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아남기
오전엔 베를린 북쪽에 위치한 어학원에서 4시간 수업을 듣고, 오후에 남쪽에 위치한 강민이 유치원으로 픽업을 간다. 길도 모르고 지하철도 여러번 갈아타고 정신이 없어서 픽업에 늦은 적도 여러 번이다.
그 날도 정신이 쏙 빠진 상태였다.
둘이서 도서관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였다. 버스를 갈아타려고 정류장에 섰다.
날이 추워서 잠바 주머니에 손을 깊이 찔러 넣은 채로 발을 동동거리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잠바의 왼쪽 주머니 안에는 드럭스토어에서 물건을 사고 남은 거스름돈이 있었고, 오른쪽 주머니 안에는 영수증이 있었다. 영수증이 주머니 공간의 반이나 차지하고 있어서 불편했다. 그런데 너무 추워서 손을 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스가 왔다. 드디어 마음속으로 계획한 대로,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한 손으로는 강민이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영수증을 꺼내 후다닥 쓰레기통에 버리고 버스에 올라탔다.
아~ 따뜻해! 버스 안은 훈훈하고 4 정거장만 가면 이제 집에 가서 편히 쉴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또 칼바람이 분다. 한 손은 강민이 손을 잡은 채로 주머니에 넣고, 한 손은 주머니에 쓱 넣었는데, 주머니가 반이나 차 있다. 아까 영수증은 버렸는데 왜 이렇게 가득 차 있지? 아참, 거스름돈이 있었지?
큰일날 뻔 했네! 잘 챙겨야겠다! 하고 꺼냈는데, 그것은 20유로짜리 지폐종이가 아니라 영수증 종이인 것이다. 뭐지? 뭐지? 잠깐 뇌가 멈췄다. 작동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겁을 하고 놀라는 엄마를 보고 강민이가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까 버스정류장에서 돈 버린 거 아니였냐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 준다.
한 푼이 아쉬울 유학생활인데, 자그마치 20유로 (한화 약36,000원)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고 바보같은 나한테 화가 났다.
추웠다. 강민이는 집으로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난 그럴수가 없었다. 다시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고 그 문제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10분 정도 흐른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더 짧았던 것 같다.
나의 바보스러움의 극치현장, 주황색 쓰레기통을 들여다 보았다. 얼마되지 않았으니 윗부분에 있을텐데.. 왜 안보이지? 없다... 그런데 있을 것 같다. 나뭇가지를 주워서 뒤적거렸다. 있을 것 같다. 다 비슷한 종이류이니 잘 안보이는 것 같아서 눈에 힘을 주고 크게 떴다.
그런데.... 없다....
아... 독일 거지들 LTE 급이다... 그들의 스피드에 존경을 표한다..
강민이는 그날의 내 모습을 5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무지 창피했단다. 엄마의 거지의 날로 부른다.
(이미지 출처: https://u.osu.edu/wwiihistory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