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

제이크 질렌할 <데몰리션>

by 꿈꾸는미운오리

이제야 난 내가 예전에 보지 못한 것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것들을 본 적은 있었겠죠. 단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거죠. '데몰리션' 중~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고 있는 투자분석가 데이비스, 여느 날과 다름없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게 됩니다. 냉장고가 고장 났다는 아내의 말을 안 들은 것인지 못 들은 것인지, 2주가 지나도록 그대로입니다. 아내가 분명 말했을 것임에도 냉장고에 물이 새는 줄, 집에 그걸 고칠 수 있는 연장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산 데이비스, "내 거 아니다. 내 문제 아니다, 그거지?", 그렇게 냉장고 수리 얘기를 하던 중 교통사고가 나고, 자신은 다친 곳이 하나도 없는데 아내만 죽고 맙니다.


아내가 죽으면 홀아비라 하고, 부모가 죽으면 고아라고 불러. 그런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를 부르는 단어는 없어. '데몰리션' 중~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은 슬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모두가 슬픔에 빠져있음에도, 정작 아내를 잃은 데이비스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고, 괴롭다거나 속상한 마음조차 들지 않습니다. 혹시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내가 죽고 난 후,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늘 보던 것이었겠지만, 관심이 없었기에 못 본 것이었겠지요? 아내가 고쳐 달라고 말하던 냉장고를 이제야 보게 된 데이비스, 장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냉장고를 고치려 하는데요. 하지만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완벽하게 해체만 하고 맙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만큼..., 아내가 죽기 전에 주문했던 비싼 커피 머신, 장인 댁의 전등, 회사 화장실 칸막이, 사무실에서 쓰던 컴퓨터......, 데이비스는 무엇이든 해체하고 파괴합니다. 급기야 자신이 살던 집까지 처참하게 부숴버립니다.


아내의 묘지에 간 데이비스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늘 자신을 쫓아다니던 그 남자. 데이비스는 그가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자는 눈물로 용서를 구합니다. 그때서야 자신의 차에 붙여둔 아내의 쪽지가 생각난 데이비스, 바쁜 척 그만하고 자신을 고쳐달라고 했던 아내, 늘 일에 쫓겨 지내던 삶에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지 못했던 데이비스, 데이비스는 아내에게도 그런 남편이었습니다.


저와 줄리아는 사랑했어요

단지 내가 그 사랑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

'데몰리션' 중~


데이비스는 아내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서로 사랑했음에도 아내만큼 관심을 가지지 못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옆자리에서 운전을 하던 아내를 잃었음에도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던 데이비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극도의 슬픔이 가져다준 감정이겠지요. 데이비스는 무언가를 해체하고 부숴버리는 과정을 통해 고장 난 것 같은 자신의 마음을 해체하고 들여다봅니다. 그래서 부수고 또 부수고 모든 것을 파괴하고 난 후에야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루 한 번 잠깐이라도 하늘을 쳐다보는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추천하고픈 영화 <데몰리션>입니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