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가 그렇게 굴었다면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시선 앞에서
자꾸 글의 서두에 '부모가 나를 학대하려던 의도가 아님을 알고 있다.'라고 쓰고야 마는 것도 어쩌면 나에게 굳어진 습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를 학대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에도 나는 종종 '그렇지만 학대라고 볼 수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대>라는 단어를 사용한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그 단어를 나에게 적용한 것은 경제적 독립까지 한 후 한참 지나서였으니 그전까지는 그 단어를 머릿속에서라도 들먹여본 일이 없었다. 내 삶을 사건으로 만들어야만 성립이 가능한 것 같은 단어였다. 그래서 늘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엄살을 부리는 것이 아닌지, 상황을 과장해서 기억하는 것은 아닌지 다그쳐 물었고 그 검열 속에 나는 그 단어를 하수구로 흘려보내고야 말았다.
그래서인지 따귀를 너무 많이 맞아 다음 날 아침까지 부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로 학교를 가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랬고, 시답잖은 이유로 얻어맞고 부아가 치밀어 학교에 가지도 않고 동네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이나 양껏 읽던 대학 시절에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타인에게 나의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주제로 글을 쓰는 것도 내게는 수치심을 불러들인다.
이것은 내가 통제해야 할 감정이라는 것을 알기에 문장을 계속 두들겨 화면에 내려찍듯 써보지만 마음은 여전히 수런거린다. 불특정 다수에게 내가 겪은 일을 까발리는 것에 가까우니 말이다.
수치심 외에 타인의 시선 역시 내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런 말을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상대는 친구였을 테고 아주 조심스럽게 내 가장 여린 부분을 내어 보였던 나는 후다닥 단단한 껍질을 다시 다물었다. 그 애의 잘못이 아니다. 우린 미숙한 어린아이였고, 그 질문은 비난이나 의심보단 의문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의문조차 화들짝 놀랄 만큼 당시의 나는 내 상황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결국 너스레를 떨며 대충 넘겨버렸을 그 대화.
10대 말의 나는 오락가락하며 내 처지를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어 했다..
아주 절절하게 감상적으로 설명하며 상대에게 내가 당한 그 모든 절망을 공감시키고 싶었지만 오히려 친구를 겁먹게 만드는 결과도 겪었다. 눈빛에 '얘 무섭게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같은 감정이 언뜻 비쳤다가 사라진 순간을 놓치기엔 그 시기 내가 너무 예민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동정받고 싶고, 불쌍해 보이고 싶었다.
내 얼굴이 어젯밤의 폭행을 증빙하고 있었다. 눈꺼풀은 부어올랐고 입술은 깨문 상태로 따귀를 맞은 탓에 찢어져 있었다. 그러니 나는 충분히 불쌍하게 여겨지고 따뜻하게 위로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꿋꿋해 보이고 싶었다. 이따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휘두르던 골프채에 맞더라도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어. 창문을 활짝 열고 뛰어내리겠다고 소리도 질렀어. 나를 엄마 마음대로 조종하려다가 안 되니까 이렇게 매타작을 하는 것을 어떻게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단호하게 끝까지 말을 멈추지 않았어. 나는 저항하고 또 저항했어. 나의 의지가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어느 날 이렇게 꿋꿋한 내 모습을 말하자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동갑내기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굴면 내가 부모라도 때릴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이 널 미워해서 그렇게 대하겠어?
난 네가 너무 과하게 자기주장을 밀고 나가서 부모님이 우려해서 가르치려는 것 같아. 그리고 난 우리 부모님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굴지 않거든. <보통 다들 그렇지 않아?>"
이 들은 지 참 오래된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그 애가 말한 <보통 다들>이라는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지 생각한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얼마나 달아올랐는지 모른다. 그래, 내 친구들이 모두 착해서 내 등어리를 토닥이며 "어쩜 이렇게 맞았어? 너희 부모님 정말 너무하다. 아팠겠다."라고 말해주었지만, 불쌍한 척하는 나를 안아주었지만 사실은 마음속으로 '내가 부모라도 때렸겠다. 그렇게 막되어먹은 소리를 하다니.'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그런 불안에 속이 울렁거렸다.
<보통의 가족>이 어떤 모습인지 나는 잘 몰랐다.
주변 친구들과 친구의 엄마들은 모두 사이가 좋아 보였다. 가끔 "아, 우리 엄마 너무 짜증 나."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일상적인 투닥거림에 가까웠다. 누구에게나 공감받을 수 있는 정도의 짜증과 엄마의 훈계, 잔소리에 대한 이야기들.
