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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Oct 18. 2020

"그건 내 마음이야."라고 말했다.(1)

첫 불씨가 타올랐다.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싶었다.

* 이 글에서는 가정 내 언어폭력을 포함한 각종 폭력과 압박, 강요 등에 대한 각종 트리거 주의가 필요한 장면이 있어 유의 부탁드립니다.





독립을 한다고 끝은 아니었다. 부모와 공간 분리를 성숙하게 해냈다는 기쁨에 젖어 행복하게 보낸 주중 이후 다가온 주말에 다시 부모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것이 독립을 전제하는 약속이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약속이라는 말에 복종했다. 

목줄이 벗겨져 신나게 뒷동산으로 달리다 보니 그저 줄이 조금 길어진 것뿐임에도 그 정도 자유에 눈이 멀 정도로 기뻤던 것이다. 숨이 턱에 차도록, 내가 매어있던 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달리며 바람을 만끽하면서.


금요일 저녁에 본가로 가서 금요일 밤을 부모와 보내고, 토요일 밤도 부모와 보내고 일요일 늦은 오후에 다시 나의 자취방으로 돌아온다. 그런 이상한 약속을 지켜가면서 독립이라 믿은 내가 얼마나 눈물겹게 순진한지.


그즈음 늘어난 업무량을 소화하느라 잦은 야근을 하고 녹초가 되어 주중 저녁은 독립생활을 만끽하지도 못하고 책 조금 뒤적이다 잠들기 바빴다. 그리고 금요일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선 멀고도 먼 본가로 향했다. 부모와 얼굴을 마주한 주말을 불편하게 보낸 후 다시 피로한 몸을 이끌고 멀고 먼 자취방으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월요일 출근을 하던 그 생활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다시 지쳐갔다.


"금요일 밤엔 그냥 여기 있다가 토요일 오후쯤에 갈게요."

결국 그렇게 전화로 선언하기 전까지 얼마나 긴 망설임이 있었는지, 떨리는 손을 진정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손목을 얼마나 꼭 잡았던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리허설을 머릿속으로 했던지 다 여기에 기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나는 자주 전화를 하기 전에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것은 오랫동안 복종해온 약자로서의 본능이었다.


"넌 정말 약속을 지킬 줄을 모르는 애구나. 웃기는 소리 말고 오늘 와. 후회하기 전에."

엄마는 이 한 마디만 답변으로 짤막하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날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꾸역꾸역 갔을 것이다. 피로에 절은 몸으로 주말에 불편한 부모와의 회동을 어떻게든 마치고 다시 일요일 오후 나의 안식처로 돌아오는 과정을 버텨가며.


그러다 어느 날 무슨 정신인지 그냥 금요일에 본가에 가지 않았다.

아마도 말을 하자니 두려워서 아예 회피하고 외면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일 가능성이 크다. 전화가 오는 것을 받지 않았다. 혼자 사는 딸이 범죄에 휘말렸을까 걱정을 할 것 같아서 카톡으로 짤막하게 오늘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여기서 자고 토요일인 내일 가겠다고는 했을 것이다. 전화는 받을 자신이 없었다.


- 너 정말 이따위로 부모와의 약속을 우습게 알 거야?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지맘대로 구네?

- 아니, 엄마. 내가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오늘 너무 피곤해서 그래. 벌써 시간이 늦었잖아.

- 네 집에 오는 게 뭐가 피곤해. 집에 와서 쉬란 말이야, 집에 와서!


나는 더 대화를 나눌 자신이 없어 아마 그냥 거기서 말없이 도망쳤다. 

그렇지만 공간이 분리되어 살아보니 그 상황에서 성난 부모의 손찌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이미 큰 이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 갈등상황에서 육체적 아픔을 겪지 않는다는 것에 새삼 놀랐고 새삼 감동했다. 

머리채를 잡히거나 얼굴을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만약 부모가 성이 나서 달려온다고 해도 저 두터운 철문이 막아줄 것이다. 내가 열지 않으면 절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 기분을 처음 느껴본 나는 내가 안전하다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은 더딘 듯 빠르게 흘러갔다. 

부모가 뭐라고 분개하든 나의 생활은 차츰 안정이 되어갔고 나는 부모에게 답하지 않고 내 뜻대로 하는 법을 겨우 익혀나가고 있던 시기였다. 


