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빠 우리 서로 유언 말하기 해볼래요?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우린 서로의 유언을 말했다.


오늘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버지와 유언을 말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깨끗이 닦아드리고, 다 드신 식사 치워드렸다. 물을 준비해드리던 나에게 잠시 자리에 앉아보라고 하시던 아버지.

앉아서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잘생기시고, 다정했던 나의 아버지.
어린 시절 어머니와 결혼하셨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결혼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몇 날 며칠을 울던
아빠 바라기였던 나를 기억한다.

나이가 드실수록 아버지는 중후해지셨고, 아프시고 나 점점 마르시고, 흰 수염이 조금 자셨지만 그마저도 내 눈엔 멋있게 보였다.


웃으실 때 눈가에 지어지 주름은 아버지를 더욱 인자해 보이게 했고, 늘 '예쁜 딸'이라고 불러주시던 다정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참 좋아했다.
돌이켜보면 한순간도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어렵게 말씀하셨다.

"이런 모습 안 보이고 싶었는데.."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빠 괜찮아요. 아빠도 저 어렸을 때 다 씻기고, 먹이고 키워주셨잖아요. 미안해하 않으셔도 돼요. 이제 제가 아버지를 위해 해 드릴 차례인걸요."

내 대답을 듣고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으셨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오늘 아버지께 하려고 했던 말을 꺼냈다.

"아빠 우리 서로 유언 말기 해볼래요?
제가 읽은 '느리게 느리게'라는 책에서 이런 내용이 나와요.
친한 친구가 암에 걸안타까 마음 병문안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문안을 다녀간 친구가 죽었다는 이야기요.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영원을 살 것처럼 살지만 사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아버지와 딸이 서로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보며 유언을 말해본다, 아버지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 것 같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딸부터 말해봐."


" 음.. 저는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고, 승무원 하면서 아름다운 곳들도 눈에 많이 담어요. 그리고 많은 소중한 경험들을 했으니깐요.

제가 살아온 인생에서 단 한순간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없어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좋은 부모님 만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예쁜 딸아이까지 얻었는걸요.
래서 저는 이번 생에 후회가 없어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고, 말씀하셨다.


"예쁜 딸. 불 조절 좀 해봐."


"불이요?"


"응. 이런 깊은 대화를 나눌 때는 무드 있게 약간 불을 어둡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장난기 있는 아버지의 말씀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참 아버지 다웠다.
폐암 말기.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계신 나의 아버지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하는 딸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그런 분이셨다.

늘 사랑이 넘쳤던 아버지와 나의 카톡 방.


불을 조절했다.

"오. 지금 좋은데?"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미소 지으며, 아버지 앞에 다시 앉았다. 아버지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아빠가 지구별에 혼자 와서
 참 많이 외로웠는데,
감사하게도
아들이랑 딸이라는 별들을 만들었어.
그것도 아주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별들을.

아빠는 죽어도 우리 아들 딸이
걱정이 안 돼.
 너무 잘 살아갈 거라는 거 아니깐."

그러시더니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시며

"키 크지, 얼굴 예쁘지, 성격 좋지,
예의 바르지.
어제 간병인 아저씨도 칭찬하셨어.
어쩜 저리 키도 크고 예쁘고 상냥하냐며.

그런 아들 딸이 아빠는 너무 자랑스러워.
이 지구별에서 아들 딸을 만나서
아빠가 참 많이 행복했어.

아빠도 한 번뿐인 인생
정말 열심히 살아서 후회가 없어.
우리 정말 어려웠던 시절
잘 이겨내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행복하게 살았으니깐.
아빠도 예쁜 딸처럼 후회가 없어."


아버지의 유언을 듣자
나도 모르게 아버지와 맞잡은 내 손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 나의 등을 토닥여 주시던
 아버지의 따뜻한 손의 온기.

그땐 몰랐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마주 앉아 유언을 이야기했던

2020년 10월 15일 오후 2시 10분.
날의 기억이 훗날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영원히 잊히지 않는 귀한 선물이 될 것이란 것을.


-2020.10.15 목요일의 기억-

이전 05화 내 몫을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