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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Sep 06. 2020

왜 부모에게서 도망치지 못했는가

부당함을 알면서도 도망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변명

* 이 글에서는 가정 내 언어폭력을 포함한 각종 폭력과 압박, 강요 등에 대한 각종 트리거 주의가 필요한 장면이 있어 유의 부탁드립니다.



10대의 막바지, 나를 관통하던 감정은 단 하나였다.

분노. 나를 다 삼켜 말끔하게 태워버릴 만큼 큰 불길 같은 분노.


그즈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물론 12시간 이상을 학교에서 보내는만큼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주말에는 몰입해서 그림 하나를 완성하거나 단편 소설을 써보면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았다. 내 손을 통해 무언가 창조되는 경험은 자꾸 차오르는 역함을 잊게 만들었다. 죽고 싶다거나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잊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방문을 닫고 있으면 언짢아했다.

문을 등지고 책상에 앉은 내 곁으로 소리 없이 유령처럼 다가와 과일 접시를 내밀면서 엄마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주말인데 공부하니?"하고 물었다.

그러나 내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는 사실을 곧 깨달으면 혀를 차며 한 마디 했다.


"그것도 그림(글)이라고! 쓸데없는 짓 하고 있네."


나는 그런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을 만큼 요령이 생겼지만 꿈틀거리는 감정까지 완벽하게 다스릴 수 없었다.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어닥치는 분노였다. 밀물과 썰물을 막을 수 없듯 마음이 온통 분노로 덮여 넘실거렸다. 다만 어디에나 널려있어 오히려 눈에 띄지 않듯 케케묵은 감정이라 표현되지 않을 뿐.


그 무렵 내 부모는 내가 천재였다는 오해를 지속하기 위해 단단한 합리화로 중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들은 그들의 안락한 기대가 무너지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1. 우리 딸은 외고 입시에 실패했지만, 그것은 우리(=부모)가 딸에게 너무 빨리 자율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2. 우리 딸은 감성적이지 않고 고지식한 아이이기 때문에 공부 외에 직업을 찾게 해 줄 방도가 없다.

3. 지금 저렇게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것은 친구들의 영향이다. (우리 딸은 남에게 잘 휩쓸리니까.)

4. 지금 더 강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대학 입시도 외고처럼 실패하고 우리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5. 딸과의 좋은 관계는 딸의 성공 가도를 닦아준 후 나중에 쟤가 철이 들으면 자연스럽게 될 일이다.


저런 합리화를 통해 내 부모는 더 철저하게 나를 관리하기로 마음먹은 듯 보였다. 


더 자주 내 방을 뒤엎어가며 금지 도서라도 색출하듯 그림을 그려놓은 연습장이나 소설을 쓴 노트, 소설책과 만화 같은 것을 찢어서 버리는 의식을 했다. 방문을 잠그고 등교해도 집에 돌아와 보면 꼭 무언가 내 눈엔 희미하게 달라져있었다. 서랍을 열거나 책장을 잘 살펴보면 부모가 보기에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것들이 사라져 있었다. 산책을 간다고 나가 분리수거하는 곳에서 내가 아주 많이 아끼는 구하기 어려운 만화책을 발견한 일도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것을 다시 주워다가 책장에 꽂았다. 엄마가 또 버리면 다시 주워오며 나름의 저항을 이어갔지만 그것은 파리 날갯짓만큼 미세한 반항이었다. 


일기장을 아무리 숨기고 잠가도 부모가 읽는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이 있었다.

나는 일기장을 두 권을 만들어 하나는 학교에 가지고 다니며 내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고 다른 일기장은 일부러 책상 책꽂이에 보란 듯이 놓았다. 


그 일기장 대부분의 장엔 두꺼운 빨간색 사인펜으로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썼다.

[죽어버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당신들도 나도 다 같이 뒤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칼로 찌르고 불로 다 태워버릴 거야. 제발 날 좀 놔줘, 못 놓을 것 같으면 둘이 손 잡고 죽어버려. 죽어버리라고 제발.]


분명 그 글을 봤을 텐데 엄마도 아빠도 별 말은 없었다.

독한 양반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즈음 역함과 분노만 가득했다. 


맞고 잘못했다고 빌거나 엉엉 울던 중학생 때와 달리 고등학교 시절엔 맞으면 악다구니를 쓰거나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세게 깨물거나, 부모가 나를 식탁에 앉혀 몇 시간을 고문과 같은 질의응답을 이어가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속 터지게 만들기도 했다.


"이게? 잘못했다고 당장 말하지 못해?"

'내가 뭘 잘못했는데.'

"더 맞아야 정신 차릴래? 빨리 입 안 열어? 어어? 버텨보겠다 이거야?"

'그래, 그냥 평소처럼 시원하게 두들겨 패고 끝내. 나랑 대화 같은 거 해보자고 웃기지도 않는 짓 하지 말자고.'

머릿속으로만 답하다가 답답함에 분노가 터진 부모가 나를 붙들고 두들겨 패기 시작하면 울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구구단을 외우거나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외웠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아픈 것도 조금 참을만했다. 


그러나 눈물을 보이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 시기엔 그것이 가장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이불속에서 참았던 울음과 비명, 고통에 찬 욕설을 소리 지를지언정 나를 매질하는 부모 앞에선 절대 울지 않으리라. 아무리 나를 상처 주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이 내 자존심을 깎아내려 마음속에 핏물이 줄줄 흘러도 울지 않으리라. 울면 안 된다. 내가 울면 이들에게 만족감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매질은 더 이상 훈육이 아닌 실제적인 고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한 톨의 만족감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말대꾸를 하고 울지 않고 차라리 웃었다. 


