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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4. 2020

질문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 아니, 어떻게 살고 싶은가?

건축가와의 상견례가 끝나고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안성에 다녀온 다음 날 설계 계약을 했고, 그다음 날 건축가들이 우리 동네로 오셨다. 땅도 보고,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본격적인 설계를 앞두고 1차 인터뷰인 셈이다.


우리 땅을 보고 온 소장님이 땅이 좋다고 하셨다. 뒤로 높지 않은 산이 있고, 앞이 남향으로 트여 있어서 볕도 잘 들고 바람도 잘 들겠다고 하셨다. 좋다니까 좋았다. 하긴, 나빠도 나쁘다고 하겠는가. 인사치레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이왕 벌어진 일이고, 앞으로 살아갈 땅인데 좋다고 믿는 편이 여러모로 현명할 것 같았다.


자, 이제부터 인터뷰할게요.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돌아가면서 말해보세요. 이렇게 정색하고 대화를 시작하면 오히려 말이 잘 안 나오는 법. 밥 먹으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만' 말해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거실'이었다. 우리는 방에서는 정말 잠만 잔다. 나머지 깨어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거실에서 보낸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책을 보고, 공부하고, 피아노 치고, 친구들이 놀러 오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신다. 온 가족이 함께 거실에서 생활하는 거실 생활자이다. 거실이 집이 중심이고, 거실이 넓어야 한다.(편의상 우리 집을 1호, 나머지 두 집을 2, 3호 집이라고 하겠다)


우리 집 거실은 종종, 자주 이렇다


2호 집은 아이 셋을 키우는 다둥이 집이다.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도 한눈에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고 했다. 흥미로운 집은 3호 집이다. 식구는 넷인데, 화장실이 3개여야 한다고 했다. 집 짓는 이유도 화장실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 지금 사는 집에 화장실이 1개밖에 없어서 매일 아침마다 화장실 전쟁이라고 한다. 네 식구가 화장실 가는 시간도 똑같고, 체류시간도 길어서 너무 괴롭다며 기승전 화장실을 강조했다. 화장실을 위한 집이라, 흥미롭고 분명하다.   


나는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 잘 모르겠다.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글쎄, 모르겠다.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큰 불만이 없어서 바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거실 생활자니까 거실은 '좀' 컸으면 좋겠고, 이왕 집을 짓는다면 마당이 '좀' 있으면 좋겠다, 이게 다였다. 다만 지금 사는 집이 너무 넓어서 관리도 청소도 어려우니 크지도 작지도 않고 '좀' 적당한 집을 원했다. '좀'이라니! '좀'이라는 부사는 집을 짓겠다고 하는 사람이 쓰기에는 부적절하고 무책임하다. 가만히 보고 있던 설계팀의 이 소장님이 한 마디 했다.


처음에는 다 괜찮다고 하다가 나중에 발동이 걸리면 곤란해요.
처음부터 쏟아내고 줄여가는 게 훨씬 좋아요."


나 같은 사람에게 한번 호되게 당해보신 경험이 있는 듯했다. 하다못해 옷을 하나 사더라도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이 편한데 하물며 집 짓기는 말해 뭣하나.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소장님이 숙제를 내주셨다. 차분하게 앉아서 글로 써보라고 하셨다. 갑자기 숙제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1. 가족 구성원 소개

2. 어떤 집을 원하는가? (합의된 하나의 의견보다 가족 구성원별 원하는 요소)

3.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4. 싫어하는 것은?

5. 좋아하는 디자인 요소는? (참고할 수 있는 사진 있으면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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