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먹방쇼
뒷집 할머니가 파꽃을 죄다 자르고 계셨다. 비 오기 전에 잘 말려서 씨를 받으시려는 게다. 살아있는 교과서인 할머니를 따라 우리 집 파꽃도 자르려고 가위를 들고 나왔는데, 벌들의 먹고사니즘이 한창이다.
하나의 둥그런 꽃으로 보이는 파꽃 안에는 작은 꽃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벌들이 그 작은 꽃들을 바삐 옮겨 다니며 알뜰히 꿀을 따먹고 있었다. 먹고살겠다고 저렇게 부지런을 떠는데 내가 파 주인이랍시고 야박하게 굴 수 없지. 식사 끝날 때까지 좀 기다려주기로 하고, 파꽃 앞에 쪼그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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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에도 무슨 꿀이 있을까 싶고, 파꿀 맛은 도대체 무슨 맛일까 궁금해진다. 맵싸한 파맛이 나는 꿀이면 대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꿀이 있다면 탐욕의 대가인 우리 인간들이 벌써 상품화하고도 남았을 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누구 먹는 거 쳐다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못할 짓이라는데, 아니 요즘엔 먹방이 대세지, 나는 그들의 먹방을 보고 있다. 세상 쓸 데 없는 짓을 해도 다 들어주는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내가 하고 있는 짓을 소상히 아룄더니 울 엄마 피셜, 벌들이 파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파꽃에는 꿀샘이 많아서 벌들이 아카시아 꽃보다 파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 파꽃이 벌들의 맛집이구나, 그래서 저렇게 매달려 부지런을 떠는 거구나, 맛있는 거 좋아하는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구나, 갑자기 동질감이 들려던 찰나, 엄마가 갑자기 아카시아를 묻는다.
참 올봄에 아카시아 향기 맡았어?
응? 그러게, 올봄엔 아카시아 향을 제대로 못 맡은 거 같네. 아카시아 꽃도 못 따먹고.
봄이면 아카시아를 잔뜩 따다가 술도 담그고 튀겨도 먹고, 삼겹살에 싸먹기도 했는데 올봄엔 못 했다. 엄마 말이 올봄에 비가 많이 와서 아카시아 꽃이 일찍 다 떨어져서 그렇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그럼 올해 아카시아 꿀은 좀 비싸질 수도 있겠다고 걱정하는 사이...
끝났다. 벌들의 식사가 끝났다. 이젠 내 차례다. 파꽃을 댕강 잘라버렸다. 파꽃이 뚝 떨어졌다. 파꽃을 떠받들고 있던 텅 빈 파 속이 드러났다. 그 안에 혹시 뭐가 있나 해서 들여다 봤다.
파의 깊이는 생각보다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