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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Aug 30. 2020

엄마가 말했다. 다 네 잘못이라고.

나 자신을 신뢰할 능력을 상실하고 메말라가던 그 날들.

* 이 글에서는 가정 내 언어폭력을 포함한 각종 폭력과 압박, 강요 등에 대한 각종 트리거 주의가 필요한 장면이 있어 유의 부탁드립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엔 친구들과의 관계가 조금 더 중요해졌다.

특히 동성의 친구들과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관심사 공유 같은 복잡한 과정을 수행해야 했고,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 그 속에 녹아들고자 했다.


나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 아이돌 얼굴 외우는 것이 영 어려워도 음악 방송을 보며 화제를 따라가려고 노력했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책 이야기는 꺼내지 않게 되었다. 만화책을 좋아한다거나 쿨하지 못한 이야기는 말하면 안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감추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 남들이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했다.


화장 같은 덴 관심 없어. 그래도 용돈 모아 백화점 브랜드의 립글로스를 모은 친구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남자 친구 같은 거 가지고 싶지도 않아. 그래도 다른 중학교 남자애들과 만나 놀자는 말엔 같이 따라나갔다. 주변 친구들이 "쟤가 너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라는 말에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던 남자애와 사귀었다가 일주일 만에 미안한데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바보 같은 행동도 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헤어졌다고? 어떡해."하고 날 끌어안고 우는 소리를 해주면 무리 안에 잘 스며든 것 같다고 만족도 했다.


왜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면서 사람들 안에 스며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관계가 진심으로 친구라고 믿었던 걸까.


사실 나는 그 시기 처음으로 마주한 또래이자 생판 타인인 그들을 한순간도 믿지 못했던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중 누구도 나의 진짜 모습을 좋아해 줄 리가 없다고. 내가 말을 잘 듣고 착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친구라는 범주 안에 넣어준 것뿐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마음을 그 당시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눈치챈 것은 지금까지 친구들을 통틀어 단 한 명이었는데, 대학교 신입생 시절 만난 그 친구는 어느 날 저녁 도서관 앞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다가 말했다.


"네가 자꾸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왜 이상한지 깨달았어. 너는 하나도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웃어. 그냥 웃어야 할 타이밍에 웃는 애구나, 이 자리가 하나도 재미가 없나 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왜 그러는 거야?"

"아니야. 내가 조금 표현이 강하지 못해서 그렇게 느끼나 보네."

즉각적인 부정에 그 친구는 물끄러미 보다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내 생각에 네가 그런 건 다 너희 부모님 영향인 것 같아. 네가 주변 눈치 너무 보는 거."



그렇구나.

알 수 없던 그 기시감, 무수한 불편함,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던 상황들.


주변을 안 믿는 것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안 믿기 때문에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고 늘 생각했던 것이라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구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행동이나 반응만 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자리에서 가치가 없어질 것이라고 늘 생각했구나. 그런 깨달음이 몰려오자 그 날 정말로 슬펐다.



다 네 잘못이야. 아니지, 내가 널 잘못 키운 거겠지.

그러고보니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시험을 보고 시험지에 채점했던 점수는 95점이었던 어느 과목이 OMR카드의 주관식은 쓰지 않고 제출한 실수 탓에 60점인지 70점이 나온 걸 교무실에서 듣고 집으로 걷던 길이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엄마가 나를 죽일지도 몰라. 저번 중간고사도 점수가 시험지에서 쓴 답과 OMR카드에 체크한 것이 다른 실수 때문에 더 나쁘게 나왔을 때 얼마나 많이 얻어맞고 혼났는데. 이번엔 주관식을 통째로 못 썼다고 하면 그 말을 믿어줄까? 그런 생각을 하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스스로에게 환멸도 느꼈다. 그 과목 공부 열심히 했는데, 점수가 잘 나와서 정말 기뻤는데. 바보같이 그걸 확인 안 해서 실제 점수를 그렇게 받다니. 엄마 말대로 난 어딘가 모자란가 봐.


같은 동네를 살던 친구의 위로를 받으며 집 앞까지 갔을 때 그 친구의 엄마를 마주쳤다. 울고 있는 내 모습에 놀란 그분은 친구의 설명을 듣고선 나를 끌어당겨 꼭 안았다.

"어이구, 아직 애기인데.. 속상하고 놀랐겠구나. 괜찮아. 그건 실수고 진짜 실력은 95점인 거잖니. 다음부터 더 조심하게 될 테니까 괜찮아."

