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가여니 Jan 24. 2022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회사로 출퇴근을 하다 휴직에 들어가게 됐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내 우울감이 더 심해질까봐 걱정했다. "집에 하루종일 있으면 우울하잖아. 뭐라도 정기적으로 나갈 수 있는 걸 등록해서 다녀." "베이킹클래스 같은 거 많이 하던데. 오전에 수업 있으면 그거 해도 좋을 것 같아."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몇 개월 지나면 그것도 지겹다? 좀 쉬면 또 나오고 싶을걸."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변의 이런 말들 때문에 나도 오래 쉬면 다시 어디에 소속되고 사람들과 지지고 볶는 걸 그리워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쩌나, 휴직 기간 동안 나는 내가 혼자 집에 있어도 전혀 우울해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오히려 이런 생활이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생활 방식임을 깨달은 계기가 되었던 걸.



  예전에 내가 있었던 부서의 어떤 과장님은 연차를 쓴 날에도 갑자기 당일에 출근을 하곤 하셨는데 그 때마다 "집에 있으면 뭐해, 할 것도 없고. 나와서 앉아있는 게 낫지."라고 하셨다. 이 말은 아직도 나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나는 집에서 너무나도 할 게 많고 심지어 바쁘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보고 싶었던 책을 보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그림 작업을 하고, 중간 중간 멍 때리고 누워 있어도 하루가 후딱 가버리는 것이다. 몸이 찌뿌둥하면 요가를 가고, 집 안에 있는 것이 조금 답답하다 싶으면 밖에 나가 카페를 가면 된다. 아니면 가끔 친구와 약속을 잡아 만나서 수다를 떨면 된다. 나에겐 그걸로도 충분하다. 충분했다. 1년을 그렇게 쉬었어도 지루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혼자 있어도,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도 나는 괜찮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나를 나답게,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내가 집 밖으로 나가는 걸 불편해 하는 다른 이유가 또 있다. 나는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한다. 정말이다. 소위 말해서 '스몰토크'라는 것에는 정말 젬병이다. 만약 사람을 처음 만난다고 하면 '안녕하세요' 뒤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억지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려고 하면 목소리도 이상해지고 이상한 포인트에 웃기도 하고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기도 하고 갑자기 움직임이 어색해진다. 실제로 회사 생활을 할 때에도 말이 정말 없었는데, 어떤 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말이 끊겨서 정적이 되면 나는 그걸 못 참겠던데, 어떻게 그렇게 한 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어? 신기해, 정말." 이 글을 쓰면서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정말 신기하다기보다 나를 저격(?)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기분이 든다. 어쨌든. 여러 명이 있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기술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능력도 부족하다 보니, 어떤 조직에서 친분 관계를 형성하고 매일 매일 같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있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기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그 안에 있는 것이 참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 회사 생활은 말해 뭐하겠는가. 


  얼마 전 지인을 만나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줌으로 하는 거야? 아니면 만나서?"라고 물어보더라.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백 퍼센트 랜선이요. 온라인으로만. 만나서 말하는 거 말구요. 그냥 글로 감상 나누는 거. 저는 무조건 사이버로 해요" 나도 참 지독하다. 이런 나이기에 사회에서 내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나의 최대 과제가 되어버렸다.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서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는가. 누군 조직생활이 좋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살아야 하니 사회적 가면을 쓰는 것일테고, 나도 내 사정이 궁해지면 '혼자가 좋은 건 개뿔, 일단 돈을 벌어야지 먹고 살지' 하고 어떤 일이든 구하려고 아등바등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조금 버틸 만한 에너지가 있으므로 완벽한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갈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보련다. 나 자신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그래서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가장 나답게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내가 주체적으로 내 삶을 설계해나갈 수 있도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