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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를 먹다 울어버렸다.

딸바보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서


어느 날 남편이 견과류가 몸에 좋다고 사다 주었다.

먹기 좋게 담긴 견과류를 보며

'요즘은  견과류 참 먹기 편하게 나온다.'

라는 생각이 들 때 문득 다양한 종류가 섞인 견과류 중에 호두가 눈에 들어왔다.


호두를 한알을 입에 넣어 오물거리다 보니 어느새 내 두 눈에서는 눈물이 후드득 떨어져 버렸다.

아련하면서 또렷한 어린날의 기억 때문에.


나의 아버지는 호두를 좋아하셨다.

시장에 다녀오신 날에는 아버지 손에 검은 봉지가 들려있었다. 그 봉지 안엔 단단하고 울퉁불퉁껍질에 쌓인 호두가 담겨 있었다.

신문지를 깔고 망치로 톡톡 깨면 그 안엔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호두 알맹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미소 지으시며, 굵은 손가락으로  크고 예쁜 모양의 호두만을 골라 내 입으로 쏙쏙 넣어주셨다. 아직도 호두의 고소하고 약간은 달달한 맛과 아버지의 미소  얼굴이 함께 기억이 나곤 한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아니 어딘가에는 존재하실 것 만 같은 나의 아버지가 떠올라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는 나를 참 많이 사랑해주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사랑했고, 많이 따랐다. 자상했던 아버지는 나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주셨다.


아버지랑 두 손잡고 갔던 테니스장.

테니스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나에게 테니스를 가르쳐주시곤 했다. 돌아가는 길엔 언제나 바나나우유를 하나 사주셨는데 운동 후 마시는 그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여름이면 아버지 고향으로 내려가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고, 할머니께서 끓어주신 다슬기 국에서 다슬기를 골라먹으며 시골의 경치를 감상했더랬다. 눈앞에는 초록초록 할머니께서 심으신 고추며, 토마토, 상추가 보였고, 귓가에는 여름날을 알리는 매미소리가 들려왔다.


겨울이면 늘 가족과 온천에 함께 갔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기분. 마치 신선이 된 것 같은 그 느낌을 좋아했다.


가족과 함께했던, 특히 자상했던 아버지와 함께 했던 행복했던 추억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는 책상 서랍에 잘 모아둔 아버지가 주신 편지를 꺼내어 읽어본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의 온기가 편지가 담긴 그곳엔 사랑으로 남아있다.


나도 어느새 시간이 지나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호두 중에서 가장 예쁜 것을 내 아이 입에 넣어주고, 딸기도 빨갛고 예쁜 것만 입에 넣어주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남편의 얼굴에서 내 아버지의 얼굴이 보인다. 아이를 낳아보니 아이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큰 행복을 준다는 걸 이젠 안다.


'내 아버지도 이 마음 이셨을까? '

내 자식에게는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마음을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알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

사랑을 주어 기쁜 사람과 사랑을 받아 행복한 사람의 관계.

그 무한한 사랑을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내가 자라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내 보물 같은 아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부모가 되어보니 알게 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따뜻했던 그 사랑의 온기가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지금.

아이가 보지 않는 틈을 타 호두를 먹다 울어버렸다.


그러다 문득 내 안의 나를 보았다.

그러자 내 안의 네 살짜리 아이가 호두를 오물거리며  아버지를 바라보며 마냥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기억 속 아버지는 내 입속에 호두를 넣어주며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예쁜 딸. 사랑해."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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