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 못 배우고 자랐어. 그래, 내가 미안해."라고 말을 들은 날
내 월급, 내 집.
그 단어를 사용해서 차에서 버려지듯 내린 이후 나는 가족들과 어떤 연락도 이어가지 않았다.
해명도 분노도 사죄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그 관계에 대한 생각에서 한동안 회피했다.
부모가 애초에 없던 사람처럼 머릿속에서 지우자 한결 숨 쉬는 것이 편안해졌다.
상담을 갔을 때 "달리는 차 안에서 그 상황은 너무 폭력적이네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제야 내 손에 축축하던 식은땀의 이유를 알았다. 수없이 맞고 마음이 찢기며 얻은 트라우마가 도망칠 수 없는 공간에서 터져 나온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었다.
고통을 안고 성장했다는 것은 흠이 아니다.
그러나 그 트라우마가 성장해서 내가 또 누군가를 해치고, 그 합리화를 위한 재료로 쓰일까 무척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두기로 했다. 마침 부모도 내게 분노가 컸던지 먼저 연락할 기미가 없었다.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부모가 걸어오는 저녁의 전화, 갑자기 울리는 카톡 알림이 사라지자 살 것 같이 느껴졌다.
차츰 다음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고 살던 집 계약기간에 맞춰 이사도 해야 하는 만큼 꽤 바쁘게 준비했다. 은행도 다녀오고 마음에 드는 집 계약을 하겠다고 말하기 직전.
갑자기 밤에 마음이 수선거렸다.
'부모 없이 네가 혼자서 집을 고르고 이사하고 그러던 중 문제가 생기면 너 혼자 해결할 능력은 되는 거니?'
어김없이 나타난 의심하는 자아였다. 그 마음은 늘 달려가는 내 머리채를 잡아 주저앉혔다. 부모 말이 맞아, 부모가 너를 똑똑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겉껍질이고 너는 뭐 하나 끝까지 완수하지 못한 멍청이잖아. 사실을 직시해. 네가 혼자 뭘 할 수 있는데?
아니라고 부정해봐도 마음속 목소리는 끈질기게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잘 생각해봐. 너희 부모가 너한테 못한 게 뭐야? 너 먹이고 입히는데 든 돈이 얼만지 알아? 네가 고생은 알고 자랐니? 아니지. 다 부모가 번 돈으로 이만큼 컸는데 이렇게 네 멋대로 집 계약해서 이사도 혼자 해버리고 나중에 통보하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그러고도 네가 어른이야? 갈등이 벌어졌다고 이렇게 회피하면서?'
다른 말보다 그 말에 가슴이 쓰렸다.
너 먹이고 입히는데 든 돈이 얼만지 알아? 부모와 갈등 좀 벌어졌다고 이렇게 회피하고 도망치는 네가 어른이야? 부모한테 기회 한 번을 더 못 주고 그냥 남이 되어버릴 정도로 네 삶은 전부 다 떳떳하니?
물론 내 마음에서 제멋대로 만들어진 말이며 옳은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타인에게 하거나 타인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이다. 그냥 그동안 부모 밑에서 자라온 내가 마음속에 찌꺼기처럼 남아 경보를 울리기 위한 목소리였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잠깐 커피 한 잔 하면 어떻겠느냐는 조심스러운 말투의 제안에 나는 회사 근처 카페에서 아빠를 만났다. 전화 한 통 나누지 않은지 2주 정도 지난 뒤였던 것 같다.
아빠는 머뭇거렸다.
다 큰 딸 앞에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 모습 앞에서 나는 먼저 말을 꺼내 주지 않고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나는 원래 아빠와 가장 닮은 자식이었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그렇게 피로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딸 회사 앞으로 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뻔히 알 것 같았다.
"엄마와 화해하면 안 되겠니."
아빠의 용건은 간단했다.
엄마가 자주 집에서 울고 있다. 너를 키우느라 온 생을 다 바친 내 아내가 저렇게 울도록 놔둘 수가 없다. 네가 한 번만 굽혀주면 안 되겠니. 엄마도 많이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 네가 굽혀주면 무척 고마워할 것이다.
나는 그 말들을 끊지 않고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품어왔던, 잘 갈아두었던 칼날을 슥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리듯 딱 잘라 말했다.
"아버지, 나 엄마한테 학대를 당했어. 그리고 아버진 그걸 모르는 척했고."
"너 그런 말 하면 못 쓴다. 엄마가 너를 엄하게 훈육한 건 아빠도 알지만 그래도 너..."
