 따다가 술도 담그고 튀겨도 먹고, 삼겹살에 싸먹기도 했는데 올봄엔 못 했다. 엄마 말이 올봄에 비가 많이 와서 아카시아 꽃이 일찍 다 떨어져서 그렇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그럼 올해 아카시아 꿀은 좀 비싸질 수도 있겠다고 걱정하는 사이...


끝났다. 벌들의 식사가 끝났다. 이젠 내 차례다. 파꽃을 댕강 잘라버렸다. 파꽃이 뚝 떨어졌다. 파꽃을 떠받들고 있던 텅 빈 파 속이 드러났다. 그 안에 혹시 뭐가 있나 해서 들여다 봤다.

파의 깊이는 생각보다 아득하다.


이전 10화 왜 붉다고 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