엄마는 아빠에게 항의했다. 

"것봐, 내가 얘 내보내면 안 된다고 말했지. 저렇게 저 맘대로 굴려고 부득불 집 놔두고 나가겠다는 거라고, 시집도 안 간 계집애가 혼자 사는걸 아비라는 사람이 그러라고 해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나는 그런 말들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 소란 속에 앉아있더라도 내 5평 남짓했던 오피스텔 방이 떠오르면 마음이 잠잠해졌다. 괜찮아, 돌아갈 곳이 있어. 조금만 더 버티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렇게 생각했다.


차츰 나는 본가로 돌아가는 간격을 넓혔다.

매 간격을 넓힐 때마다 재활치료 강도를 높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쓰라리고 아픈 경험들을 마주했다. 욕을 먹거나 회유를 당하거나 생활 전반에 대한 모욕도 들었다. 물론 모두 나의 부모라는 사람들이 한 일이 맞다.


그리고 이렇게 덤덤하게 쓴대도 그때마다 밀려드는 공포를 통제할 수가 없어 애를 먹었다.

당시 애인이던 지금의 내 배우자가 몇 번이나 "뭐가 무서워? 잘 떠올려봐. 지금 무서운 게 뭐야? 부모가 지금 자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데?"라고 물었지만 나는 그 답을 하는데도 긴 시간을 써야 했다. 

식은땀이 퐁퐁 솟았다. 자꾸 속이 메스꺼웠다.


부모의 말을 아주 작은 것이더라도 거역하고 내 뜻대로 할 때마다 나는 공포스러운 환상 속에서 고통스러워했다. 엄마가 쳐들어올 거야, 내 멱살을 잡을 거야, 내 지금의 생활은 엉망진창이 될 거야, 도망치면 회사 앞으로 찾아올 거야, 네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정신병원에라도 감금할지도 몰라, 그도 아니면 방 한 칸에 문고리를 뽑아놓고 나를 감금해둘지도 몰라.


엄마가 자주 '네 멋대로 굴게 그냥 두는 게 부모라고 생각해? 착각하지 마, 내가 반드시 고쳐놓을 수 있어. 방법이 없을 것 같아? 네 부모가 그렇게 우스운 사람들 같아? 누가 널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내 생활을 다 망쳐놓을 것 같았다. 두려워서 소리를 지르고 엉엉 울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슬슬 살던 오피스텔 방의 계약기간이 끝나가서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옮기고자 했을 때 나는 이 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는 큰 사건을 겪게 되었다.


그 때 처음 나는 내 발로 심리상담을 받으러 찾아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부모 앞에 굴복하고 그들 말을 따르겠노라 하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 것 같다고 느낄 때였다. 그렇지만 한번 길게 풀려난 목줄을 다시 짧게 만들어 주인 앞에 복종 의사를 표현하자니 차라리 지금 딱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 상담 자리에서 생전 처음 생판 남에게 이 말을 들었다.

"왜 부모와 관계를 개선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죄책감을 느끼나요? 남에게 그 모든 일들을 당했대도 그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죄책감을 느끼거나 압박을 느꼈을까요? 제게 말씀해주신 상황은 사실상 가정 내 학대로 볼 수 있을 사례들이 꽤 있는데... 학대라고 말하는 게 불편하신 이유가 뭘까요?"


울지는 않았다.

상담을 받으며 울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실마리를 잡은 것처럼 주먹을 꼭 쥐고선 걸어 나온 기억이 난다. 아주 약하지만 작은 실마리를 잡아서 이제 슬슬 꼬인 것들을 풀어나가야만 한다고 겨우 결심을 했던 그 시간 이후 나는 처음으로 부모와 똑바로 마주 보고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선언했었다.



"엄마가 뭐라고 하든 존중해. 그렇지만 그대로 하진 않을 거야. 왜냐하면 이 선택은 내가 결정한 거고 나는 내가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 그리고 옳지 않더라도 상관없어. 내 마음이니까. 이건 내 마음이야."



내 마음이야.

그건 내 결정이고, 내 마음대로 결정한 거야.



처음으로 내 입을 통해 튀어나온 그 말이 소중해서 형체가 있다면 꼭 안아주고 싶었다.

'내 마음'이라고 부모 앞에 튀어 나와버린 그 단어를. 안아 도닥이며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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