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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연재 Apr 21. 2023

천국 맞죠? 멕시코 바깔라르 & 산 크리스토발

두 달간의 중미 여행 (2)

바깔라르,
이곳이 천국이 아니라면
과연 어디가 천국일까요?

끝없이 까마득하게 펼쳐진 옥빛 호수는
이 세상 행복과 자유를
몽땅 머금고 있는 듯했다.



'행복'과 '자유'를 물로 표현하면 이런 그림이 아닐까요?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메리다와는 달리, 바칼라르는 나의 여행 권태기가 완전히 해소된 곳이다.


영롱한 일곱 빛깔의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는 그곳을 향해, 메리다에서 여섯 시간짜리 버스를 타고 갔다. 중간에 잠시 멈춘 간이 휴게소에서 딱딱한 바나나칩을 열심히 씹어 돌리며 턱이 아파올 무렵, 바닥에 퍼질러 앉아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표정으로 젤리를 뜯어먹는 어떤 여자애랑 눈이 마주친다.


"그거 맛있어?" 그녀가 묻는다.

"겁나 딱딱해. 하나 먹어볼래?" 내가 말한다.

"됐어. 버스 타는 거 너무 지겹다." 그녀가 시크하게 대답한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나처럼 혼자 여행 온 이들과 많이 친해지게 되는데, 특히 내가 가본 나라이거나 관심이 많은 나라에서 온 친구라면 더욱 마음이 많이 가기 마련이다. 그쪽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와본 적이 있거나, 한국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더욱 나에게 관심을 갖고 마음을 많이 준다. 이때 친해진 프랑스인 로렌은 한 달 정도 멕시코를 혼자 여행했고, 바깔라르와 칸쿤을 마지막으로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했다. 내가 아직 가지 않은 멕시코시티와 산 크리스토발을 이미 거쳐온지라 나에게 좋은 정보를 많이 주었다.


저녁 7시쯤 바칼라르에 도착했고, 로렌과 나는 각자의 숙소에 들어가 짐을 푼 뒤 다시 만나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늘 우리의 메뉴는 타코도 브리또도 아닌 피자!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몇 끼 연속으로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멕시칸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고 싶다는 의견이 합치한 우리. 아주 맛있게 화덕피자를 먹고, 바깔라르의 상점들을 구경했다. 예쁜 마크라메가 많았지만, 이미 칸쿤에서 세 개나 샀기 때문에 더 이상 사진 않았다.


바깔라르에도 칸쿤처럼 마르케시타를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로라는 마르케시타를 여기서 처음 본다고 했다. 내가 맛있다고 추천해 줘서 같이 먹었는데, 꽤나 맛있어하며 단숨에 먹어치우길래 뿌듯했다. (나중에 칸쿤에 도착하고 나서 마르케시타가 많아 행복하다며 연락이 온 후문.)


마르케시타는 유카탄 & 킨타나로 지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멕시칸 디저트인데, 나중에 멕시칸 중부랑 서부 가보니까 진짜 안 팔더라. 아니나 다를까, 서쪽으로 조금만 가니까 마르케시타가 없어서, 바깔라르에서의 마르케시타가 나의 멕시코 여행 중 마지막 마르케시타가 되었다. 로라랑 헤어지고 숙소에 돌아와 음악 듣고 좀 쉬다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숙소가 너무 별로여서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서칭을 하는 도중, 같은 테이블에 앉은 나홀로 여행자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남미에서 시작해 멕시코를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무리한다고 했다. 과테말라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려 여행 중 찍은 모든 사진을 다 날렸다는 그는 엄청 상심이 큰 듯했다. 친구나 가족에게 보냈던 사진 몇 장 말고는 모조리 날렸다고.


그는, '명심해.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가 바로 사진 백업을 해야 할 때야! 언제 어디서 핸드폰을 잃어버릴지 몰라!'라고 신신당부하며 떠났다. 그의 새 핸드폰에는 이전 핸드폰보다 더 찬란한 추억들이 많이 담겼길!






이 숙소는 너무 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바로 아주 예쁜 프라이빗 비치를 갖고 있다는 것. 바깔라르 호수의 이름이 '7 colors lake'인 이유는, 총 일곱 가지의 푸른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뭐 굳이 따지면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몇 가지 색깔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바깔라르 호수는 너.무.너.무 영롱하고 아름답다는 것. 심지어 모래 색도 흰색이라 더더 투명해 보인다.





'들어와~ 안아줄게~'


영롱한 호수가 끊임없이 매혹적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 유혹에 이끌려 호수의 품에 안기면, 호수는 그 어느 품보다 포근하게 나를 안아 주었다. 끝없이 까마득하게 펼쳐진 옥빛 호수는 이 세상 행복과 자유를 몽땅 머금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품 안에 기꺼이 나를 함께 머금어 주었다.