어른이 해주는 그 말에 엉엉 한바탕 울음을 쏟은 것은 사실 정말 듣고 싶던 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들어갈 용기도 생겼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애들과 달라서 저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같은 어른인 엄마도 저렇게 생각해줄지도 몰라.


결론적으로 집으로 울면서 들어가 그 사실을 털어놓은 나에게 내 엄마가 처음으로 한 말은 이랬다.

"뭐야? 뭐 이런 칠푼이 같은 게 다 있어? 그래서 지금 너 점수가 낮아졌다는 거야? 이리 와서 앉아봐. 당장."


너 왜 거짓말해.

거짓말 아니야.

그 말에 갑자기 따귀를 한 대.

왜 95점이라고 거짓말했냐고.

거짓말 진짜 아니에요.

그 말에 또 다른 쪽 뺨에 따귀를 또 한 대.


이 머저리 같은 게! 그럼 정말 OMR카드에 답을 한 개도 안 쓰고 냈다는 말이야? 이거 아주 정신 빼놓고 사는 년 아니야!! 그따위 실수로 점수를 30점을 깎아먹어?

그리고 여러 대의 따귀, 앞이 핑 돌도록.


마지막으로 분이 덜 풀려 내 머리카락을 붙잡고 머리를 마구 흔든 후 확 놓은 엄마는 가쁜 호흡으로 말했다.


"내가 이런 멍청한 년을 키운다고 내 엄마 병실에서 오늘내일하는 거 간병도 제대로 못했어. 내 엄마 돌아가시는데 너 따위를 자식새끼라고 키운다고! 내가 엄마 돌아가시는 날까지 제대로 신경도 못 써드리고!!"

"잘못했어요."

"그래, 다 네 잘못이야. 너는 이렇게 덜떨어진 년이니까 어디 가서도 조심해서 살아. 지금은 잔머리 좀 굴려서 그거 감추고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남들이 다 알 수밖에 없어. 엄마인 내가 말하는 거니까 새겨들어. 어디 가서 잘난 척하지 말고 멍청한 네 모습 드러나지 않게 조심해서 사는 게 좋을 거다."

"네."


엄마는 두통이 시작된 듯 머리를 부여잡고 말했다.


"아, 아니다. 너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지가 잘못 키워놓고.. 그렇게 생각할게 뻔해. 그래. 맞다, 얘. 내가 잘못 키웠어. 어릴 땐 똑똑해서 뭐라도 될 줄 알았더니, 내가 이렇게 멍청하게 키웠구나. 끝까지 네 목줄을 놔주면 안 됐는데 이제 중학생도 됐으니 알아서 하겠거니 좀 풀어준 내 죄가 크다."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늘 그 지점부턴 말할 의욕을 잃었다. 더 맞고 싶지도 않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판결을 내리듯 쾅쾅 울리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넌 앞으로 긴장 안 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그리고 다시 내가 관리를 좀 해야겠으니까 그런 줄 알아. 좀 컸다고 시간 단위로 관리 안 했더니 이게 빠져가지고 요즘 정신을 못 차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데 엄마가 내게만 노력을 기울였지만 내가 그 기대에 보답하지 못한 것은 너무 큰 잘못이라고. 그리고 엄마가 내 말을 거짓말이라고 느낄 정도로 실수를 자주 한 멍청한 내가 잘못한 거라고.


그러고도 엄마가 나를 안아주고 달래줄 거라고 생각한 것도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원래 사람은 잘못을 하면 혼나야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관리를 받는 것이 맞고, 그런 귀찮은 일을 해주는 사람은 엄마 아빠밖에 없다는 부모의 사상에 나는 이미 깊게 세뇌당한 상태였다.


그 시기 늘 두려움에 떨었다.

내 앞에 있는 이 친구가 사실은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불안에 떨고 더불어 이 친구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하면 모두가 나를 외면할 것이라는 압박에 더 힘내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어느 날은 또 이렇게 말했다.

"넌 줏대라곤 없니. 친구들이 하자면 다 하는 거야? 난 네 나이 때 그렇게 끌려다니진 않았는데. 으그, 답답해."




엄마, 아빠, 그러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사랑을 받을 수 있어요?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부모에게 끝내 얻지 못한 채 어른이 되자, 내 삶은 자주 꼬였다가 제 자리를 가까스로 찾았다. 나는 발버둥 쳐가며 스스로 해답을 찾고자 했지만 사실 아직도 타인을 앞에 두면 자주 헛다리를 짚는다. 사랑받고 싶어서 노력하고 그 노력이 잘못되었다는 걸 시행착오로 깨닫고.


그러니 아직도 해답을 완벽하게 찾지는 못 한 것 같다. 이만큼 살고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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