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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Oct 25. 2020

"그건 내 마음이야."라고 말했다.(2)

'내 것'이라는 말에 민감하던 부모와의 전쟁을 되돌아보다

* 이 글에서는 가정 내 언어폭력을 포함한 각종 폭력과 압박, 강요 등에 대한 각종 트리거 주의가 필요한 장면이 있어 유의 부탁드립니다.



애써 독립을 이루고 내 공간이라 믿은 오피스텔 계약이 끝날 무렵까지도 나는 완벽하게 나만의 사이클로 내 생활을 채우지는 못하고 있었다. 부모와 다투면서 부모의 뜻대로 해주고선 불만을 품는 나 자신이 불효 막심한 자식이 된 것 같은 죄책감에 끈적하게 잠겨있었을 뿐이다.


나와 과거가 다를 사람들이 부모에게 여러 물질적, 감정적 호의를 베푸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가 철없게 느껴지고 부모가 싫은 자아와 어른스럽게 굴으라 조언하는 자아의 충돌이 연일 벌어졌다. 

괴로움은 전부 두 자아를 안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내 몫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나의 부모는 노후계획을 실행하는 상태였고 그 계획엔 나의 협조가 필요한 체크리스트도 있었다. 그것이 내 첫 독립공간 계약기간 종료와 맞물리며 엄청난 갈등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너 계약기간 끝나가지? 엄마가 투룸을 좀 알아보고 있는데 네가 남동생을 좀 데리고 살아야겠다. 둘이 같이 살아야 우리도 마음 편하고."

시작점은 이런 말이었다. 

이미 과거에 넌지시 던진 부모의 말에 극구 반대의사를 밝혔던 제안이었다.


"싫어."

"이게? 왜 싫어, 동생하고 살라고 하는데!"


전화로 다투고 연락 없이 주말에 집에 가지도 않고 버티던 즈음으로 기억한다. 너무 괴로워 심리상담도 받고 있었고 '부모와 사이가 나아지려고 노력하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같은 상담 선생님 말에 겨우 위안을 얻고 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가족끼리 어딘가를 가느라 달리는 차 안에 넷이 있었다. 

'왜 싫어? 말해봐, 왜 싫으냐구.'하고 다그치는 부모의 말을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던 차 안에서 듣는다고 누구나 나만큼의 위협을 느낄까. 잘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당시의 나는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 자꾸 속이 울렁거렸다.


물러서자, 물러서자, 차 안에서 맞으면 도망갈 길도 없어. 

이 나이에 차 안에서 얻어맞는 꼴을 겪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까 지금 이 대화는 우선 흘리듯 피하자. 

도망갈 곳이 있는 공간에서 명확하게 나의 의사를 밝히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유를 맛본 나의 자아는, 심리상담을 받으며 스스로의 자유에 대한 확신을 얻은 나의 자아는 계속 입을 열어 말하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결국 울며 도망치자고 애원하던 자아가 져버렸다. 

나는 말을 멈추지 못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싫어. 누구랑 살지, 어떻게 살지는 내가 정해. 내 마음이야. 왜 싫은지 어떻게 설명해? 싫은데?"

"이게 부모가 말하는데 '네 마음'이라고? 그따위로 말하는 버릇은 어디서 배웠어. 그렇게 애같이 말하면서 너까짓게 돈푼이나 좀 번다고 어른이라고 우기는 거야?"

엄마가 매섭게 응대했고 내 마음은 또 찔끔 쪼그라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생판 남과 이 정도의 언쟁이 붙는다고 한들 내가 이렇게까지 심장소리가 귀에 들릴만큼, 손이 얼음처럼 얼어버릴 만큼 긴장할까. 


그렇지만 물러서질 못했다. 이미 터져 나온 마음이라서.


"그래, 그깟 돈 푼, 내가 번 돈이고 내 월급으로 내가 어떻게 살지 정한다는 게 그렇게 언성을 높일 일이야? 자식이 어른이 되었다고 대견하다 인정할 일인데 그게 화가 날 일이냐고."

그 순간 달리던 차가 갓길에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운전석에 앉은 아빠가 돌아보며 외쳤다.

"이 자식이!! 어디서 '내 월급', '내 집' 운운하고 있어! 부모 앞에서!!"