수영도 하고, 그네도 타고,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놀았다. 호수 수영은 바다 수영에 느끼는 찝찔함이 없다. 파도도 없어서 아주 잔잔하고 평화롭다. 이곳이 천국이 아니라면 과연 어디가 천국일까 싶었다.





수영과 태닝을 반복하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께서 나보고 과일을 같이 나눠먹자고 부르신다. 잇첼은 나이 마흔 정도 되는 멕시코인인데, 친절하고 수다스러우셔서 대화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었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과일도 나눠먹으며 마치 소풍 온 기분이었다.


점심쯤 되어서 셔틀버스가 오면서 잇첼과의 소풍은 아쉽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숙소에 가서 짐을 찾은 뒤 캐리어를 끌고 새 숙소로 향했다. 새 숙소는 집도 예쁘고 전망도 좋고, 일기 쓰기에 딱 좋은 테라스도 있었다. 덕분에 바깔라르에서의 행복감이 제곱이 되었다.


바깔라르호수가 보이는 새 숙소 전경


다음날은 길을 걷다가 예쁜 스팟을 발견하며 셀프타이머를 맞춰놓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커플이 나에게 다가와 묻는다.


'우리가 사진 찍어줄까?'


그냥 찍어주는 게 아니라 포즈도 코칭해 주고 여러 각도에서 찍어주던 열정적인 그 커플은 나의 프로필 사진을 탄생시켜 주고는 떠났다.





어릴 적부터 막연히 상상하던 멕시코는

길거리 곳곳에서 유쾌한 라틴 음악이 흘러나오고, 콧수염 아저씨들이 사람들이 밀짚모자를 통기타를 치고, 낮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알록달록한 깃발들이 걸려있고, 길거리마다 옥수수를 파는 노점상이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는 이런 상상 속 멕시코와 가장 닮아있는 곳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자들의 3대 블랙홀에 산 크리스토발을 넣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의 3대 블랙홀은 이집트 다합, 네팔 포카라, 파키스탄 훈자.)


산 크리스토발은 그리 크지 않아서, 웬만하면 모든 곳을 걸어서 다닐 수 있다. 버스가 없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 산 크리스토발에서는 마야 문명과 그 후예들을 볼 수 있다. 가난한 원주민들, 백인-메스티소-원주민으로 대별되는 인종의 구성, 식민 제국주의의 유산, 마야 문화와 혼성 문화 등등. 고원 지대 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관과 원주민의 삶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산 크리스토발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여러 여행자들과 함께 멕시코 전통술 체험도 할 수 있는 워킹투어에 참여했다. 워킹투어 도중 들어간 기념품 상점에서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바로 이 복면을 쓴 사람들! 투어 리더가 설명해 주길, 이 복면 쓴 사람들은 '사파티스타 혁명가들'이라고 한다.


사파티스타는 민족해방군인데, 토지개혁 실패 이후 토지분배를 요구하며 봉기한, 마야 원주민들로 구성된 반정부단체이다. 한국으로 치면 독립투사들 정도로 보면 되려나? 식민화에 저항하고 식량주권을 주장한 단체라고 한다. 그리고 산 크리스토발이 위치한 치아파스 주는, 이들의 주 활동무대였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으니 마야 원주민들의 아픈 역사가 느껴졌다.




산 크리스토발의 메인 거리는, 내가 상상하던 멕시코, 딱 그 모습이었다. 예쁘게 조각으로 잘라진 알록달록 종이 깃발들이 휘날리고, 곳곳엔 음악이 울려 퍼지고, 거리에는 타코와 옥수수 가게가 즐비한 그 모습. 어떤 주류 매장에 들어가서 멕시코 전통 술인 '풀퀘'를 시음해 보았는데, 너무 독해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워킹투어가 끝나고, 길거리에 파는 멕시코식 만두인 엠빠나다를 사 먹어 보았다. 본인이 직접 만든 거라며 엄청 자랑하시던 귀여운 상인아저씨. 치즈 엠빠나다를 먹었는데, 몇 개 더 살걸 후회될 정도로 맛있었다!



열흘간의 과테말라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산 크리스도발. 알록달록 깃발들이 또 한 번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거리를 걷다가, 아기자기 예쁜 타코집을 발견해 들어갔다. 타코를 다 먹고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후드점퍼를 뒤집어쓰고 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빗속에서 옷을 뒤집어쓰고 캐리어를 끌며 산크리를 떠날 버스를 타러 가는 이 길이 참으로 재미있게 느껴졌다. 터미널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멕시코 음료 호차타를 마시며 몸을 녹인다.


예쁜 타코 가게에서 예쁜 타코 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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