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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재 Oct 21. 2021

내가 쓰레기통을 뒤질 줄이야!

독일에서 살아남기

오전엔 베를린 북쪽에 위치한 어학원에서 4시간 수업을 듣고, 오후에 남쪽에 위치한 강민이 유치원으로 픽업을 간다. 길도 모르고 지하철도 여러번 갈아타고 정신이 없어서 픽업에 늦은 적도 여러 번이다. 

그 날도 정신이 쏙 빠진 상태였다. 

둘이서 도서관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였다. 버스를 갈아타려고 정류장에 섰다.

날이 추워서 잠바 주머니에 손을 깊이 찔러 넣은 채로 발을 동동거리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잠바의 왼쪽 주머니 안에는 드럭스토어에서 물건을 사고 남은 거스름돈이 있었고, 오른쪽 주머니 안에는 영수증이 있었다. 영수증이 주머니 공간의 반이나 차지하고 있어서 불편했다. 그런데 너무 추워서 손을 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스가 왔다. 드디어 마음속으로 계획한 대로,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한 손으로는 강민이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영수증을 꺼내 후다닥 쓰레기통에 버리고 버스에 올라탔다.

아~ 따뜻해! 버스 안은 훈훈하고 4 정거장만 가면 이제 집에 가서 편히 쉴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또 칼바람이 분다. 한 손은 강민이 손을 잡은 채로 주머니에 넣고, 한 손은 주머니에 쓱 넣었는데, 주머니가 반이나 차 있다. 아까 영수증은 버렸는데 왜 이렇게 가득 차 있지? 아참, 거스름돈이 있었지?  

큰일날 뻔 했네! 잘 챙겨야겠다! 하고 꺼냈는데, 그것은 20유로짜리 지폐종이가 아니라 영수증 종이인 것이다. 뭐지? 뭐지? 잠깐 뇌가 멈췄다. 작동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겁을 하고 놀라는 엄마를 보고 강민이가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까 버스정류장에서 돈 버린 거 아니였냐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 준다. 

한 푼이 아쉬울 유학생활인데, 자그마치 20유로 (한화 약36,000원)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고 바보같은 나한테 화가 났다. 


추웠다. 강민이는 집으로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난 그럴수가 없었다. 다시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고 그 문제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10분 정도 흐른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더 짧았던 것 같다. 

나의 바보스러움의 극치현장, 주황색 쓰레기통을 들여다 보았다. 얼마되지 않았으니 윗부분에 있을텐데.. 왜 안보이지? 없다... 그런데 있을 것 같다. 나뭇가지를 주워서 뒤적거렸다. 있을 것 같다. 다 비슷한 종이류이니 잘 안보이는 것 같아서 눈에 힘을 주고 크게 떴다. 

그런데.... 없다....

아... 독일 거지들 LTE 급이다... 그들의 스피드에 존경을 표한다..


강민이는 그날의 내 모습을 5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무지 창피했단다. 엄마의 거지의 날로 부른다.



(이미지 출처: https://u.osu.edu/wwiihistory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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