"그건 학대야. 그 말을 부정하면 우리는 어떤 대화도 더 이어갈 수 없어요."
말하면서도 숨이 막혔지만 아빠의 기가 막히다는 침묵 속에 내 목이 바짝바짝 타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해버렸어. 이래도 되는 걸까. 이 자리에서 머리채라도 잡히는 건 아닐까. 손이 달달 떨리는 것 같아서 테이블 아래로 숨기며 눈을 피했다. 나는 담담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가해자 앞에서 내가 피해자라고 선언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자리는 어떤 소득도 없이 결렬되었다.
나는 그 이후 당시 애인이던 지금의 배우자에게 말했다. 오래 생각해서 내린 나의 결심을.
"내가 부모님 만나러 가서 곧 이사를 갈 거고 원하는 대로 살 거라고 다시 제대로 말하려고 해."
애인은 그런 선언은 그냥 전화로 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권했다. 상처 받는 말을 들으면 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만나서 언어폭력이나 신체적 폭력을 겪으면 어떻게 도망칠 수 있겠느냐 우려했다.
그렇지만 아빠가 나를 찾아온 것은 노쇠한 부모로서 내게 처음으로 보여준 백기의 끄트머리였다.
나는 그것을 놓치기 전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만나러 가는 것이 그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했다.두려워서 피해왔지만 나는 두려움 속에 함몰되고 싶지 않았다.
그 결과 본가에서 자리가 마련됐고 그동안 내가 당해왔던 폭력에 대한 기억을 내 입으로 말했다.
몰론 현실 속에서 사이다 서사는 없었다.
엄마는 몇 번이나 폭력, 학대라는 내 말에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는 너는 부모에게 언어폭력을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나는 그런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내 기억을 털어놓는데 집중했다.
"기억 안 나! 내가 널 언제 그렇게 때렸다는 거야?"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안 난다고? 엄마, 그게 기억이 안 난다는 게 난 더 무서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때려놓고 기억이 안 난다고? 얼굴이 퉁퉁 부은 사진을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는데 그걸 기억을 못 한다고?"
몇 번이나 언성이 높아지고 또 몇 번이나 침묵이 흐르면서도 그 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끈질기게 폭력의 기억들을 말했고 부모는 끈질기게 그런 엄한 훈육이 왜 벌어졌는지 항변했다.
그렇게 긴 시간 이어지던 대화 끝에 갑자기 엄마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기억을 되새겨봐도 그 순간 목소리는 낯설다.
울음이 섞인 낯선 여자의 목소리를 한 엄마가 자그맣게 웅얼거렸다.
"나는... 배우질 못했어. 네 외할머니한테 다정한 말 들어본 적 없었고, 내 존재가 내 엄마에게 소중하다고 느껴본 적도 없어. 그냥 시대가 그랬어. 먹고살기 바빴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는데 네가 생겼고, 너로 인해서 다시 사는 것 같다고 느꼈어. 널 잘 키우고 싶었어. 네 외할머니처럼 밥이나 먹이면 다 크는 거라고 생각하긴 싫었어.
그래서, 뭘 몰라서, 어떻게 말에 애정을 담는지 몰라서, 그리고 어떻게 해야 더 멋진 어른으로 키울 수 있을지 몰라서 두려워서 널 그렇게 고통스럽게 했다면.
그래, 내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하다."
작은 목소리였다.
마침내 엄마의 얼굴로 눈물이 흘렀다.
"내가 미안해. 우린 제대로 못 배워서 그래. 넌 네 자식한테 그러지 마. 그리고 마음에 상처 남기지 말고 잊어버려."
엄마는 이렇게 말을 맺고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아빠는 그런 엄마의 어깨를 안았다.
나는 내가 아주 못된 짓을 하고야 만 것인지 승리한 것인지 헷갈린 채로 그 집을 나섰다. 이사를 갈 것이며 동생과 같이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엄마는 그 말에도 별 반대를 하지 않았다.
내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차로 마중 와준 애인에게 물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용서해야 맞는 거지. 근데 복잡하네."
애인은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어떻게 바로 용서를 해. 그냥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지금부터 어떻게 할지 서로 생각해야지."
처음으로 부모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던 밤, 마음은 한결 더 복잡했다.
용서하는 것이 맞는 수순 같은데 그게 가능할지, 얼마나 걸릴지 나조차 장담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런데 그 날 처음으로 내 기억들에 불투명 포장지 같은 것이 덧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아프게 날 것 그대로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단단하게 싸맬 불투명 포장지 한 겹이 그제야 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