그리고 엄마도 옆에서 소리를 질렀다.

"이거 아직 정신 덜 차렸어. 네 월급? 네 돈이라고? 모가지를 따버릴 년아, 네가 덜 맞아서 네 월급이니 하고 부모 앞에서 못 배워먹은 년처럼 말하는 거지!"


나는 그 순간 감아버리고 싶은 눈에 힘을 주었다.

그래요, 여기서 죽여보아요. 죽여서 저 갓길 옆 풀숲에 내 시체를 던져요. 댁들이 무심결에 그런다고 해도 난 저승에서 놀랍지 않을 거야. 


그러니 우리 여기서 끝장을 냅시다.


"그래, 내 월급. 내 집. 그 단어가 뭐요? 내가 먹고 자는 곳이 내 집이고 가족이 있는 집도 내 집이고, 그 단어에 왜 그렇게 집착하시는 거예요?"

"아니, 그래도 이 놈이? 숙소! 숙소라고! 숙소!!!! 그리고 네 월급이 어딨어! 가족들 앞에서 내 돈, 네 돈 나눠보자는 거야? 이런 천하의 나쁜 놈!!!"


대화 속에서 나는 어떤 과거를 떠올렸다. 쏜살같이 스쳤던 과거의 한 조각이었다.


중학생 무렵 나는 엄마의 삶이 너무 고단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내 우리 밖에 보고 있지 않네, 엄마도 내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을 텐데. 책을 읽으며 나는 엄마가 되어버린 여자들의 울음 섞인 욕망들을 느꼈고 그 주인공들이 엄마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엄마의 생일에 편지를 써서 그 마음을 전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에게 생신을 정말 축하한다고 쓴 후 하단에 '엄마 인생을 즐기세요, 이제 엄마 자신의 인생을 더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괜찮아요.'라고 썼다.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기뻐할지 생각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편지를 읽은 엄마의 눈은 분노로 가득했고 "이게 제 어미를 우습게 보고 있네? 야, 내 삶이 어때서. 너한테 참견하지 말란 말을 이렇게 쓰면 모를 줄 알았어? 이 가증스러운 게 머리를 굴려?"하고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했다. 나는 너무 놀라 숨을 삼켰다. 아빠도 놀라 편지를 낚아채서 읽더니 한참 고민 끝에 내게 말했다.

"엄마한테 죄송하다고 하렴... 어른에게 편지 이렇게 쓰는 것 아니야. 버르장머리 없게."


그리고 또 과거의 한 장면.

그보다 더 어릴 때 무슨 일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엄마 마음만 있어? 내 마음도 있잖아!"하고 나오는 대로 외쳤던 날, 갑자기 주저앉아서 엉엉 울던 엄마의 모습과 내게 또 "잘못했다고 어서 사과드려!" 하던 아빠의 모습.



그 단편들과 멈춘 차 안에서 나를 번갈아 다그치는 부모의 얼굴을 보며 나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 기이한 분노의 원인을 드디어 잡은 탓이었다.


'아, 당신들은 내가 둥지를 뜨면 역할을 잃고 삶이 퇴색할까 두렵구나. 당연하게 걸어야 할 삶의 과정을 미루고 싶어 하는구나. 당신들의 통제가 필요한 자식으로 내가 남아주길 바라는구나.'



그것은 본능이었다. 나는 젊은 시절 갑자기 부모가 되어버려 황망하게 자신의 삶을 시간의 강에 흘려보낸 후 이젠 부모 역할조차 놓고 그냥 노쇠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걸 알아챘다고 몸과 마음의 떨림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굴복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는 생겼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분노한 부모 앞에서 말했다.


"내 월급을 내 월급이라고 하지 뭐라고 해. 내가 살 집에 대해서 동생과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건 왜 안되는지 모르겠어."


결국 분노한 부모가 나를 역과 가까운 도로변에 그냥 내려주고 가족끼리 가려던 목적지로 사라졌을 때 겨우 떨리는 다리를 참지 못하고 근처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조금 울음이 치밀었지만 울지 않았다.


애인이 차로 데리러 올 때까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나는 계속 나 자신에게 말했다.

'잘했어, 틀린 말하지 않았어. 잘했어,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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