나는 다른 집 부모들도 우리 부모처럼 구는데 내 친구들은 그 상황을 일상적인 잔소리로 치부하고 나는 정신적 학대라고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에 빠졌다. 사실 우리 부모나 다른 집 부모나 똑같은데 우리 부모만 내게 터무니없는 모욕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지. 내가 과대망상을 하는 건 아닐지.
부모는 내 침대가 놓인 내 방을 마련해주었다. 엄마는 계절에 맞는 이불을 준비해주었고 저녁을 차려주거나 공부를 하고 있으면 간식을 가져다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곡 CD를 사 와 일부러 거실에 틀어놓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여기 누워서 눈 감고 들어 보라고 권했다.
이런 일상을 돌아보면 내 부모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잘못은 나에게 있는 것인가. 내가 모욕을 해서, 내가 자식으로서 선을 넘어서, 내가 전부 동기유발을 해놓고는 훈육조차 받고 싶지 않다고 우기고 있는 꼴은 아닐지. 자식으로서 받아먹을 몫은 다 받아먹고 기본적 존경조차 해주지 않고 있던 건 아닐까.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기다 못해 침몰하기 직전이었다.
스물을 갓 넘긴 때 저 <보통 다들>이 되어보기 위해, 화가 치밀어 오르는 말을 들어도 이 막 물고 참아보려고 노력했다. 부모는 네 표정에서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이 다 보인다고 조롱했고, 그 또한 사회생활을 위한 훈련을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다.
얻어맞더라도 남들에게 말할 건 못 된다고 생각했다. 아주 친한 친구들 몇에게만 되도록 정제해서 상황 정도만 털어놓으며 약간의 숨 쉴 공간을 마련했지만 그 또한 자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말하지 않고 꾹 눌러 참는 것이 완벽하게 되었던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엇이든 말하고 나면 내 마음속은 수치심으로 가득 찼다. 또 저지르고 말았다, 또 남에게 평범하지 않은 소리를 해버리고 말았어,
그렇게 스스로 엄격하게 몰아붙이며 반성했다.
과거의 내가 이렇게 수치심에 빠져 주변에 도움을 청할 줄 몰랐지만, 지금은 그것이 완벽하게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쓸 순 없다, 그것은 나에 대한 날조가 될 테니까.
다만, 30대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덜 순수하고 더 비열하다.
그래서 내가 다치는 것보다 내 부모의 이미지가 다치는 쪽을 선택할 줄 알게 되었다. 여전히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에 미숙하고, 누군가 갑자기 깊은 사정을 물어오면 회피하는 습성이 강하지만 내가 나를 지키기로 마음먹은 뒤론 <보통 다들>이라는 말의 함정에 휘청이는 횟수는 줄어가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인데.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까 너처럼 내 딸이 말했다고 생각하니까 울화통이 터지고.
넌 아직도 철이 덜 들었구나, 애를 안 낳아서 그런 것 같아.
근데 정말 네가 뭔가 단단히 잘못했구나 생각은 했었어 그때, 아님 어떻게 엄마가 그렇게 때리겠어.
이런 말에도 이젠 마음이 조금 더 수월하게 넘어간다.
그 말에 넘어지기엔 너무 오래 수치심을 어루만지며 걸어왔다. 그래서 겨우 30대인데 가끔은 벌써 그 곱절은 산 것 같은 피로감이 느껴지곤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모에게 목줄로 매어 평생 그 집 앞마당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순 없어서 얻어맞으며 걷고 걸어서 여기까지 와있다.
피로하고 안정적인 지금의 내가.
수치심이 느껴진대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가정폭력의 생존자다.
부모가 먹여주고 길러주고 돈도 다 대줬는데,라고 어딘가에 사는 당신이 내게 말해도 소용없다.
그 정도로 뭘, 그래도 부모인데 학대라니, 엄격하게 훈육한 걸로 엄살이 심하네,라고 당신이 말해도 소용없다.
그런 말을 들어도 과거의 결을 따라 이 글을 쓰며 내 마음이 말해주는 것을 이기진 못한다.
나는 정신적, 육체적 폭력으로 인한 부모의 학대에서 생존해서 어른이 된 사람이다.
그 폭력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두둔은 당신들도 나도 할 수 없는 범위에 있다.
왜냐하면 긴 시간 동안 당신들보다 몇 백배, 몇 천배는 내가 더 우리 부모를 두둔하며 변호해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인 부모를. 그럼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대체 내게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렇기에 나는 단정적으로 내가 학대에서 생존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다들>이야 어떠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