어느 날 따귀를 너무 많이 맞아 귓속이 윙윙 진공상태처럼 된 채로 엄마가 골프채를 드는 걸 본 순간 거실 창문으로 내달렸다. 창문을 활짝 열자 바람이 휘잉 불며 찬 공기가 피부에만 달라붙었다. 무섭지만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유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뛰어내려, 그럼 이 모든 게 끝이야.


나는 외쳤다. 귓속이 멍해서 얼마나 큰 소리로 외쳤는지 몰라도 한 발만 더 가까이 오면 뛰어내리겠다고, 내가 죽고 박살난 내 시체를 책상 앞에 앉혀놓고 원하시는 딸로 만들어보지 그러냐고 소리를 질러댔던 것 같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의 눈에서 당혹스러운 빛이 서리는 걸 보았다.


이겼어.

이겼다.

그 순간 그 생각을 했다. 이겼구나. 내가 엄마를 놀라게 했어. 엄마 다리가 힘이 풀려가는 게 보이는구나. 

내가 이겼어. 


그리고 놀란 상태와 분노가 뒤섞여 파들파들 떠는 엄마를 남겨두고 방으로 돌아와서 생각했다.

'이길 수 있어. 조금만 더 참으면 나는 성인이 될 거야.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저들은 노인이 되어 갈 테니까. 이길 수 있어.'


그 날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시간은 내 편이다. 시간은 내 편이다. 시간은 내 편이다. 참아내면 시간은 내 편이다.]


엄마가 그 날 놀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잠깐의 승리에 도취하기엔 내 부모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수성가하여 중산층 윗단까지 기어올라온 본인들의 삶에서 얻은 강인한 정신력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못 말릴 목표가 있었다. 바로 자신들의 딸이 '정상 궤도'로 돌아와 자랑스러운 어른으로 성장해 우리 가족이 대대손손 화목하게 부흥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을 위해선 약간의 갈등은 사춘기 시절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니 고쳐줘 가며 감수하면 되는 것이라 믿고 있는 듯했다.


"쟤 친구들 하나같이 문제 있어."

그렇게 습관처럼 말한 엄마는 내 학교에 자주 드나들며 학부모회에 들었다. 모든 소식에 귀 기울이고 내 친구들에 대한 나쁜 평판을 그 학부모들과 공유했다. 교사들에게 나를 감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그야말로 나에 대한 통제권을 손아귀에 쥐고 흔든 것이다.

저항하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을 만큼 끈끈한 덫에 걸린 기분이었지만 나는 자주 일기장에 그 문장을 썼다.

[시간은 내 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당연히 도망치는 것을 생각했다. 

부모에게 두들겨 맞으며 정신 개조를 당하다 보면 자꾸 현관문이 보였다. 저 문만 박차고 나가면 맞을 일도 없고 언어 폭행도 당할 필요 없고 친구들 사이에서 "너희 엄마 대단하더라.." 하는 빈정거림도 들을 일이 없을테니.


그러나 나에게는 근본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뛰쳐나갔다가 얻어맞더라도 안전하고 따뜻한 내 방이 있었는데, 배 곪지 않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밥을 먹고살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후회하게 되면 어쩌지. 결국 고개를 푹 수그리고 부모에게 내 목줄을 자진해서 내밀며 "다시 먹여주고 재워주세요." 하게 되면 어쩌지.


아직 나는 뛰쳐나가서 사회 속에서 혼자 무언가를 일궈낼 힘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가진 게 뭐가 있지. 

종이에 끄적이며 생각했다. 집을 얻을 수 있나,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나, 먹을 것을 구할 능력이 있을까, 안전을 지킬 힘이 있나(나는 미성년자 여성인데!). 결국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인 것을 글로 쓸수록 확인했다.


결국 나는 그 때 집에서 뛰쳐나가지 못했다.

그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하더라도 나는 자기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몸과 정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부모에게서 벗어나면 한결 더 위험한 밤의 거리를 맨 몸으로 마주하게 된다는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복수가 될 거야. 조금만 더 기다리면 완성될 복수야. 시간은 내 편이야.]

이상하게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분노를 태워가며 복수의 계획을 짰다.

내 부모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이 가장 고통을 느끼는 순간은 기대했던 일이 거의 다 이루어진 것 같은 순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내 부모가 나를 필요 이상으로 이성적으로 키운 덕이었으니 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래, 고통스럽더라도 곁에서 내 인생을 독립이 쉬운 루트로 만들어가자.

어차피 꿈같은 것 가질 줄 모르는 사람으로 키워져서 다행이다. 열망하는 것도 없고 너무 하고 싶은 일이 가지지 못하도록 키워져서 다행이다. 큰 길을 빠져나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옆에서 원하는 딸로 크는 척을 하며 부모의 자원을 야금야금 삼키며 어른이 되자. 


그렇게 어른이 되어 비로소 집에서 탈출하고 안정적으로 삶을 꾸릴 수 있을 때, 꼭 저들에게 말하고야 말 테다.


"사랑하지 않은지 오래됐어. 당신들이 원한 가족의 모양도 꿈도 다 망가졌어. 당신들은 후회하면서 죽을 거야."


나는 그 집에서 살아남아 어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국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엔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부모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데엔 성공했다.


"이제 철 좀 들고 우리에게 진심을 다해 애정을 가지고 대할 줄 알아야지, 딸내미가 되어선 어째 그러니!"

"난 못해. 그런 거 못 배우고 컸잖아."

"......."


부모의 침묵 속에 나는 나의 승리를 느낀다.

것봐, 시간은 내 편이잖아.


그러나 이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복수 이후에도 남아 생존자인 나를 괴롭히는 상처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은 소설이 아니라서 복수가 끝났다고 The end, 가 뜨며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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